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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7, 2012

이정모가 21세기 초 시점에서 생각하는 인지과학 틀


[ 이정모가 21세기 초 시점에서 생각하는 인지과학 틀]
 
지난 봄-여름 심리학사 강의 파일들을 정리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맴돌던 생각은
 
1. 왜 빌헬름 분트는 철학에서 심리학을 실험과학으로 독립시켜서 심리학을 하나의 독립된 경험과학 분야로 출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생애 후반기에는 일종의 문화-사회심리학인 민속심리학(Voelkerpsychologie)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2. 지난 2월에 타계한 인지심리학의 창시자 격인 나이서(Elrich Neisser) 교수는 왜 그의 생애의 후반부 연구에 ‘자서전적 기억’을 중요 연구 주제로 포함시켰을까?
 
3. 그리고 1910년대 이래로 심리학과 사회과학 전반을 풍미하던 막강한 “행동주의 심리학”에 과감하게 맞서서 싸우며 1950년대에 [인지주의]의 기초를 놓고 또 하버드대에 세계 최초의 [인지연구소]를 세운) 브루너(Jerome Bruner) 교수는 왜 1980년대 이래로 [내러티브]적 심리학, 인지과학 접근을 주장하여야만 하였을까?
 
4. 이 세 학문적 창시자, 변혁을 주도한 학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5. 이들의 공통점을 [마음]에 대한 문화-사회적 접근으로 보고나서, 그것을 [내러티브적 접근]이라는 이름으로 축약하여 지칭한다면 이 흐름은 이정모가 최근에 주장하여온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접근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6. [a].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 카너만 (Daniel Kahneman) 교수가 인간의 사고가 편향과 판단오류로 가득찬 heuristic thinking이며 논리적 합리성(logical rationality)가 지켜지지 않음을 실험 증거로 입증하였고,
[b]. 영국의 Plymouth대 심리학과 J. S. B. T. Evans 교수 등이 인간의 사고는 비논리적과 논리적의 2 시스템(Two systems; two minds)임을 입증하는 실험적 증거와 이론을 제시하였고,
 
[c].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심리학자 기거렌저 (Gerd Gigerenzer) 그룹이 인간의 마음이 heuristics적이며 생태적 합리성(Ecological Rationality) 원리가 지지배하는 체계임을 제기하였고
 
[d]. 미국 USC 커뮤니케이션 학과의 Walter Fisher교수는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내러티브적임을 주장하며, 내러티브적 합리성(Narrative Ratonality)을 논리적, 기계적 합리성과 대비하여 강조하였는데
 
[e]. 이러한 여러 유형의 합리성을 지어내는 것이 바로 ‘마음(Mind)'이기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 지칭되는 이 여러 합리성에는 그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을 터인데, 그것이 무엇이며, 이러한 문제들을 고려한다면, 과연 [마음]에 대한 개념이나 접근은 심리학에서, 인지과학에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7. 그리고 이 모두는, [마음]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함에 있어서, [뇌 탐구를 비롯한 생명(생물)과학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 [인공지능과 그 응용을 중심으로 한 공학], [사회문화적 영향 탐구를 중심으로 한 사회과학], [인간의 심적 작용과 행동 표현을 직관적 분석에 의해 기술하는 문학, 및 인간과 마음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철학 중심의 인문학], 그리고 [심리학 그 자체]의 여러 학문 분야를 연결하여 [자연과학-공학-사회과학-인문학]의 수렴과 융합에 의해 추구하여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탐구하는 것이 심리학을 창시한 빌헬름 분트가 추구하던, 인지과학의 기초를 닦은 브루너가 추구하던 길을 가는 것이며,
고대 희랍시대 이래로 인간과 마음(정신)의 본질을 접근하여온 오래된 철학적 탐구를 수용하는 것이며,
논리적 접근인 인지과학적 접근의 한계를 넘어서서, 나름대로 오랜 인류 역사 동안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분석하며 기술하여 온 문학을 인지과학을 통해 과학에 연결하는 길인지?
 
8. [인지]라는 개념이 비록 소수의 학자에 의해서 거론되었었지만, 아직도 학계의 중요한 패러다임이나 분야가 되어 있지 않던 시절인 1982년에 제1회 심리학연수회를 기획하고 [인지-정보처리] 패러다임을 소개하여, 국내에 [인지] 패러다임의 전개와 정착에 조금 기여를 한 이정모가, 그가 소개한 [인지] 패러다임이 편협한 틀인 것으로 깨달았다면,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씨뿌려 놓은 (오도한 ??) [인지] 패러다임의 오류를 밝히며 무슨 말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중첩되면서 [내러티브]적 접근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문헌들을 찾고 마련하였지만,
내러티브에 대하여, 그동안 역사가 오랜 인문학적 탐구 내용을 훑어보고 이해하여야 하는 막중한 과제에 현실적으로 마주쳐서 일단 중단하고 그 중간 보고를 여기에 올립니다.
* 내러티브에 대한 참고문헌 목록은 후에 다음 기회에 올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 2012. 09. 08. 아침 **

Thursday, August 2, 2012

Going beyond the Brain Sciences? A Cognitive Science Approach looking for the Convergence across Humanities, Social Sciences, Natural Sciences, and Technologies. / (text in Korean)

작년 (2011) 여름에 한국전자통신연구소 (ETRI)의
박문호 박사님 ([뇌, 생각의 출현] 저자,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동호회 http://www.mhpark.co.kr/ 대표) ) 추천으로,
서울이 아닌 지방에 있는 시인들이 만들어 내는 계간지 [시와 반시]에 글을 쓰게 되어서
작심하고 문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아래 연결된 파일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2012년 5월 18일의 성균관대 인문학연구소 [융합심포지엄]에 참석하여서 들어 보니,
인문학에서 문학과 뇌과학의 융합 또는 융화 또는 수렴의 문제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문학이 과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한 인지과학도는 어떻게 생각할 수도 있는가가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 아래에 관련 파일 목차와 함께 그 글의 링크를 다시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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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beyond the Brain Sciences? A Cognitive Science Approach looking for the Convergence across Humanities, Social Sciences, Natural Sciences, and Technologies. / (text in Korean)
 
- by Jung-Mo Lee (Sungkyunkwan University, Korea)
- Quarterly [The Poetry and Anti-Poetry], 2011, Fall, Vol. 77, pp. 198-211.
 
[Contents]
 
1. Brain Science and its Disciplines.
2. Cognitivism and Cognitive Science.
3. Questions on the current Brain Science Culture (Fad).
4. Going beyond the Brain Sciences: (I).
5. Going beyond the Brain Sciences: (II): the Embodied Cognition Paradigm.
6 Going beyond the Brain Sciences: (III): the Narrative Mind.
7. A new Convergence: Cognitive Science and Literature.
 
Key Words: brain, brain science culture, cognitive science, embodied cognition, narrative approach, literature and cognition, convergence, 융합과학기술, 인지과학, 체화된 인지,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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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을 넘자면? :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술의 연결점인 인지과학의 새 틀
 
-이정모-
-계간지 [시와 반시], 2011, 가을, 77호, 198-211쪽.
 
1. 뇌과학과 주변 학문들
 
이전에는 해부학 중심이던 신경과학이 20 세기 후반에 뇌영상기법 등의 방법론의 개척에 의해 뇌의 구조와 그 기능에 대한 연구 방식을 재구성하면서 뇌연구 결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로 뇌과학이 과학의 총아로 떠올랐고, 뇌과학의 연결 성과와 가능성에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매료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뇌과학이 일반인의 지적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뇌의 해부학적 측면이나 유전학적 생물적 기반보다는 뇌의 기능을 밝히는 연구 성과 때문이었다. 일반인이 관심을 가지는 뇌의 그 기능은 실상은 뇌의 심적(인지) 기능이다. 

그러한 면에서 뇌과학이 각광을 받는 까닭은 사실은 뇌와 마음의 연결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뇌와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로는 뇌과학 이외에도 인지과학, 인지신경과학 등이 있다. 현재 추세로는 이들 학문간 명확한 경계선을 긋기가 어렵다. 서로 중첩되는 분야가 많으며 연구자 자신도 자신의 연구가 어떤 분야에 속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국 대학들에서 뇌과학 학과도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명시적으로 인지과학 연구를 표방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MIT 등에서와 같이 ‘뇌 및 인지과학 학과’가 학과의 공식적 이름인 것은 이러한 학문적 경계의 애매성과 뇌과학이 인지과학적 연결이 없으면 공허한 것임을 잘 나타내어 준다.
각광을 받으며 떠오른지 20여년 밖에 안 된 뇌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연결되어 많은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 내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현재(특히 국내에서는) 일종의 뇌과학 지상주의가 전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에 뇌과학적 연구가 충분히 진전된다면 인간의 마음 작동의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는 단순한 환원주의적 입장이 일반인들이 지니는 생각이다. 이 글은 그러한 과다 단순화한 관점을 넘어서는 생각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려는 것이다.
 
2. 인지주의 틀: 형성과 인지과학
 
뇌과학의 형성과 발전의 전파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 20세기에 인류문화사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인지주의’ 틀의 형성이라고 하겠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기에 머물던 고전적 계산기가 인지주의 틀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의 지능적 컴퓨터로 재개념화되어 새 세상이 열렸다. 생명체인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만든 인공물의 하나인 컴퓨터가, 본질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동류의 시스템이라는 발상의 대 전환으로 인하여 인류 문화에서 컴퓨터 시대, 디지털 문화시대가 열렸고 이어서 인터넷 문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과 디지털컴퓨터가 모두 상징(기호)을 조작하는 정보처리 시스템이라고 보는 관점을 정립한 이러한 인지주의 틀의 출현을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20세기의 과학혁명, 곧 ‘인지혁명’이라고 부른다.

좌뇌와 우뇌의 기능 차이를 최초로 연구하여 노벨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한 신경심리학자인 스페리(R. Sperry)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지주의의 등장은 하나의 「과학혁명」이었고, 과거의 물리학 중심의 전통적 과학에서처럼 모든 것이 전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결정된다는 상향적 입장이, 인지주의 과학혁명에 의하여 하향적 입장과 조합하여 ‘이중 방향’, ‘이중 결정’ 모형으로 과학이 변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과학관과 세계관이 급진적으로 수정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인지과학과 여러 테크놀로지(특히 인공물과 인간의 상호작용 관련 기술)의 수렴, 융합은 또 다른 미래 가능성들을 시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21세기는 ‘국제화시대’가 아니라 ‘인지시대(the Cognitive Age)’라는 선언적 칼럼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넓게 본다면 인지과학은 뇌과학을 그 하위 구성영역의 하나로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좁게 본다면 뇌과학을 인지과학과 차별화 하여야 하는데, 그럴 경우에 뇌과학 탐구 주제에서 인지 기능을 제외하여야 하고, 그렇게 되어 남는 뇌과학은 별로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다른 대안으로 신경과학자들의 일부가 주장하듯이 인지과학은 신경과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인지과학은 신경과학 또는 생물학의 하위 학문이 되는데, 이것은 곧 ‘의미’란 신경적 활동 이상의 것이 아니다 라는 환원주의적 관점으로 귀착된다. 이 관점은 인지과학이나 인문학에서 수용되기 힘든 입장이다.

3. 뇌과학 지상주의에 대한 반문
 
21세기의 둘째 10년으로 들어가고 있는 지금은 과연 어떤 시점일까? 인류 문화, 뇌과학을 비롯한 과학과 유전공학, 아이폰 등의 기술, 그리고 인문학과 인간 자신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의 정립이 요청되는 시점일까?

우리는, 특히 한국에서는 현재 일종의 뇌과학 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심적 현상을 뇌의 신경 현상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환원주의적 뇌과학의 관점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 현재에는 뇌과학 연구가 갓 출발하여 진행되는 단계이어서 모든 것을 뇌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뇌과학 연구가 충분히 발전하고 진행된다면 인간사의 모든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뇌과학의 신경과정 작용의 환원주의적 원리에 의해 이해,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 틀이 일반인에게 널리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 신경과학자들, 과학학술지, 매스컴이 ‘뇌는 곧 마음(mind)이다’ 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뇌 연구 결과 하나 하나에 대하여 매료되어 뇌 지상주의에 매어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마음은, 의식은 뇌의 신경적 활동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신경과학자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에는 어떤 잘못이 있을까? 뇌에 대한, 신경과학에 대한 나의, 우리의 매료됨이 과연 21세기 내내, 그리고 22세기와 그 후의 미래에도 지속될까? 날마다 새로워지는 뇌과학적 발견과 학계의 저명한 학자들의 생각의 변화에 내가 뒤지지 않고 따라가기 위하여, 그리고 21세기 후반을 맞이하기 위하여 나는 나의 생각의 틀을 어떻게 정립하여야 할까?

4. 뇌과학을 넘어서 1:
 
지금 21세기 초엽 현재, 지성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한, 그리고 무시 못 할 중요한 생각틀의 변화의 하나는, 바로 ‘나의 의식(마음)’은, 나의 몸 더 좁게는 ‘나의 뇌’에 의해 ‘나’가 아닌 것과 구별될수 있다는, 즉 ‘나는 나의 뇌다’라는 식의 생각을 버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마음, 의식을 밖으로 ‘확장시켜서, 뇌-몸-환경을 하나의 불가분의 총체적 단위로 이해하려는 스피노자 식, 메를로퐁티 식의 생각이 전개이다.

카르트는 인간의 몸을 동물과 연속선상에 있는 하나의 자동기계로 생각하며, 마음과 몸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였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몸을 동물적기계로 보았고, 마음과 영혼은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마음은 사고하는 실체이나 외연을 지니지(공간을 점하고 있지) 않는 반면, 몸은 공간에서 기하학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외연을 지닌 실체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존재론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수정론적인 입장이 이후에 있었으나, 서구의 문화사에서는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적 입장이 지배하여 왔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신경과학의 등장으로 인하여, 마음을 뇌의 신경적 활동으로 환원시켜 생각하는 일원론(마음=뇌)적 관점이 지배적인 생각이 되기는 하였으나, 정신(마음)과 물질을 대립적으로 보는, 또는 생각의 주체와 그 대상이 되는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보는 데카르트식 존재론의 관점은 아직도 현재의 신경과학의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뇌 = 마음’, ‘마음 = 뇌’, ‘의식 =뇌’ 라는 단순한 과학적 믿음을 과감하게 버리는 움직임이 철학을 비롯한 학계에서 태동하고 있고, 이러한 ‘마음’ 개념의 재구성의 추세가 더욱 확산된다면 단순히 철학, 신경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및 사회과학 전반, 그리고 인공지능, 로보틱스, 다른 인간관련 공학 등에 강한, 그리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리라 생각된다. 특히 로보틱스의 연구에는 가장 강한, 그리고 급한 변화를 가져오리라 생각된다.

저명한 철학자인 앤디 클라크, 데이빗 찰머스 등이 이러한 발상의 전환 중심에 서 있으며, 여러 학자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물론 강한 비판도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의 구호의 핵심은 ‘데카르트를 넘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신(마음)과 물질(신체), 그리고 주체와 객체를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구별한 데카르트 식의 존재론의 개념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또한 하이데거나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현재 신경과학의 부분인 뇌과학의 환원주의적 관점이(그러나 신경과학자라고 하여 모두 환원주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인간의 마음을, 인간의 활동을 왜곡하여 이해, 접근, 탐구하게 되고, 부분을 마치 전체인 것처럼 오해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철학자들의 일부가 늘 그렇게 이야기하여 오던 이야기이기에, 또 철학자들이 그러한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가보다 라고 생각하며 우리가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하기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다.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리지 못할 이유는 이러한 논의를 최근에 다시 전개하도록 촉발시킨 사람들이 철학자가 아닌 인공지능학자, 로보틱스 연구자, 지각심리학 연구자들이었다는 데에 있다. MIT대학의 미디어랩의 중심연구자였던 로드니 브룩스 교수는 인공지능, 로봇 등을 연구하던 중에, 과거의 데카르트 식의(고전적 인지과학) 인공지능이나 로봇시스템 이론으로서는 제대로 된 인공지능시스템이나 로봇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그는 이러한 시스템들에 내장된 프로그램과 몸-환경이 밀접히 연결된 새로운 개념화가 필요함을 강력히 제기하였다. 이에 다른 인공지능 연구자, 로보틱스 연구자들이 점차 공감하였다.

공학자들의 이러한 강한 이의 제기에 힘을 얻은 철학자들은 과거의 현상학적 철학 전통에서 이야기하던 개념들을 다시 꺼내어 되생각하고 가다듬어 발전시키기 시작하였다. 몸-환경-활동의 중요성을 예전에 이야기하였던 스피노자,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생각들에 현재까지 진행된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동물행태학, 인류학, 로보틱스 등에 대한 연구를 연결하여 마음, 의식, 존재 개념들을 다시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재구성의 결과로, 마음은, 의식은, 뇌를 넘어서’ 개념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알바노에의 「뇌과학의 함정」이라는 책에서 언급된 바를 인용하자면, ‘마음, 의식, 나 = 나의 뇌(의 활동)’ 이라는 데카르트 식의, 신경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의 ‘거대한 착각’에서 이제는 우리가 빠져 나와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동안 잘못 가고 있던 자연과학을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적 재개념화 도움에 의하여 제 자리에 돌려놓아야 할 때이다. ‘뇌는 마음과 같지 않다’, ‘마음(의식)은 뇌와 몸, 그리고 환경(다른 인간과의 관계 포함)의 상호작용 활동에 의존한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몸과 환경을 빼놓고 뇌가 곧 마음이다 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유기체의 삶은 (뇌의) 내부에 있지 않다’, ‘세계는 뇌 안에 만들어지거나 뇌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미는 (환경과의 행위적 활동) 관계에서 (비로소) 생긴다’, ‘뇌 혼자서 무엇을 이룰 수 없기에, 실상 모든 「의미」는 머릿속에 없다’, ‘우리의 경험을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뇌 자체에서 일어나는 신경 활동이 아니라, 우리와 사물(환경)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역동적 (행위, 활동) 관계다’, ‘마음을 세포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춤을 근육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뇌가 의식의 자리라는 신경과학자의 경솔한 확신, 착각’, ‘우리가 우리의 뇌의 신경적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과학자들이 알게 된 무언가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집에서 실험대로 가져온 선입견이다’ 그래서, 신경과학자, 일반인, 매스컴 등 우리 모두가 빠져있는 이러한 (뇌과학적) 거대한 착각에 정면으로 맞서 이를 포기하고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거대한 착각을 벗어나서 스피노자, 하이데거, 메를로퐁티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은 다음과 같은 ‘체화적 인지’ 또는 ‘확장된 마음’의 틀로 지금 인지과학의 대안적 관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5. 뇌과학을 넘어서 2: 체화적 인지 틀의 형성
 
인간의 마음에 컴퓨터 메타포를 적용하여 1950년대에 출발한 인지과학은, 이후 1980년대에 뇌 메타포를 적용하여 연결주의와 신경과학(뇌과학)을 발전시킨 이후, 21세기의 현 시점에서 또 다른 변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 변화의 틀은 위에서 언급된 탈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움직임이다. 최근에 철학과 인지과학에서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또는 확장된(물리적 공간에 연장된) 마음: Extended Mind))'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은 종래의 일반인들이나 과학자들이 갖고 있던 데카르트 식의 이원론적 존재론의 생각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즉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 관점이나, 그 반대인 ‘마음은 곧 뇌의 신경과정이다’ 라는 뇌과학의 환원주의적 일원론 관점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보는 틀이다.

이 틀은 인간의 마음, 인지가 개인 내의 뇌 속에 추상적 언어적 명제 형태로 표상된 내용이라고 하기보다는, 구체적인 몸을 가지고(embodied) 환경에 구현, 내재되어(embedded) 사회문화환경에 적응하는 (몸이 있는) 유기체가 ‘환경’과의 순간 순간적 상호작용 행위 역동 상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즉 몸과, 문화, 역사, 사회의 맥락에 의해 구성되고 결정되는 그러한 ‘역동적 활동’으로서의 마음임을 강조하는 접근이다. 이 ‘체화된 인지’의 보는 틀은 고전적 인지주의의 정보처리 접근이 지니는 제한점을 벗어나려 한다. 즉 환경과는 독립적으로 한 개인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표상이나 정보처리가(고전적 인지주의 입장) 아니라, 몸으로 환경 속에 구체화되며, 몸의 활동을 통하여 환경과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행위로서 마음을 설명하고자 하며, 그리고 환경의 다른 인간의 마음이나 각종 인공물에 분산표상된 마음,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상황 지워지며 행위로 구성되는 마음으로서 보려는 것이다.

환경과 인간의 심적 상호작용의 실제는 몸에 의존한다. 따라서 감각운동적 바탕이 마음의 핵심이 되며, 고차 심적 기능도 이러한 기초의 제약과 허용 틀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지각은 능동적이며, 행위는 지각에 의해 인도되며, 신경계, 몸, 환경 요인이 실시간 상에서 상호작용하는 것을 이해함을 통하여 과학적 설명이 주어진다. 최상위의 매스터라고 하는 뇌에 의한 전반적 계획이나 통제가 없이도, 분산된 단위들의 지엽적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가조직적(autopoietic)으로, 창발적으로 출현할 수 있는 것이 심적 현상이다. 마음은 환경에 확장된, 상황지어진 것으로 분석, 이해되어야 하며, 자연적, 생태적 상황에서 맥락이 고려되어서 이해되어야 하며, 전통적 논리적 형식적 접근보다는 환경과의 역동적 시간 경과와 상호작용성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역동적 접근을 통하여 탐구되어야 하며, 현상이 어떻게 (주관적으로) 체험되는가 하는가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도 설명적 요소로 반드시 포함되어야 마음의 작용에 대한, 마음이 이루어내는 ‘의미’에 대한 설명이 충분할 수 있다.

즉, [1] ‘뇌’를 포함하는 ‘몸’과, [2] ‘환경’(각종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과, [3] 그리고 이 둘이 연결되는 상호작용적 활동(interactivity)의 세 측면이 서로 괴리되지 않고, 하나의 역동적 전체로서 개념화되는 그러한 접근을 하여야 『마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뇌과학에서 일반적으로 주장되듯이 ‘몸’이라는 전체도 아닌, 한 부분적 실체인 ‘뇌’에서 마음의 모든 것이 일어나며, 환경과 독립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뇌의 신경적 작용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에 연원을 둔 이러한 개념적 변혁에의 움직임은 종래의 일반인들이나 과학자들이 갖고 있던 마음과 몸에 대한 데카르트 식의 이원론적 생각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즉 심신이원론이나, 대부분의 신경과학자, 뇌과학자들이 지니는 ‘마음은 곧 뇌의 신경과정이다’ 라는 환원주의적 일원론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보는 틀의 펼침이다. 이 체화된 인지 접근은 고전적 인지주의에서 배제되었던 ‘몸’을 마음의 바탕으로 되찾게 하며, 몸을 지닌 마음과 분리될 수 없는 ‘환경’을 인지과학과 심리학에 되살려 놓게 하며, 공간적 연장이 없었던 추상적 ‘정신적 실체’라는 마음이 아니라 ‘몸을 통해 환경에 연장된,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으로 마음 개념을 재개념화 할 가능성을, 아니 그래야 하는 필연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 개념을 이렇게 ‘뇌를 넘어서’ 환경과 괴리되지 않는 실체의 개념으로 재구성한다면, 이러한 재구성의 틀은 심리학, 인지과학의 기초적 이론 틀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물리학, 생물학 등), 테크놀로지(로보틱스 등), 예술 등의 여러 분야에서 이론적, 응용적 틀의 재구성에 (뇌과학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도) 상당한 시사를 지니게 된다.

이 ‘체화된 인지’ 틀이 떠오르기 이전에 이미 인지과학의 틀을 도입하여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가 인지과학과 연결되었다. 학문간 수렴, 융합을 이루어 낸 것이다. 인지정치학, 행동경제학, 인지경제학, 신경경제학, 행동법학, 인지법학, 신경법학, 학습과학 등의 새 분야들의 떠오름이 그러한 대표적 예이다. 그러한 분야들에서 뇌의 신경적 현상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개념화하려던 시도들의 편협한 한계를 넘어서, ‘체화적 인지’의 틀을 도입하여 인간과 사회현상을 보는 관점을 재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이 미래 사회과학의 과제로 남는다.

공학의 분야들 중에는 처음부터 인지과학의 한 중심 분야이었던 인공지능 연구의 연결에 의하여 각종 소프트웨어 시스템이나 디지털 기기의 디자인 분야들, 특히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분야가 인지과학과 연결되어 왔다. 이러한 분야들에서 뇌과학 연구의 발전 결과와 그 시사를 연결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연구 영역이나 뇌-로봇 인터페이스(BRI) 영역이 이러한 시도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많은 새로운 것을 보여줄 듯하면서도 문제점이 계속 남는다. 환경과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의미(meaning)’를 습득, 창조하고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존재, 환경과 괴리되지 않고 하나되어 살아 움직이는 몸이 있는 유기체로서의 인간이 보여주는 ‘의미를 지어내는’ 삶을 인공적으로 구현하기 힘들다.

인문학과 예술 분야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체화된 인지’ 틀은 여러 가지 새로운 개념적 재구성을 시사한다. 예술의 분야에서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채, 몸을 통해 구현되는 마음’의 관점은 문학, 음악, 미술, 공연 등의 분야에서 여러 새로운 개념적 구성 작업을 가능하게 된다. ‘뉴 미디어 이론’에 새 인지과학적 틀이 깊숙이 관여되는 한 이유이다. 그러나 인문학과 예술의 분야는 이를 넘어서 또 다른 개념적 재구성이 요청된다. 즉 내러티브의, 이야기의 문제이다.
 
6. 뇌과학을 넘어서기 3: 내러티브적 마음
 
인문학자 마크 터너 교수는 “문학적 마음”이라는 책에서 ‘인지과학의 중심 주제가 사실상 문학적 마음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마음의 기본 원리이다’ 라고 하였다. 로이드 등의 철학자들의 논의에 의하면 내러티브란 인간 마음의 기본적, 일차적 작동 원리이다. 인지과학 출발의 기틀을 닦은 심리학자 브루너(J. Bruner)는 의미 만들기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며, ‘의미’라는 것은 ‘상징(기호)과 그 지시대상’에 의해 정형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환경에 바탕을 둔 ‘내러티브적 해석’에 의해 매개되고 조정되고 또 재조정되어서 그 맥락적, 개인적 다양성이 살려지고 그 문화적 체계 내에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는 해석 틀에 의해서 비로서 생성되고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을 지금의 주제와 관련하여 넓게 해석하자면, 의미란 문화공동체의 환경에서 부여되는 역동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이며 내러티브적인 것이지, 환경과 별개의 독립적 실체로 개념화될 수 있는 뇌의 신경적 과정이라는 하드웨어적인 것 그 자체만으로 의사소통적 의미를 지니게 되고 다양하고 수용자마다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그러한 현상적, 심리적 의미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각자가 아침부터 밤까지(심지어는 꿈속에서도) 열심히,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이야기’적 의미를 양산하여 내는 그러한 존재이고, [마음의 본질은 ‘이야기, 즉 내러티브 생산 공장’]이라 할 수 있다. 열심히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인간적 존재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존재적 의의를 지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미’란 한 인간이 몸을 통해 환경에 현실적으로 구현되어서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체험적으로 엮어 내는 이야기적, 내러티브적 해석이 바탕이 되는 의미이다.

이는 비록 환경과 독립적인 기관으로 설정될 수 있는 뇌의 신경적 작용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게는 되지만, ‘뇌를 넘어서’ 환경과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역사와 문화와 개인적 일화들이 엮여져 짜여지는 문화적 의미의 체계이다. 사회문화적 환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생물학적 그 무엇이다. 뇌과학의 신경적 과정 현상으로만은 도저히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인지적 산물이다.
 
인지과학에 내러티브적 접근의 도입이 필연적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마음의 결정적 산물이며 또한 인간 마음 활동인, 문학을 인지과학에서 연결하여 탐구하여야 하는 것이 요청될 것이다.
 
7. 맺는 말: 인지과학과 문학
 
인지과학 입장에서 본다면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다. 마음의 본질을 분석하고 기술한다는 것, 그리고 문학하는 사람들의 문학활동과 독자의 심적활동이 인지과학에서 논하는 언어이해와 마음이론의 적용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어떻게 받아들여 어떻게 생각할 것일까에 대해 저자가 나름대로 생각하여, 즉 상대방의 마음에 대한 저자의 마음이론에 바탕을 두고, 저자 자신의 생각을 상징으로, 표상으로 표현하고, 이를 읽으면서 독자는 자기의 기억에서 ‘이야기(내러티브)적 원리’ 지식과 각종 세상사 관련 지식을 동원하여 그 상징 표상을 정보처리하고 해석하여 이해하고 그것이 정서적 메커니즘과 연결되어 감흥을 갖게 된다. 문학작품의 언어적 표현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기보다는, 저자의 글 표현은 독자가 독자 자신의 기억에서 어떠한 지식을 동원하여 이야기적 의미를 해석하고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기호적 단서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의 이 해석과 구성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인지(정서를 포함한) 과정이며, 인지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과거의 문학(비평)이론들로서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구성주의, 페미니즘 등의 입장들이 있었다. 이 틀이 20세기 말에 무너지고, 이제는 문학의 내용 전개나 예술을 자연주의에, 진화이론에 바탕을 두고 이해하거나 인지이론에 의거하여 이해 및 분석하고, 비평하고, 기술하려는 입장이 점차 세를 얻고 있다. 기존의 문학(비평) 이론은 주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측면만 강조하였지, 그러한 문학활동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인지적 측면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가 지니는 시사점을 무시하였다. 실제의 인간은 진화역사적으로 변화/발달한 몸을 지닌 생물체인데, 과거의 문학은(적어도 문학비평이론) 이러한 문학적 산물을 내어놓고 또 이해하는 인간이 자연의 존재라는 ‘자연 범주’ 특성을 무시하여 왔다. 과거의 문학비평 이론은 문학작품, 예술 등과 관련된 인간 마음의 ‘자연과학적으로 밝혀지는’ 「숨겨진 복잡성」에 대하여 학문적 인식, 과학적 지향함의 수용이 없었다(인지과학적 의미에서). 아니, 실제의 예술작품 생성 작업 현장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나, 문학(비평)이론가들은 문학이론 구성에서 이러한 부면을 무시하여 왔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인간 삶에서 무엇을 위하여 생겨났는가, 문학활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개개의 문학작품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등의 물음들이 진화이론적 관점에서,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접근되고 있다. 앞으로 문학과 인지과학의 연결분야가 인지과학의 응용분야로서 발전될 뿐 아니라, 이 분야가 발전되면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또 다른 상위수준의 인지과학 이론틀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그러한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인지과학적 연구가 문학 연구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인지과학 자체도 문학과 연결됨으로써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하여 보다 거시적인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전개할 수 있음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이 인지과학에서는 마음의 작동원리가 본질적으로 ‘내러티브 엮기이다’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제, 인지과학을 위하여서, 그리고 문학을 위해서라도 문학과 인지과학이 연결, 수렴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문학의 상위범주인 인문학이 인지과학과 연결되어야 한다. 인지과학과 문학을 연결하는 연결점에서 ‘내러티브적 이야기에 바탕을 둔 인문학’과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인 인지과학이 수렴-융합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하드웨어적 작동 원리를 밝히는 뇌과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뇌과학은 인간의 의미있는 미래를 위하여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는 뇌과학 지상주의의 거대한 착각을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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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About the Author
 
이정모 : 심리학자. 성균관대 심리학과 및 인지과학협동과정 명예교수. 한국실험및인지심리학회 회장, 한국인지과학회 회장 역임. 저서『인지과학: 학문 간 융합의 원리와 실제』『인지과학: 과거, 현재, 미래』『인지심리학: 형성사, 개념적 기초, 조망』, 공저 『언어심리학』『인지심리학』등.

Tuesday, March 20, 2012

Narrative Mind and Religion / (text in Korean)

그동안 과학과 종교를 학문적으로 연결하려하여 온 Metanexus 연구소의 웹 기사 글을 오늘 새벽에 읽고 글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종교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는 좀 위험한 글입니다. 다음 사이트에서 보세요.
http://blog.naver.com/metapsy/40154980523 / [Narrative Mind and Religion] / (text in Korean)

Sunday, August 28, 2011

Going beyond the Brain Culture. // (text in Korean)



     Going beyond the Brain (Science) Culture.
                                                                -(text in Korean)
[Abstract]: Quoting the reviews of the two books on brain, [Brain Culture: Neuroscience and Popular Media] and [The Tell-Tale Brain: A Neuroscientist's Quest for What Makes Us Human], it was discussed that we should go beyond the current "brain" fad. The current fad of 'brain culture' was explained as a phenomenon not reflecting the true facets of science, but caused by the very nature of human cognition of biased heuristic thinking and of human mind, driven by the narrative principle of constructing stories 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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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과학 지상주의 문화에 대한 반성: 최근 해외에서 발행된 두 권의 책과 관련하여 
 
요즈음 국내나 서구나 ‘뇌과학 지상주의’ 문화가 학계나, 매스컴이나, 일반 시민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금년에 해외에서 출간된 뇌과학에 대한 영문 서적 두 권에 대한 서평을 참조하면서 국내에서 널리 일고 있는 뇌과학에의 몰입 문화 경향(pop culture)에 대하여 몇 가지 개인적 생각을 전개하여 볼까 한다.
 
먼저 언급하려는 책은 미국 텍사스 주 Southwestern 대학의 Communication학과 조교수인 Davi Johnson Thornton 박사가 쓰고 Rutgers University Press에 의해 2011년 5월에 출간된, [Brain Culture: Neuroscience and Popular Media] 라는 책이다
- 동명이서의 다른 책들이 있음에 주의하세요 -
 
사우스웨스턴 대학의 자료에 의하면(http://www.southwestern.edu/live/news/5504-brain-culture),
이 책에서 Thornton 교수는 지금의 사회문화적 ‘뇌지상주의’ 유행은 뇌가 보여주는 실제 과학적 사실 이상으로 뇌영상 그림에 사람들이 빠져 있는 상태이라고 보며, 그렇기에 그는 이러한 문화적 유행을 과학적 뇌가 아닌 ”수사학적 뇌 (rhetorical brain)‘에 빠진 상태라고 본다. 인지신경과학 분야의 과학적 발견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의해 묽어진(맹물을 탄) 해석적 틀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하여 “뇌를 훈련시키면, 적절히 사용하면, 학습능력을 높인다던가, 회사나 대인관계에서 잘 적응한다던가, 아동발달을 촉진시킨다.” 등의 자기계발서들이 판을 치고 있는 요즈음의 현상에 대하여 Thorton 교수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추세에는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단지 그러한 자기계발서들 또는 학습능력증진서들이 인지신경과학의 과학적 사실 그대로를 넘어서 일종의 사회문화적 유행의 물타기 또는 키우기를 하고 있고(비록 긍정적으로 도움이 되더라도), 현재의 ‘뇌’유행은 과학적 사실에다 뇌영상 그림을 중심으로 일종의 사회문화적 해석을 덧씌우는 작업의 결과라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하여는 Brain Picking이라는 흥미로운 블로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Maria Popova가(대학원 시절에 뇌영상 공부를 하였음) 유명한 월간지 [The Atlantic] 지에 'Brain Culture': How Neuroscience Became a Pop Culture Fixation“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8월에 서평을 썼다.
아트란틱 지의 부제목(A book looks at how the cerebral cortex has become a 21st-century version of Warhol's soup cans or Marilyn Monroes)을 참고하고 이 기사관련 글들을 종합하여 전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뇌(지상 주의) 문화의 유행”은 뇌과학의 사실적, 과학적 발견을 다룬다고 하기 보다는 뇌영상 사진들에 매료된 인간의 시각 중심적 사고(“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 과다일반화적 사고, 마음의 이야기 짓기적 본질, 노벨상 수상자 카네만 교수 등이 발견한 편향적 오류적 사고 경향 등에 바탕을 둔 일종의 유행적 사회문화현상이다. 맑은 과학적 사실로 다루어져야 할 것들이, 뇌에 대한 일종의 신화적 표현을 통해 그리고 그 기능적 가능성에 대한 낭만적 이야기 짓기를 통해 하나의 ‘신화적 이야기’ 뮤즈가 된 것이다 (The brain, it seems, has become a modern muse.// http://www.biopsychology.com/news/index.php?descType=always&type=chapter&id=1&page=0 에서). 생물적 기관인 ‘뇌’가 하나의 ‘문화적 기관의 지위(cultish status)를 지니게 된 것이다.

오늘날 매일 우리는 신문방송에서 “뇌과학이 .... 이런 이런 사실을 새로 발견했다. 그 의의는 심대하다, 우리의 일상 생활이 .... 이렇게 달라질 것이다.”라는 매스컴 기사를 접한다. 또 새로 발간된 자기계발서에서는 ”....이러 이렇게 하면 뇌가 ... 이렇게 달라질 것이고, 그를 통해 우리는 ..... 이러 이러한 증진된 학습능력, 대인관계 능력 ...등등을 지니게 된다“라는 글이나, 광고문구를 보게 된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는 뇌의 지위, 기능, 미래 가능성 등에 대하여, 이미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거나 믿고 이야기(내러티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과, 뇌 영상 또는 관련 과학적 단서 사실들을 ’교묘하게‘ 연결한 -일종의 수사학적, 화용론적- 이야기 틀 속에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이나 그를 받아 수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착각을 생성하고 있고 그에 빠지고 있다고 절대로 믿지 않는 그러한 이야기 틀 속에 -)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위의 사이트의 표현을 번안하자면 ‘우리가 과학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우리가 바라는 바 (특히 뇌를 긍정적 효용성을 위하여 어거할 수 있도록 하려는 바) 사이의 단절의 실로 비극적인 드러남(a tragic manifestation of the disconnect)일 뿐이다.
 
이 모든 것, “뇌과학이 .... 이런 이런 사실을 최근 발견하였고, 그것은 우리에게 .... 이러 이러한 심대한 의의가 있다“ 는 등의 매스컴 기사 또는 책자들의 주장은 사실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현상을 (노벨 수상자 카네만의 주장처럼) 늘 편향적으로 왜곡하여 사고하며 과대 일반화, 이분법적 범주화를 하는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사고 경향성, 그리고 자신 또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사실이기보다는 자기/우리 중심적 구성으로서의) 이야기(내러티브) 틀을 만들어 가는 인간 인지의 본질적 특성]]을 전제하고 전개되는 하나의 사회-문화적 유행(fad/ pop-culture)적 개념틀에서 나온 내러티브일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거대한 ‘인지적 착각(Cognitive Illusions)'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이정모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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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언급할 서평은 널리 알려진 웹진 사이트 “Wired"에서, 조나 레러 {”푸르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라는 책(http://www.yes24.com/24/goods/2783494)의 저자}가 Thorton 교수와의 인터뷰 형태로 쓴 서평이다.
그는 신경과학의 ‘언어’ (수사; rhetoric) 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인터뷰를 하였다. 이 인터뷰 기사에서 저자와 인터뷰를 하는 레러 두 다, 뇌과학 유행을 ‘나쁘다’라고 명시적으로 지적하는 것을 비껴가기는 하였지만, 하여간 요즈음의 일반시민의, 뉴스미디어의 ‘뇌과학 열풍’이 일종의 수사학적 문화적 현상이며 참 과학과는 거리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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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언급할 책은 금년(2011) 1월에 Norton회사에서 출간한
저명한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의 책 [“The Tell-Tale Brain: A Neuroscientist's Quest for What Makes Us Human” - by V. S. Ramachandran -] 이다.

이 책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이 서평을 썼지만, 여기에서는, 뉴욕타임즈 북리뷰판에 지난 3월에 McGinn 교수가 쓴 서평을 중심으로 필자의 개인적 생각을 첨가하여 전개하겠다.
콜린 맥긴교수는 옥스퍼드대 졸업후, 런던대를 거쳐서 미국 마이아미대학 철학과에 부임하여 철학을 가르치며, 심리철학 주제에 대하여 계속 왕성한 연구, 저술 활동을 하여온 저명한 철학자이다.
 
책 저자 라마찬드란은 UCSD의 ‘뇌 및 인지 센터장’으로,
(라마찬드란의 다른 TED 강연 동영상: http://blog.daum.net/engineer66/8370464)
이 2011년 새 책에서 뇌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 결과들을 제시하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신경현상은: phantom limbs, 시각, 공감각, 거울 뉴런, 자폐증, 정서, 언어, 미적감각, 의식 등이다.
 
여기에서는 나는 라마찬드란이 밝힌 신경과학적 발견과 그 의의에 대하여서 보다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하여 심리철학자 McGinn 교수가 비판한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겠다. 맥긴 교수는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저자인 라마찬드란 교수 보다는 신경과학자 일반과 ‘뇌과학 지상주의’ 열풍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 비판을 던지고 있다. 그 비판을 몇 개의 조목으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1. 라마찬드란 박사 등 신경과학자들은 지나친 신경환원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그들은 철학에서 왜 수세대를 걸친 그 긴 세월동안 심-신의 문제를 논의하여 왔는지, 왜 그것이 해결하기 어려운 커다란 학술적 문제가 되어 왔는지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다. 여러 심리 현상은 신경적 메커니즘으로 단순히 환원하여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심리현상은 개념적 물음의 문제이지 신경적 구조의 기제(기작; 기전)의 문제가 아니다(These are conceptual question, not questions about.... neural machinery..). 라마찬드란은 왜곡, 생략, 과장 또는 (과대)일반화를 하고 있다.
 
2. 인간이 동물과는 달리 독특하다(우수하다는 의미의)고 하는데, 그건 인간중심주의의 anthropocentrism의 말이다. 또 낙관적 측면만 신경과학적으로 기술하는데 어두운 측면도 있다.
 
3. 라마찬드란의 이야기는 과학적 이야기가 아니다, 가치가 개입된 평가적 이야기일뿐(not scientific at all. it is evaliative talk) 과학적 정당화(justification) 대상이 못된다.
 
4. 그렇다면 왜 신경과학적, 뇌과학적 발견은, 이야기는 우리를 그리 매료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뇌신경 현상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에 뜨는 쇠가 신기하게 여겨지듯이, 전혀 다른 실체라고 생각하여온 뇌와 마음이 관련되는 것 같으니까 우리는 그에 매료되는 것이다. 신경적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것을 연결시켜 개념적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 마음의 의미구조에 우리의 매료에 열쇄가 있는 것이다. 시각적(뇌영상) 자극을 단서로 하여 개념적 연결 이야기를 꾸며나가는 인간의 이야기 짓기 중심의 마음의 의미구조가 전제되어서야 비로소 뇌과학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고, 우리를 매료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적 이야기 짓기는 사회-문화적인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 짓기, 개념적 연결 사고를 하는 인간적 의미구조를 제거한다면 뇌과학적 (아니, 더 넓게 이야기하여 어떠한 과학이라도 그) 발견 사실들은 아무런 의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뇌에 대한 과학적 발견 그 자체가 그냥 그대로 심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 현세대의 한국적, 더 나아가서는 범세계적 인간 대부분의 착각이라는 문화적 유행(pop-culture)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사는 문인들이 서로의 힘과 생각을 모아서 발간하는 계간지 [시와 반시]의 2011년 가을 호에 게재하기 위하여 작성하였던 원고의 초벌 글을 보완, 편집하여 여기 아래에 첨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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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을 넘자면? :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술의 연결점인 인지과학의 새 틀
 
-이정모-
(계간지 [시와 반시] 2011년 가을 호)
 
1. 뇌과학과 주변 학문들
 
이전에는 해부학 중심이던 신경과학이 20 세기 후반에 뇌영상기법 등의 방법론의 개척에 의해 뇌의 구조와 그 기능에 대한 연구 방식을 재구성하면서 뇌연구 결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로 뇌과학이 과학의 총아로 떠올랐고, 뇌과학의 연결 성과와 가능성에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매료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뇌과학이 일반인의 지적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뇌의 해부학적 측면이나 유전학적 생물적 기반보다는 뇌의 기능을 밝히는 연구 성과 때문이었다. 일반인이 관심을 가지는 뇌의 그 기능은 실상은 뇌의 심적(인지) 기능이다. 그러한 면에서 뇌과학이 각광을 받는 까닭은 사실은 뇌와 마음의 연결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뇌와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로는 뇌과학 이외에도 인지과학, 인지신경과학 등이 있다. 현재 추세로는 이들 학문간 명확한 경계선을 긋기가 어렵다. 서로 중첩되는 분야가 많으며 연구자 자신도 자신의 연구가 어떤 분야에 속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국 대학들에서 뇌과학 학과도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명시적으로 인지과학 연구를 표방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MIT 등에서와 같이 ‘뇌 및 인지과학 학과’가 학과의 공식적 이름인 것은 이러한 학문적 경계의 애매성과 뇌과학이 인지과학적 연결이 없으면 공허한 것임을 잘 나타내어 준다.
 
각광을 받으며 떠오른지 20 여년 밖에 안 된 뇌과학이 다른 학문들과 연결되어 많은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 내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현재(특히 국내에서는) 일종의 뇌과학 지상주의가 전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에 뇌과학적 연구가 충분히 진전된다면 인간의 마음 작동의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는 단순한 환원주의적 입장이 일반인들이 지니는 생각이다. 이 글은 그러한 과다 단순화한 관점을 넘어서는 생각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려는 것이다.
 
2. 인지주의 틀: 형성과 인지과학
 
뇌과학의 형성과 발전의 전파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 20세기에 인류문화사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인지주의’ 틀의 형성이라고 하겠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기에 머물던 고전적 계산기가 인지주의 틀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의 지능적 컴퓨터로 재개념화되어 새 세상이 열렸다. 생명체인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만든 인공물의 하나인 컴퓨터가, 본질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동류의 시스템이라는 발상의 대 전환으로 인하여 인류 문화에서 컴퓨터 시대, 디지털 문화시대가 열렸고 이어서 인터넷 문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과 디지털컴퓨터가 모두 상징(기호)을 조작하는 정보처리 시스템이라고 보는 관점을 정립한 이러한 인지주의 틀의 출현을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20세기의 과학혁명, 곧 ‘인지혁명’이라고 부른다.
 
좌뇌와 우뇌의 기능 차이를 최초로 연구하여 노벨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한 신경심리학자인 스페리(R. Sperry)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지주의의 등장은 하나의 「과학혁명」이었고, 과거의 물리학 중심의 전통적 과학에서처럼 모든 것이 전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결정된다는 상향적 입장이, 인지주의 과학혁명에 의하여 하향적 입장과 조합하여 ‘이중 방향’, ‘이중 결정’ 모형으로 과학이 변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과학관과 세계관이 급진적으로 수정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인지과학과 여러 테크놀로지(특히 인공물과 인간의 상호작용 관련 기술)의 수렴, 융합은 또 다른 미래 가능성들을 시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21세기는 ‘국제화시대’가 아니라 ‘인지시대(the Cognitive Age)’라는 선언적 칼럼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넓게 본다면 인지과학은 뇌과학을 그 하위 구성영역의 하나로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좁게 본다면 뇌과학을 인지과학과 차별화 하여야 하는데, 그럴 경우에 뇌과학 탐구 주제에서 인지 기능을 제외하여야 하고, 그렇게 되어 남는 뇌과학은 별로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다른 대안으로 신경과학자들의 일부가 주장하듯이 인지과학은 신경과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인지과학은 신경과학 또는 생물학의 하위 학문이 되는데, 이것은 곧 ‘의미’란 신경적 활동 이상의 것이 아니다 라는 환원주의적 관점으로 귀착된다. 이 관점은 인지과학이나 인문학에서 수용되기 힘든 입장이다.

3. 뇌과학 지상주의의에 대한 반문
 
21세기의 둘째 10년으로 들어가고 있는 지금은 과연 어떤 시점일까? 인류 문화, 뇌과학을 비롯한 과학과 유전공학, 아이폰 등의 기술, 그리고 인문학과 인간 자신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의 정립이 요청되는 시점일까?
 
우리는, 특히 한국에서는 현재 일종의 뇌과학 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심적 현상을 뇌의 신경 현상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환원주의적 뇌과학의 관점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 현재에는 뇌과학 연구가 갓 출발하여 진행되는 단계이어서 모든 것을 뇌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뇌과학 연구가 충분히 발전하고 진행된다면 인간사의 모든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뇌과학의 신경과정 작용의 환원주의적 원리에 의해 이해,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 틀이 일반인에게 널리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 신경과학자들, 과학학술지, 매스컴이 ‘뇌는 곧 마음(mind)이다’ 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뇌 연구 결과 하나 하나에 대하여 매료되어 뇌 지상주의에 매어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마음은, 의식은 뇌의 신경적 활동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신경과학자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에는 어떤 잘못이 있을까? 뇌에 대한, 신경과학에 대한 나의, 우리의 매료됨이 과연 21세기 내내, 그리고 22세기와 그 후의 미래에도 지속될까? 날마다 새로워지는 뇌과학적 발견과 학계의 저명한 학자들의 생각의 변화에 내가 뒤지지 않고 따라가기 위하여, 그리고 21세기 후반을 맞이하기 위하여 나는 나의 생각의 틀을 어떻게 정립하여야 할까?

4. 뇌과학을 넘어서 1:
 
지금 21세기 초엽 현재, 지성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한, 그리고 무시 못 할 중요한 생각 틀의 변화의 하나는, 바로 ‘나의 의식(마음)’은, 나의 몸 더 좁게는 ‘나의 뇌’에 의해 ‘나’가 아닌 것과 구별될 수 있다는, 즉 ‘나는 나의 뇌다’라는 식의 생각을 버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마음, 의식을 밖으로 ‘확장시켜서, 뇌-몸-환경을 하나의 불가분의 총체적 단위로 이해하려는 스피노자 식, 메를로퐁티 식의 생각이 전개이다.

카르트는 인간의 몸을 동물과 연속선상에 있는 하나의 자동기계로 생각하며, 마음과 몸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였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몸을 동물적기계로 보았고, 마음과 영혼은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마음은 사고하는 실체이나 외연을 지니지(공간을 점하고 있지) 않는 반면, 몸은 공간에서 기하학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외연을 지닌 실체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존재론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수정론적인 입장이 이후에 있었으나, 서구의 문화사에서는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적 입장이 지배하여 왔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신경과학의 등장으로 인하여, 마음을 뇌의 신경적 활동으로 환원시켜 생각하는 일원론(마음=뇌)적 관점이 지배적인 생각이 되기는 하였으나, 정신(마음)과 물질을 대립적으로 보는, 또는 생각의 주체와 그 대상이 되는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보는 데카르트식 존재론의 관점은 아직도 현재의 신경과학의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뇌 = 마음’, ‘마음 = 뇌’, ‘의식 =뇌’ 라는 단순한 과학적 믿음을 과감하게 버리는 움직임이 철학을 비롯한 학계에서 태동하고 있고, 이러한 ‘마음’ 개념의 재구성의 추세가 더욱 확산된다면 단순히 철학, 신경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및 사회과학 전반, 그리고 인공지능, 로보틱스, 다른 인간관련 공학 등에 강한, 그리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리라 생각된다. 특히 로보틱스의 연구에는 가장 강한, 그리고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리라 생각된다.
 
저명한 철학자인 앤디 클라크, 데이빗 찰머스 등이 이러한 발상의 전환 중심에 서 있으며, 여러 학자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물론 강한 비판도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의 구호의 핵심은 ‘데카르트를 넘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신(마음)과 물질(신체), 그리고 주체와 객체를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구별한 데카르트 식의 존재론의 개념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또한 하이데거나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현재 신경과학의 부분인 뇌과학의 환원주의적 관점이(그러나 신경과학자라고 하여 모두 환원주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인간의 마음을, 인간의 활동을 왜곡하여 이해, 접근, 탐구하게 되고, 부분을 마치 전체인 것처럼 오해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철학자들의 일부가 늘 그렇게 이야기하여 오던 이야기이기에, 또 철학자들이 그러한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가보다 라고 생각하며 우리가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하기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다.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리지 못할 이유는 이러한 논의를 최근에 다시 전개하도록 촉발시킨 사람들이 철학자가 아닌 인공지능학자, 로보틱스 연구자, 지각심리학 연구자들이었다는 데에 있다. 
MIT대학의 미디어랩의 중심연구자였던 로드니 브룩스 교수는 인공지능, 로봇 등을 연구하던 중에, 과거의 데카르트 식의(고전적 인지과학) 인공지능이나 로봇시스템 이론으로서는 제대로 된 인공지능시스템이나 로봇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그는 이러한 시스템들에 내장된 프로그램과 몸-환경이 밀접히 연결된 새로운 개념화가 필요함을 강력히 제기하였다. 이에 다른 인공지능 연구자, 로보틱스 연구자들이 점차 공감하였다.
 
공학자들의 이러한 강한 이의 제기에 힘을 얻은 철학자들은 과거의 현상학적 철학 전통에서 이야기하던 개념들을 다시 꺼내어 되생각하고 가다듬어 발전시키기 시작하였다. 몸-환경-활동의 중요성을 예전에 이야기하였던 스피노자,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생각들에 현재까지 진행된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동물행태학, 인류학, 로보틱스 등에 대한 연구를 연결하여 마음, 의식, 존재 개념들을 다시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재구성의 결과로, 마음은, 의식은, 뇌를 넘어서’ 개념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알바노에의 「뇌과학의 함정」이라는 책에서 언급된 바를 인용하자면, ‘마음, 의식, 나 = 나의 뇌(의 활동)’ 이라는 데카르트 식의, 신경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의 ‘거대한 착각’에서 이제는 우리가 빠져 나와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동안 잘못 가고 있던 자연과학을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적 재개념화 도움에 의하여 제 자리에 돌려놓아야 할 때이다. 

‘뇌는 마음과 같지 않다’, ‘마음(의식)은 뇌와 몸, 그리고 환경(다른 인간과의 관계 포함)의 상호작용 활동에 의존한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몸과 환경을 빼놓고 “뇌가 곧 마음이다” 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유기체의 삶은 (뇌의) 내부에 있지 않다’, ‘세계는 뇌 안에 만들어지거나 뇌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미는 (환경과의 행위적 활동) 관계에서 (비로소) 생긴다’, ‘뇌 혼자서 무엇을 이룰 수 없기에, 실상 모든 「의미」는 머릿속에 없다’, ‘우리의 경험을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뇌 자체에서 일어나는 신경 활동이 아니라, 우리와 사물(환경)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역동적 (행위, 활동) 관계다’, ‘마음을 세포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춤을 근육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뇌가 의식의 자리라는 신경과학자의 경솔한 확신, 착각’, ‘우리가 우리의 뇌의 신경적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과학자들이 알게 된 무언가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집에서 실험대로 가져온 선입견이다’ 

그래서, 신경과학자, 일반인, 매스컴 등 우리 모두가 빠져있는 이러한 (뇌과학적) 거대한 착각에 정면으로 맞서 이를 포기하고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거대한 착각을 벗어나서 스피노자, 하이데거, 메를로퐁티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은 다음과 같은 ‘체화적 인지’ 또는 ‘확장된 마음’의 틀로 지금 인지과학의 대안적 관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4. 뇌과학을 넘어서 2: 체화적 인지 틀의 형성
 
인간의 마음에 컴퓨터 메타포를 적용하여 1950년대에 출발한 인지과학은, 이후 1980년대에 뇌 메타포를 적용하여 연결주의와 신경과학(뇌과학)을 발전시킨 이후, 21세기의 현 시점에서 또 다른 변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 변화의 틀은 위에서 언급된 탈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움직임이다. 
최근에 철학과 인지과학에서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또는 확장된(물리적 공간에 연장된) 마음: Extended Mind))'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은 종래의 일반인들이나 과학자들이 갖고 있던 데카르트 식의 이원론적 존재론의 생각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즉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 관점이나, 그 반대인 ‘마음은 곧 뇌의 신경과정이다’ 라는 뇌과학의 환원주의적 일원론 관점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보는 틀이다.
 
이 틀은 인간의 마음, 인지가 개인 내의 뇌 속에 추상적 언어적 명제 형태로 표상된 내용이라고 하기보다는, 구체적인 몸을 가지고(embodied) 환경에 구현, 내재되어(embedded) 사회문화환경에 적응하는 (몸이 있는) 유기체가 ‘환경’과의 순간 순간적 상호작용 행위 역동 상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즉 몸과, 문화, 역사, 사회의 맥락에 의해 구성되고 결정되는 그러한 ‘역동적 활동’으로서의 마음임을 강조하는 접근이다. 
이 ‘체화된 인지’의 보는 틀은 고전적 인지주의의 정보처리 접근이 지니는 제한점을 벗어나려 한다. 즉 환경과는 독립적으로 한 개인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표상이나 정보처리가(고전적 인지주의 입장) 아니라, 몸으로 환경 속에 구체화되며, 몸의 활동을 통하여 환경과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행위로서 마음을 설명하고자 하며, 그리고 환경의 다른 인간의 마음이나 각종 인공물에 분산표상된 마음,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상황 지워지며 행위로 구성되는 마음으로서 보려는 것이다.
 
환경과 인간의 심적 상호작용의 실제는 몸에 의존한다. 따라서 감각운동적 바탕이 마음의 핵심이 되며, 고차 심적 기능도 이러한 기초의 제약과 허용 틀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지각은 능동적이며, 행위는 지각에 의해 인도되며, 신경계, 몸, 환경 요인이 실시간 상에서 상호작용하는 것을 이해함을 통하여 과학적 설명이 주어진다. 최상위의 매스터라고 하는 뇌에 의한 전반적 계획이나 통제가 없이도, 분산된 단위들의 지엽적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가조직적(autopoietic)으로, 창발적으로 출현할 수 있는 것이 심적 현상이다. 마음은 환경에 확장된, 상황지어진 것으로 분석, 이해되어야 하며, 자연적, 생태적 상황에서 맥락이 고려되어서 이해되어야 하며, 전통적 논리적 형식적 접근보다는 환경과의 역동적 시간 경과와 상호작용성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역동적 접근을 통하여 탐구되어야 하며, 현상이 어떻게 (주관적으로) 체험되는가 하는가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도 설명적 요소로 반드시 포함되어야 마음의 작용에 대한, 마음이 이루어내는 ‘의미’에 대한 설명이 충분할 수 있다.
 
즉, 
[1] ‘뇌’를 포함하는 ‘몸’과, 
[2] ‘환경’(각종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과, 
[3] 그리고 이 둘이 연결되는 상호작용적 활동(interactivity)의 

세 측면이 서로 괴리되지 않고, 하나의 역동적 전체로서 개념화되는 그러한 접근을 하여야 『마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뇌과학에서 일반적으로 주장되듯이 ‘몸’이라는 전체도 아닌, 한 부분적 실체인 ‘뇌’에서 마음의 모든 것이 일어나며, 환경과 독립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뇌의 신경적 작용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에 연원을 둔 이러한 개념적 변혁에의 움직임은 종래의 일반인들이나 과학자들이 갖고 있던 마음과 몸에 대한 데카르트 식의 이원론적 생각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즉 심신이원론이나, 대부분의 신경과학자, 뇌과학자들이 지니는 ‘마음은 곧 뇌의 신경과정이다’ 라는 환원주의적 일원론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보는 틀의 펼침이다. 이 체화된 인지 접근은 고전적 인지주의에서 배제되었던 ‘몸’을 마음의 바탕으로 되찾게 하며, 몸을 지닌 마음과 분리될 수 없는 ‘환경’을 인지과학과 심리학에 되살려 놓게 하며, 공간적 연장이 없었던 추상적 ‘정신적 실체’라는 마음이 아니라 ‘몸을 통해 환경에 연장된,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으로 마음 개념을 재개념화 할 가능성을, 아니 그래야 하는 필연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 개념을 이렇게 ‘뇌를 넘어서’ 환경과 괴리되지 않는 실체의 개념으로 재구성한다면, 이러한 재구성의 틀은 심리학, 인지과학의 기초적 이론 틀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물리학, 생물학 등), 테크놀로지(로보틱스 등), 예술 등의 여러 분야에서 이론적, 응용적 틀의 재구성에 (뇌과학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도) 상당한 시사를 지니게 된다.
 
이 ‘체화된 인지’ 틀이 떠오르기 이전에 이미 인지과학의 틀을 도입하여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가 인지과학과 연결되었다. 학문간 수렴, 융합을 이루어 낸 것이다. 인지정치학, 행동경제학, 인지경제학, 신경경제학, 행동법학, 인지법학, 신경법학, 학습과학 등의 새 분야들의 떠오름이 그러한 대표적 예이다. 그러한 분야들에서 뇌의 신경적 현상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개념화하려던 시도들의 편협한 한계를 넘어서, ‘체화적 인지’의 틀을 도입하여 인간과 사회현상을 보는 관점을 재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이 미래 사회과학의 과제로 남는다.
 
공학의 분야들 중에는 처음부터 인지과학의 한 중심 분야이었던 인공지능 연구의 연결에 의하여 각종 소프트웨어 시스템이나 디지털 기기의 디자인 분야들, 특히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분야가 인지과학과 연결되어 왔다. 이러한 분야들에서 뇌과학 연구의 발전 결과와 그 시사를 연결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연구 영역이나 뇌-로봇 인터페이스(BRI) 영역이 이러한 시도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많은 새로운 것을 보여줄 듯하면서도 문제점이 계속 남는다. 
환경과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의미(meaning)’를 습득, 창조하고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존재, 환경과 괴리되지 않고 하나되어 살아 움직이는 몸이 있는 유기체로서의 인간이 보여주는 ‘의미를 지어내는’ 삶을 인공적으로 구현하기 힘들다.
 
인문학과 예술 분야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체화된 인지’ 틀은 여러 가지 새로운 개념적 재구성을 시사한다. 예술의 분야에서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채, 몸을 통해 구현되는 마음’의 관점은 문학, 음악, 미술, 공연 등의 분야에서 여러 새로운 개념적 구성 작업을 가능하게 된다. ‘뉴 미디어 이론’에 새 인지과학적 틀이 깊숙이 관여되는 한 이유이다. 그러나 인문학과 예술의 분야는 이를 넘어서 또 다른 개념적 재구성이 요청된다. 즉 내러티브의, 이야기의 문제이다.
 
5. 뇌과학을 넘어서기 3: 내러티브적 마음
 
인문학자 마크 터너 교수는 “문학적 마음”이라는 책에서 ‘인지과학의 중심 주제가 사실상 문학적 마음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마음의 기본 원리이다’ 라고 하였다. 로이드 등의 철학자들의 논의에 의하면 내러티브란 인간 마음의 기본적, 일차적 작동 원리이다. 인지과학 출발의 기틀을 닦은 심리학자 브루너(J. Bruner)는 의미 만들기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며, ‘의미’라는 것은 ‘상징(기호)과 그 지시대상’에 의해 정형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환경에 바탕을 둔 ‘내러티브적 해석’에 의해 매개되고 조정되고 또 재조정되어서 그 맥락적, 개인적 다양성이 살려지고 그 문화적 체계 내에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는 해석 틀에 의해서 비로서 생성되고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을 지금의 주제와 관련하여 넓게 해석하자면, 의미란 문화공동체의 환경에서 부여되는 역동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이며 내러티브적인 것이지, 환경과 별개의 독립적 실체로 개념화될 수 있는 뇌의 신경적 과정이라는 하드웨어적인 것 그 자체만으로 의사소통적 의미를 지니게 되고 다양하고 수용자마다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그러한 현상적, 심리적 의미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각자가 아침부터 밤까지(심지어는 꿈속에서도) 열심히,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이야기’적 의미를 양산하여 내는 그러한 존재이고, [마음의 본질은 ‘이야기, 즉 내러티브 생산 공장’]이라 할 수 있다. 열심히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인간적 존재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존재적 의의를 지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미’란 한 인간이 몸을 통해 환경에 현실적으로 구현되어서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체험적으로 엮어 내는 이야기적, 내러티브적 해석이 바탕이 되는 의미이다.
 
이는 비록 환경과 독립적인 기관으로 설정될 수 있는 뇌의 신경적 작용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게는 되지만, ‘뇌를 넘어서’ 환경과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역사와 문화와 개인적 일화들이 엮여져 짜여지는 문화적 의미의 체계이다. 사회문화적 환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생물학적 그 무엇이다. 뇌과학의 신경적 과정 현상으로만은 도저히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인지적 산물이다.

인지과학에 내러티브적 접근의 도입이 필연적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마음의 결정적 산물이며 또한 인간 마음 활동인, 문학을 인지과학에서 연결하여 탐구하여야 하는 것이 요청될 것이다.
 
 
6. 맺는 말: 인지과학과 문학
 
인지과학 입장에서 본다면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다. 마음의 본질을 분석하고 기술한다는 것, 그리고 문학하는 사람들의 문학활동과 독자의 심적활동이 인지과학에서 논하는 언어이해와 마음이론의 적용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어떻게 받아들여 어떻게 생각할 것일까에 대해 저자가 나름대로 생각하여, 즉 상대방의 마음에 대한 저자의 마음이론에 바탕을 두고, 저자 자신의 생각을 상징으로, 표상으로 표현하고, 이를 읽으면서 독자는 자기의 기억에서 ‘이야기(내러티브)적 원리’ 지식과 각종 세상사 관련 지식을 동원하여 그 상징 표상을 정보처리하고 해석하여 이해하고 그것이 정서적 메커니즘과 연결되어 감흥을 갖게 된다. 
문학작품의 언어적 표현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기보다는, 저자의 글 표현은 독자가 독자 자신의 기억에서 어떠한 지식을 동원하여 이야기적 의미를 해석하고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기호적 단서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의 이 해석과 구성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인지(정서를 포함한) 과정이며, 인지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과거의 문학(비평)이론들로서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구성주의, 페미니즘 등의 입장들이 있었다. 이 틀이 20세기 말에 무너지고, 이제는 문학의 내용 전개나 예술을 자연주의에, 진화이론에 바탕을 두고 이해하거나 인지이론에 의거하여 이해 및 분석하고, 비평하고, 기술하려는 입장이 점차 세를 얻고 있다. 기존의 문학(비평) 이론은 주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측면만 강조하였지, 그러한 문학활동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인지적 측면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가 지니는 시사점을 무시하였다. 실제의 인간은 진화역사적으로 변화/발달한 몸을 지닌 생물체인데, 과거의 문학은(적어도 문학비평이론) 이러한 문학적 산물을 내어놓고 또 이해하는 인간이 자연의 존재라는 ‘자연 범주’ 특성을 무시하여 왔다. 
과거의 문학비평 이론은 문학작품, 예술 등과 관련된 인간 마음의 ‘자연과학적으로 밝혀지는’ 「숨겨진 복잡성」에 대하여 학문적 인식, 과학적 지향함의 수용이 없었다(인지과학적 의미에서). 아니, 실제의 예술작품 생성 작업 현장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나, 문학(비평)이론가들은 문학이론 구성에서 이러한 부면을 무시하여 왔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인간 삶에서 무엇을 위하여 생겨났는가, 문학활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개개의 문학작품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등의 물음들이 진화이론적 관점에서,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접근되고 있다. 앞으로 문학과 인지과학의 연결분야가 인지과학의 응용분야로서 발전될 뿐 아니라, 이 분야가 발전되면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또 다른 상위수준의 인지과학 이론틀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그러한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인지과학적 연구가 문학 연구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인지과학 자체도 문학과 연결됨으로써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하여 보다 거시적인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전개할 수 있음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이 인지과학에서는 마음의 작동원리가 본질적으로 ‘내러티브 엮기이다’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제, 인지과학을 위하여서, 그리고 문학을 위해서라도 문학과 인지과학이 연결, 수렴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문학의 상위범주인 인문학이 인지과학과 연결되어야 한다. 인지과학과 문학을 연결하는 연결점에서 ‘내러티브적 이야기에 바탕을 둔 인문학’과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인 인지과학이 수렴-융합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하드웨어적 작동 원리를 밝히는 뇌과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뇌과학은 인간의 의미있는 미래를 위하여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는 뇌과학 지상주의의 문화적 유행을, 그러한 인지적 착각을 넘어서야 한다.


Friday, March 18, 2011

재난의 심리, 인지, 내러티브, 심리적 극복 등 자료 사이트

재난의 심리, 인지, 내러티브, 심리적 극복 등 자료 사이트
The psychology of disaster
by Kathy McMahon

http://www.energybulletin.net/stories/2011-03-17/psychology-dis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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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sych.on.ca/?id1=128

Disaster Response Network
For login information to access APA DRN Resources, please visit the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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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8.open.ac.uk/platform/news-and-features/the-psychology-japans-disaster

The psychology of Japan's disaster
Platform 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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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logical First Aid
Field Operations Guide 2nd Edition

http://www.nctsn.org/sites/default/files/assets/pdfs/PsyFirstAid.pdf

サイコロジカル・ファーストエイド
実施の手引き 第2版

http://www.nctsn.org/sites/default/files/assets/pdfs/pfa_japanes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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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and Cognitive Perspectives: Coping with Trauma:

Rivka Tuval-Mashiach, Sara Freedman, Neta Bargai, Rut Boker, Hilit Hadar,
and Arieh Y. Shalev

http://terror-medicine.org/publications_files/Trauma%20narrativ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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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의 탈출:   재난피해자의 사회복귀
- 최남희교수(서울네러티브연구소)
http://www.mgn119.com/sub_read.html?uid=2089§ion=sc13§ion2=%B3%ED%B9%AE%C0%DA%B7%E1

Friday, December 24, 2010

21세기 융합 테크놀로지를 여는 인지과학; 한겨레 [사이언스온] 웹진 기사

한겨레신문/ 과학기술총연합회 // 과학웹진 [사이언스 온]에
아래와 같은 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한달에 두 번 정도 기고할 예정입니다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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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ienceon.hani.co.kr/archives/13698

한겨레신문 / 과학기술총연합회 과학웹진 [사이언스 온]

[새연재] 테크놀로지 너희가 ‘마음, 몸, 이야기’를 아느냐?

21세기 융합 테크놀로지를 여는 인지과학
-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1) -연재를 시작하며
BY 이정모 l 201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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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인지과학자 이정모 교수가 지난 몇 년 간 했던 대학 강의 자료와 최신의 연구 흐름들을 모아 ‘
마음, 몸, 기술’에 관한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전해준다.

카테고리 :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태그 : CogT, NBIC, 마음, 몸, 브룩스, 아이폰, 융합, 이야기, 인지과학

Saturday, September 18, 2010

우리법연구회 초청강연[법-인지과학] ppt-pdf 2개 파일 자료

어제 2010년 9월 18일 (토)에 ‘우리법연구회’의 초청강연에서
법-인지과학의 연결을 주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발표 ppt 파일들을pdf 파일로 만들어 올립니다.
(저작권 문제 가능 그림들은 삭제함)
파일들은 위 제목을 클릭하셔서 보이시는 네이버 블로그의 첨부 파일로 있습니다.

1. 발표 파일: ppt-pdf ; 크기 = 1.18 M
2. 참고용 부록 ppt-pdf 파일; 크기 = 0.529 M

부록 파일의 슬라이드 43-111 에 보시면
[부록3]에 [법 & 뇌] 내용이 있습니다.

이 부록3 전체 또는, 시간이 없으시면 슬라이드 77-111의
[법률가를 위한 뇌영상 자료 활용 지침] 내용을 보시면,
뇌과학, 뇌영상 자료에 무비판적으로 매료되기보다는
어찌하면 객관적 자세를 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시사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미국법학교수들의 자료에 + 그 말미에
제가 과학철학적 관점에서 생각하여야 할 주의점들을 추가한 것입니다.

어제, 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 주시고 좋은 질문을 하여 주신
우리법연구회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여러 가지로 기대를 합니다.

Sunday, August 15, 2010

법인지과학 보완 수정본 ppt-pdf 파일 (571 슬라이드)/ 2.1M

"Approaches in Cognitive Science of Law: Rationality, brain, body, and narratives."
- a ppt-pdf file ; file size = 2.1./ number of slides + 571-
The file is linked to the above h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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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 08. 04 일에 서울대 '신경과학과 형법' 연구 모임에
초청되어 발표한 파일을 다시 수정, 확장, 보완하여 올립니다

이번에는 무더위로 좀 고생을 하여 작업을 중단하느라
바로 보완 파일을 올리지 못하였다가 이제 정리하여 올립니다
(이 글의 제목에 pdf 파일과 아래 내용이 링크되어 있습니다.

만들고 보니 슬라이드 갯수가 571 개나 되었습니다
보시는 분들이 가능한 한 다른 자료 파일을 참고하여야 하지 않도록 하려다 보니 파일 크기가 불어났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더위에 하나의 책을 쓴다는 생각을 하며 만든 ppt 파일입니다

수정하여야 할 부분이 많이 있겠지만 현재 수준에서 일단은 손을 털기로 하고
다른 일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조야한 결과물이지만 하여간 밀린 숙제를 끝내는 기분입니다

Sunday, August 8, 2010

Approaches in Cognitive Science of Law: Rationality, brain, body, and narratives.

"Approaches in Cognitive Science of Law: Rationality, brain, body, and narratives."
(text in Korean)
[출처] 2010-08-04, 서울대 신경과학과형법연구회 초청발표(법인지과학) ppt-pdf 파일
ppt 231 slides : (1.1.M)

Sunday, June 13, 2010

Human: The narrative Being and its relation to Gottheit (:an essay in Korean; 우리의 이야기, 신의 이야기)

Human: The narrative Being and its relation to Gottheit (:an essay in Korean)
by : Jung-Mo Lee

제목: 우리의 이야기, 신의 이야기
글: 이정모
2010. 06. 12

Texts are given in Korean at the following link :
http://blog.naver.com/metapsy/40108509543

Saturday, March 20, 2010

법 영역의 인지과학적 재조명; 파일 2개 사이트 링크

지난 2010년 03월 19일
한국개발연구원 소회의실에서 있었던
KDI-제도학회 공동 월례세미나 에서 발표한

'법의 영역에 대한 인지과학적 관점에서의 재조명'

파일 2개 (hwp-pdf; ppt-pdf)를 보완, 확장, 수정하여 다음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이 자료 제목 링크사이트 또는 아래 사이트에서 첨부파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링크:

http://blog.naver.com/metapsy/40103229102     또는
http://cogpsy.skku.ac.kr/cwb-bin/CrazyWWWBoard.exe?mode=read&num=3278&db=newarticle&backdepth=1

위의 사이트에서는 파일을 일단 다운 받은 후에야 그 내용을  볼 수 있는데
다운 받지 않고 파일들을 바로 보려면  다음 주소로 가시기 바랍니다.

http://cogpsy.skku.ac.kr/cwb-bin/CrazyWWWBoard.exe?mode=read&num=3278&db=newarticle&backdepth=1


하바드대 경제학 전공 학생들의 '이런 경제학은 제발 우리에게 가르치지 말아달라'는 호소를 인용하며, 전통적 경제학이  새로운 경제학으로 대체되어야 함을,
행동경제학 책이 국내에 소개되기 훨씬 이전에 인지과학과 경제학의 연결 당위성,
경제학은 인지과학과 연결되어 변해야 함을
경제학의 재 탄생의 필요성을 저의 홈페이지 등에서 제기한 바 있는데

이제는
법학이 인지과학과 연결하여서 전통적 법학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여년 내에 국내 법학계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힘들다고 처음에 생각하였지만
저의 생각이 틀린 것을 지금 깨닫고 있습니다.

전통 경제학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어 하는 국내 경제학계의 다소 보수적인 자세와는 달리,
국내 법 영역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열린 마음을 지닌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국내 법 영역의 밝은 미래에 많은 기대를 걸게 됩니다.

Saturday, January 2, 2010

2010년에 내다보는 인지과학: 미래의 인지과학 전개에 대한 한 짧은 생각 자료-웹

2010년에 내다보는 인지과학: 미래의 인지과학 전개에 대한 한 짧은 생각
- 이정모 -
The future of Cognitive Science in 2010s and beyond: A personal preview
-Jung-Mo Lee - http://cogpsy.skku.ac.kr/

(* The article is written in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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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서]. 벌써 2010년 1월1일입니다. 실상 어제와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지만, 시간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09년은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30여년의 대학교수 생활을 정년퇴임으로 막을 내린 해였습니다. 또한 제가 건강관리를 잘 하지 못한 까닭으로 인하여 3월부터 12월중반에 이르기까지 병원들을 드나들며 암수술을 받는 등 여러 가지 병치례를 하였기에 인지과학 관련 웹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2010년을 맞이하여 웹에서 저의 새해의 글을 기다리고 계실 국내외의 여러분들을 생각하여 글을 올리지만, 지금도 건강문제가 자유롭지 않기에 잘 가다듬어진 글을 쓰지 못하고 조야한 글로, 앞으로 2010년대와 그 이후에 전개될 인지과학의 모습에 대한 저의 편향된 예측을 개괄적으로 적어 보려 합니다.

*저의 홈페이지, 블로그, ‘인지과학-심리학 문화공동체(www.korgnet.net)' 에 들리시는 여러분들에게 개인적인 새해 인사에 대신하여 이 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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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세기 첫 10년의 인지과학의 흐름].

21세기 들어서서 지난 10년 동안 이루어진 (주로 해외에서) 인지과학의 흐름으 주요 추세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1. 첫째로 고전적 인지주의(Classical Cognitivism)를 통해 초기 인지과학에서 강한 영향을 지녔던 인공지능 연구의 영향력이 점차 약하여 지고, 신경과학과 연결된 인지신경과학적 접근이 인지과학의 여러 영역에서 널리 펼쳐지고 안착된 것이 지난 10년의 대표적 추세였다고 볼 수 있다. 즉 뇌에 대한 신경과학적 연구가 인지과학에서의 마음에 대한 연구의 기본 접근으로써 확실히 자리잡은 것이다. 이제는 인지과학내에서 신경적 접근에 바탕을 두지 않고는 인지기능을 이야기하는 이론을 제기하기 힘든 것이 21세기 초의 대세이다.

본래부터 신경-계산 이론이나 모델을 강조하여온 시각 분야 연구가 그러하였고, 기억, 언어, 정서 등의 분야 연구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강하게 드러났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추세는 단지 인지과학 내에서 멈추지 않고 주변학문에 확산되어, 인문학, 사회과학의 어떤 분야 명칭 앞에 ‘neuro-’ 라는 접두어가 붙여져서 각종 ‘신경---’이라는 학문분야들이(예: 신경경제학) 새롭게 빠르게 열려져 온 것도 그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결과로 뇌의 인지적 기능들에 관한 여러 주제들이 이제는 과학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정도에 까지 이르렀다. 그렇지만 국내외 일반인들의 대부분은 그 주제들이 인지과학적 주제인 줄 모르며 그저 신경과학적 주제로만 아직 생각하고 있는 한계도 있다.



1.2. 둘째로, 다른 한 흐름은 (신경과과학적 연구가 아닌) 전통적 인지과학의 경험적 결과의 연구 결과가 주는 이론적 의의가 주변학문에로 확산되어 주변학문을 변화시킨 추세라고 할 수 있다. Amos Tversky와 Daniel Kahneman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인지심리학자) 등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heuristics적 인지에 대하여 연구한 실험연구 결과 및 이론틀이 경제학에 도입되어서, 그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온 신고전주의의 경제학을 탈바꿈시키며 행동경제학, 인지경제학 등을 탄생시킨 것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이성적, 합리적 사고를 한다’는 과거의 사회과학적 통념을 깨뜨린 것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경제학과 관련하여 일어나고 있는 행동경제학 관련 책의 출판과, 강좌, 논의들의 경향은 20년 내지 30년 전에 인지심리학을 중심으로 인지과학 내에서 이루어진 경험적, 이론적 연구 결과가 지니는 학문적 의의의 후폭풍이라고 할 수 있다.



1.3. 셋째로, 지난 10년간 일어난 인지과학의 다른 한 흐름은 미래 융합과학기술 - (국내 용어로는 ‘융합과학기술’이지만, 해외 영문 용어로는 ‘수렴적 테크놀로지: Converging Technologies’이다) - 의 4대 핵심축으로서 인지과학 기술이 부각되고 또한 인지과학의 공학적 응용의 영역이 확대된 것이다.

IT, BT, NT와 함께 인지과학기술(CogT)이 미래 테크놀로지 사회를 이끌어 나아갈 4대 핵심 테크놀로지 축이라는 것은 2003년에 발표된 미국과학재단(NSF)의 'NBIC Converging Technologies' 틀, 그리고 이어서 발표된 유럽공동체의 CTEKS(Converging Technologies for the European Knowledge Society) 틀에서 표명된 바 있다. 또한 영국 등에서, 미래사회의 과제로서 ‘mental capital(심적 자본)’을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미래 과제로 간주하는 틀이 천명됨에 따라 인지과학의 응용적 기술이 미래 테크놀로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이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NBIC 틀; http://www.wtec.org/ConvergingTechnologies/Report/NBIC_report.pdf

*유럽의 CTEKS 틀; http://www.ntnu.no/2020/final_report_en.pdf

*유럽의 Mental Capital & Mental welbeing 예측 프로젝:

http://www.foresight.gov.uk/OurWork/ActiveProjects/Mental%20Capital/ProjectOutputs.asp



이러한 연관에서 인지과학기술의 응용적 적용 영역이 인공지능, 인지공학은 물론, 인지인포마틱스, 인지로보틱스 등으로 확산되었음에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 인지공학 연구자들은 그동안에 이루어진 인지과학적 개념, 이론, 경험적 연구결과(특히 Damsio의 인지신경과학 연구에서, 이성적 판단과 결정의 밑바탕에는 반드시 정서적 요소들이 놓여 있다는 연구 결과)들과 연결하여 인지공학의 틀을 재구성하였다. 그 결과로 인지과학의 응용적 개념화 및 적용 영역이 확장되었다(예: Emotional Computer 개념, Affective Computing/ Social Robot 개념 등). 또한 인지과학의 응용적 적용 분야의 확산의 다른 한 현상으로는 인공지능 연구 대신 로봇 연구가 인지과학과 공학을 연결하는 핵심 분야로 떠올랐으며 로보틱스가 인지과학의 이론을 검증하고 세련화 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틀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4. 넷째로, 인지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태동이다. 이는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또는 확장된 마음(공간적으로 연장된 마음; Extended Mind)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인지과학의 새 틀이다. 이 틀에 대하여는 기존에 여러 발표에서 언급한 바 있다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 웹진 2009: http://korcogsci.blogspot.com/2009/12/2009.html)

(‘체화된 인지‘ 관련 글 자료 링크 모음: http://blog.naver.com/metapsy/40087228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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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래 2010년대의 인지과학에 대한 조망: 개인적 관점].



2010년대의 앞으로 10년에서 그리고 2010년대를 넘어서 2020년대에 인지과학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조망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을 쓴 R. Kurzweil 박사처럼 통계학이나 과학기술 관련 조사연구자 집단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어서, 단순히 직관적 미래 예측이 아니라 구제척인 통계적 자료에 의거하여 통계적 추론에 근거한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러한 한계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의 인지과학 관련 자료들의 탐색에 바탕을 두고 (일부분은 개인적 바램과 편향이 가입된 것이기는 하지만) 2010년대, 2020년대에 전개될 인지과학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다음과 같이 몇 개의 흐름으로 예상하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1. 인지신경과학적 연구 결과의 발전과 확산.

2. 체화된 인지 접근의 확산

3. 동역학체계 접근의 부각

4. 내러티브적 인지 접근의 떠오름

5. 인지과학의 응용 영역과 이론의 정교화의 확산

6. 다원적 설명 틀에 대한 수용적 관점의 확대



위의 각 항목에 대하여 개괄적인 설명을 아래에 제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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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인지신경과학적 연구 결과의 발전과 확산.

- 인지과학 연구를 뇌에 대한 신경과학적 연구로 환원시키려는 접근과, 뇌과학 연구에 의하여 모든 것이 밝혀질 수 있다는 식의 뇌연구 지상주의적 접근의 문제점을 이미 여러 기회를 통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다(http://korcogsci.blogspot.com/2009/01/blog-post_17.html ; “일부 기존 뇌연구의 문제점과 뇌연구 지상주의식 생각의 문제점:- 인지과학은 왜 뇌 연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가”). 마음에 대한 설명을 신경적 접근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시도와 그러한 접근이 실제로 과학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 바 사이에는 현격한 설명적 간격(explanatory gaps)이 있다는 철학적 논의가 있고 이러한 철학적 입장에서 기존의 신경과학적 접근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지과학에서 마음의 작동과정을 밝히는 과학적 접근으로서의 신경과학적 접근의 위치는 경험과학적 접근으로서 현재 상당히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과학적 패러다임의 타당성의 인정 내지 수용의 문제는 그 과학계의 사람들이 지니는 의견의 일치에 의하여 좌우되며,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지니는 암묵적 생각의 틀도 영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개관적 실증주의적 경험과학적 과학관이 기존으 과학계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한에서는 이 관점이 지지하는 입장인 환원주의(reductionism)를 도입하여 '신경적 환원주의를 표방하는 신경과학적 접근'으로 뇌를 탐구하여 마음의 본질을 밝히겠다고 하는 인지신경과학의 접근 틀(연구 프로그램)이 쉽게 무너지거나 다른 과학적 틀로 쉽게 대체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앞으로 신경과학적 접근에 의해 뇌를 탐구하여 인간의 마음의 특성을 밝히겠다고 하는 현재의 신경과학적, 좁게는 인지신경과학적 접근은 향후 10여년의 과학계에서 계속 그 지배적 위치를 점유하고, 많은 새로운 인지신경과학적 연구 결과를 산출하리라 예상된다. 그러한 여정에서, 단지 어떠어떠한 심적(인지적) 기능이 뇌의 어느 부위에서 일어난다는 식의 논의를 넘어서, 그 심적(인지적) 과정의 과정적 정보처리 특성이 어떠 어떠하다, 그리고 마음의 작동 특성에 대한 과거의 철학적, 심리학적 개념화가 무엇이 문제점이 있는가가 어느 정도 밝혀지리라 본다.

따라서 앞으로 10여년간을 인지과학의 물음들을 탐색하며 과학자적 연구자의 경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사람은 신경과학적 방법론을 익히며 인지신경과학 접근 노선에서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안전한(적어도 향후 10여년 동안 과학적 연구자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거나, 이미 확보된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는) 방침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10 여 년 동안, 뇌 기능에 대한 인지신경과학적 연구 결과가 일반인의 일상과 일 장면에서 다양하게 인용, 적용되며 사람들의 구체적 삶과 일의 방식 변화에 영향 주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신경과학적 접근을 통한 현상의 설명에는 제한점이 있다. 이는 다음 절에서 논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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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접근의 확산.

- 이미 앞에서 [21세기 첫 10년의 인지과학의 흐름]의 넷째 경향으로 언급된 '체화적 인지'(EC, Embodied cognition; EM, Extended Mind; EC, Enacted Cognition; SC, Situated Cognition; SM; Sitated Mind)라는 접근으로 인지과학의 “제2의” 또는 “제3의” 패러다임적 변화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새 접근의 영향이 인지과학에서 그리고 인지과학기술의 응용 분야에서는 2010-2020년대의 기간동안에 무시하지 못할 세력으로 점진적으로 자리 잡으리라고 본다. 해외 학계의 여러 경향이 이런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더구나 그 징후들이 철학이나 사회과학 이론가들에 의해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로보틱스 등 공학의 분야와 복잡계 이론과 관련된 물리학 분야의 연구자들도 제기하고 있으며, 학문간 수렴적(융합적) 연결에의 노력이 여러 영역에서 추진되고 있기에 이러한 패러다임적 변화는 무시하기 힘든 것이다.

(예: 체화된 인지와 로보틱스:http://www.ccc.utexas.edu/cogsci08/tut08-yu.pdf;

인지물리학: http://www.springerlink.com/content/fn9825315u7t7476/)



그동안 국내외의 전통적 인지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의 연구자들 대다수가 이러한 체화된 연구접근에 대하여 이를 무시하거나 강한 비판을 아직 제기하고 있지만, 이 새 패러다임의 등장은 마치 1950년대에 당시 심리학 및 주변학문의 학계를 주름잡고 있던 행동주의에 강하게 반발하여 등장하였던 고전적 인지주의(Classical Cognitivism)의 출현 및 빠른 전파에 필적하는 그러한 학문적 추세로 미래에 자리잡으리라 본다. (비록 고전적 인지주의 같은 굳건한 경험과학적 또는 형식적(formal) 접근 틀을 지니고 있지 않기에, 이러한 전통적 경험과학틀 내지는 formal approach와의 연결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지만.)

단 이러한 변화는 한국 내에서는 그리 빠르게 확산되지 않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한국 내의 기존의 과학기술의 개념은 구체적 물질 위주의 과학기술 개념으로 형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한국인의 사고는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구체성 위주(뇌와 같은 구체적, 물질적 대상의 연구를 강조하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한국 내에서 인지과학을 수용한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미래를 낙관하기 힘들다. 미국에서 1950년대 말에 인지과학의 틀이 형성되었고, 1970년대에 과학 관련 기관이나 재단들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1980년대 초기에 대학 학부에서 인지과학 학과가 생겨나고, 2003년에 미국과학재단에서 인지과학기술이 4대 핵심축으로 포함된 ‘NBIC 미래 테크놀로지’ 틀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십년이 지난 지금 2010년대에 들어서는 문턱에서의 한국내 인지과학의 수용 수준은 미약하다. 미국 일류 대학 학부에서 인지과학 학과가 생긴 지 거의 30 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내 대학에 인지과학 학부가 설치된 대학이 하나도 없다는 것, 미래 융합기술을 논하면서도 아직도 IT-BT-NT 삼두마차 식의 생각틀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한국적 상황은 해외 인지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국내에 자리잡기에는(과학계와 일반인들의 생각의 틀의 전환에) 앞으로도 오랜 시일이 걸리리라는 예측을 낳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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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동역학체계 접근의 부각

(* 이는 체화된 인지 접근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독자적 절로 다룬다.)

- 인지과학의 미래 새 틀의 이론적 내용과 테크놀로지적 응용 가능성에 대한 국내 수용 과정의 진행이 느리더라도,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와 수용은 점차 가속화되리라 본다. 이러한 변화에는 자연계 현상과 인공현상 모두를 복잡계(Complex Systems)의 틀에서 보며, 인지현상을 하나의 자연계 시스템의 현상으로 간주하려는 접근이 한 주요틀이 되리라 본다. 이미 다른 발표에서도 여러번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 IBM회사의 아이디어 리더들이 제시한 과학적 현상/대상의 분류 틀에 의하면, 인지체계는 물리체계, 생명체계와 함께 자연계의 3대 구성요소 체계가 된다. 이 틀을 다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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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복잡계로 이루어져 있고 이 복잡계는 2(primary systems) - 5(secondary systems) 체계로 구성된다. 미래 사회는 NBCST (Nano- Bio- Cogno-Socio-Techno) 수렴과학기술시대가 되며, 인지과학이 미래 NBCST 2-5 Convergence 틀의 한 핵심 축이 된다. 이들이 지금은 분화되어 탐구되지만 이들 복잡계는 실상은 인류진화사에서 공진화해 왔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며, 미래에는 이들이 연결된 통합된 체계(integrated, unified information systems UIS)으로 진화되고 연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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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atural Systems

ㄱ. Physical systems: 물리학, 천체물리학 나노기술 등의 분야

ㄴ. Living systems: 생물학, 화학, 동물생태학, 발생학 등의 분야

ㄷ. Cognitive Systems: 인지과학, 심리학, 신경생리학, 아동발달과학 등의 분야

2. Human-Made systems

ㄹ. Social systems: 사회학, 동물생태학, 언어학, 경제학, 정치학, 조직행동학 등의 분야

ㅁ. Technology systems: 테크놀로지디자인과학, HCI, 인간공학, 바이오닉스 등의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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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처: J. C. Spohrer & D. C. Engelbart (2004). The Coevolution of Human Potential and Converging Technologies.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Volume 1013, 50-82, May 2004.

** Spohrer 박사는 지식서비스과학이라는 분야를 창안한 사람이며, Englebart 박사는 우리가 항상 사용하는 컴퓨터 마우스를 최초로 창안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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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시스템을 복잡계 이론을 동원하여 이렇게 개념화하면서, 인지과학적 접근은 자연히 이론물리학의 개념적 작업과 연결되며, 뇌의 부위별 신경적 과정의 통합 현상이나 심리적(인지적) 현상의 상위수준의 역동과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물리학의 동역학체계(Dynamic Systems)적인 틀을 도입하게 된다. 이미 심리학, 인지과학에서 동역학체계적 접근을 시작한 분야는 주로 인지발달 영역이나 로보틱스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동역학적 접근이 ‘체화된 인지’ 이론틀을 지원하는 면이 있기에, 앞으로는 복잡계의 틀, 체화된 인지의 틀, 동역학체계의 틀 등이 보다 밀접한 (물론, 이들 사이에는 이론적으로 갈등되는 부면이 있을 수 있기는 하겠지만) 연결을 이루어 내며 인지현상을 탐구, 설명하는 틀로 떠오르리라고 본다.

10년, 20년 후의 인지과학 연구자로서 튼튼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기 위하여는 아마도 그때까지도 세력을 지니고 있을 인지신경과학적 연구 방법과, 그리고 동역학체계를 포함한 복잡계에 대한 이론물리학적 이론틀, 그리고 전통적 경험과학적 인지과학 연구 방법과 이론들 등에 친숙한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물리학은 자연과학의 기초학문, 인지과학은 사회과학 학문으로 분류하여 온 기존의 한국적 학문 분류 틀이 실제 연구자의 연구활동에 맞지 않으며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더욱 드러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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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인지과학의 응용 영역과 이론의 정교화의 확산.

- 미국 과학재단이나 유럽공동체의 미래 예측위원회가 밝혔듯이 미래 사회에서는 수렴(융합) 테크놀로지가 중요하게 된다. 컴퓨터, 인터넷, 로봇, 교육체계 등의 하드 및 소프트 인공물(artifacts)의 발전은 공학과 인지과학을 더욱 가깝게 연결시키고 보다 효율적이고 사용하기에 편한, 그러면서도 인간의 인지적 기능을 증진시키는(cognitive enhancing) 그러한 도구, 인공물을 산출하게 할 것이다. 감각적 디자인과 구조적 설계에서 예술을 포함한 여러 학문 분야들이 인지과학의 이론과 응용적 기술을 중심으로 연결되리라 본다. 즉 인지과학의 여러 응용 분야에서 인지과학기술을 징검다리로 하여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이 공학과 수렴(융합)되리라 본다. 인지과학이 학문간 수렴(융합)의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욱 부각되리라 본다

미래 사회에서 응용인지과학기술의 확산에 대하여는 위의 1.3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고, 또 http://blog.naver.com/metapsy/40047881318 (또는 http://korcogsci.blogspot.com/2008/06/cogno.html) 에 게시된 글의 다음의 3개절에서 상세히 기술되고 있기에,

4.3. 미래 융합과학기술의 전개와 인지과학

4.4. 기타 인지과학의 공학적 응용 관련 미래 변화 특성

4.5. 인지과학이 열어가는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공학 계 등의 변혁

그리고 [이정모(209). 인지과학: 학문간 융합의 원리와 응용] 책의 15장 5절(융합과학기술과 인지과학의 응용 연결, 변화 추세)에서 (695-701 쪽) 다루어져 있기에, 여기에서 중복하여 부연 설명은 생략한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위의 자료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응용인지과학기술의 적용 영역의 확산과 이론의 가다듬음이, '체화된 인지' 접근, 물리학의 복잡계 이론과 동역학 틀, 기존의 인지공학적 접근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지인포마틱스 (http://en.wikipedia.org/wiki/Cognitive_informatics), 인공인지시스템(Artificial Cognitive Sysems; http://www.scitech.ac.uk/Resources/PDF/PatrickCourtney.pdf), 로보틱스,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s(http://en.wikipedia.org/wiki/Cyber-physical_system), 인지기능향상시스템(Cognitive skill Enhancement Systems; http://www.atl.lmco.com/papers/1250.pdf) 등의 응용인지과학 영역의 탐구가 개념적으로, 이론적으로, 더욱 정교화된다면 인지과학기술이 공학적으로 응용되는 영역은 계속 확대 되어 일반인의 일상적 삶에 밀접히 연결된 기술로 자리 잡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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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내러티브적 인지] 접근의 떠오름

- 인지과학이 지난 50년 동안에 주로 고전적 인지주의(계산주의) 틀을 중심으로 발전됨에 따라 그동안 소홀이 되고 발전이 별로 두드러지지 못하였던 인지과학의 영역이, 인간의 마음(인지)과 이야기(내러티브, narrative)적 접근을 연결하는 틀의, 즉 인문학과 인지과학, 공학을 연결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은 형식화하기 힘들고 객관적 경험적 접근이 어렵다고 간주되어 주류 인지과학의 흐름에서는 그동안 배제되어 온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역이, 이 영역이 지니는 의의에 대한 학자들의 생각이 변화되고 있고 또 그 변화가 인지과학 전체 패러다임의 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고 또 앞으로 그 영향이 점진적으로 증가되리라 본다.

- 수학을 전공하고 영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인지과학자로 활동하며 인지문학과 인지과학 일반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Mark Turner (http://markturner.org/) 교수는 1996년의 책, “The Literary Mind"라는 책에서 ‘인지과학의 중심 주제가 사실상 문학적 마음의 문제이다(”The central issues for cognitive science are in fact the issue of the literary mind.")’ 그리고 '이야기가 마음의 기본 원리이다(‘Story is a basic principle of mind.’)'라고 하였으며, 인지과학과 문학을 연결하며, 내러티브적 인지과학이라는 대안적 인지과학 접근을 추진하고 있다.

내러티브적 접근을 인지과학에 도입하여 실제의 인간의 마음의 작동의 원리를 밝히려는 이러한 Turner 교수 등의 노력은 실상 1930년대 영국 심리학자였던 F. C. Bartlett 교수의 ‘마음은 이야기 스키마에 의한 의미에의 구성적 노력’이라는 생각의 부활이며, 소프트한 인지과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주장하여온 인지심리학자(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인지과학의 출발에 큰 역할을 하였던) Jerome Bruner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음에 제시하는 철학자들의 논의에서도 인간의 마음의 기본 원리가 이야기적 원리, 즉 내러티브적 원리임이 논의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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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철학자들의 내러티브적 입장과 그 시사점에 대한 개관.



철학자 D. Lloyd(1989)는 1989년에 "Simple Minds" 라는 책에서 인간의 심적 원리로 세 가지를 들었다. 그는, 가장 낮은 수준에서는 구현(implementation) 수준의 신경망적 연결주의 원리가 작용하고, 상위 심적 수준에서는 일차적으로 이야기 원리(psychonarratology principle)가 작용하고, 그 윗 수준에서는 필요에 의해서만 합리적 이성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논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이성의 일차적 패턴은 이야기 패턴이고, 이차적 패턴이 논리다. 이성(추리)의 1차적(원래) 형태는 이야기 패턴(narrative pattern)이다. 언어 이해, 추리, 문제해결 등의 제반 현상들 모두는 실상 더 기본적인 원초적 사고 패턴을 반영하는 것이고 이 원초적 사고 패턴이 바로 이야기 패턴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역동은 이야기적 역동(narrative psychodynamics)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지의 중요한 요소가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인지의 기본 구조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은 인간이 모든 정보처리에 있어서 이야기 구조에 맞게 구성하고 처리하는 기본 경향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Lloyd는 이것을 psychonarratology라고 부르고 이러한 유형의 사고가 일차적이며 원초적인 사고 패턴이고, 이것에서 부터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 뒤늦게 진화되었다고 본다.

한편 D. Dennett (1991)은 "Consciousness explained"라는 책에서 내러티브 원리를 마음 이론에 도입하여 ‘다원 초벌 모형(multiple drafts model)’이라는 모형을 제시하였다. 그에 의하면, 여러- 초벌 모형 에서는 온갖 지각들과 온갖 사고와 심적 활동들이 두뇌에서 병렬적으로 처리되어 진행된다고 본다. 여러 길로 감각 입력 정보들이 끊임없이 해석되고 정교화, 재교정된다고 본다. 이러한 여러 길(tracks)에 의한 병렬적 처리가 일어나면서 다양한 첨가, 통합, 수정, 다시 쓰기 등이 여러 수준에서 일어난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러한 것이 이야기 흐름(narrative stream or sequence)같은 것을 낳는다. 이러한 이야기 흐름은 두뇌의 전반에 분산되어 있는 여러 과정들에 의해 끊임없이 편집되며 미래로 무한히 계속된다. 내용들이 새로 도착하고, 수정되고, 다른 내용에 대한 해석이나 행동의 조절에 공헌을 하고, 그런 과정에서 기억 흔적이 남겨지고, 이들은 사라지거나, 아니면 후의 내용에 의해 통합되거나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개작된다.

내용들의 이러한 실타래는 바로 그 다양성(multiplicity) 때문에 이야기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시점이건 두뇌의 여러 곳에서 여러 수준의 편집이 진행 중에 있거나 또는 이루어진 여러 이야기 조각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 조각들 중 어떤 것은 전혀 기여를 못하고, 어떤 것은 잠깐 동안 조금 기여를 하고 사라지고, 어떤 것은 계속 남아서 후속 내용과 행동에 영향을 주며, 그리고 또 소수의 어떤 것은 지속되어 그들의 존재가 언어행동 등의 형태로 알려지기까지 지속된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 두뇌의 어느 공간점에서 검색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데닛의 ‘여러-초벌 모형’은 인간의 미음에 단일한 유일의 이야기 또는 의식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입장에 반대한다. 그는 마음이 다차원적 병렬처리체, 다차원적 여러 이야기 연쇄(narrative sequence)들을 지닌 체계로서, 신경계에 들어있는 정보는 끊임없이 재편집, 교정, 해석되는데, 이는 물리적 공간이 아닌 현상적 공간(phenomenal space)에서 이뤄진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언제 통합적으로 수렴되어 하나의 통일된 지각이 형성되는 것일까? 아무데서도 어느 한 곳에서 그러한 수렴적 통합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 지엽적 작동 상태들 중 어떤 것들은 곧 사라져 버린다. 흔적도 없이. 어떤 것은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렇기는 하나 이러한 각각의 변별 결과의 내용들이 의식에 남기 위해 수렴되어 통과해야 하는 두뇌의 어느 한 장소는 없다고 본다. 낱개의 지엽적 변별이 이루어지자마자 이 결과는 어떤 행동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다른 내적 상태를 조절하는데 쓰인다.

우리가 의식하는 바가 우리가 검색하는 시공간과 양식에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고 이야기는 끊임없이 수정된다는 의미에서,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유일하고 정확하고 규범적인- 그래서 거기에서 벗어난 다른 이야기, 다른 의식 내용은 다 틀린 것인 그러한 - 단일한 이야기란(즉 단일한 합리적 규범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건(이야기 조각이건) 하나의 시간적 조망(time line), 즉 관찰자의 관점에서 본 주관적 사건 연쇄라는 시간적 조망을 갖는다.

위와 같은 Dennett 모형의 내용을 되새겨 본다면, 인간의 의식, 마음이란, 단일적이고 통일적이며, 정적이고 단순 원리적인 단일 주체(agent; self)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원적이고 통일되지 않고, 경쟁적이고, 역동적이며 복잡한 여러 주체(agents; selves) 또는 다원적 이야기들(drafts)에 의해 엮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일한 논리적 합리성에 의해 이성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적이고 역동적인 이야기 구성의 원리에 의해 마음의 내용이 엮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인간 마음의 작동의 일차적 원리가 이성적 사고의 원리라기보다는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역동 원리인 ‘이야기 원리’가 있고, 이에 이성적 합리적 원리가 부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일반적 사고에 있어서는 근원적 일차적 원리인 이야기 원리를 적용하고, 예외적인 경우에서 논리적 합리성의 원리를 적용하여 사고한다고 볼 수 있다.



* 출처: http://blog.naver.com/metapsy/40096269577 ; 6. 마음의 내러티브 원리와 인지과학의 내용을 편집한 것임. 원전: 이정모 (1996). 이성의 합리성과 인지심리학 연구의 의의. 이정모 (편). 인지과학의 제문제 1: 인지과학적 연관. 성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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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인지과학과 문학의 연결

인지과학에 내러티브적 접근의 도입이 필연적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언젠가 궁극적으로는 인간 마음의 결정적 산물이며 또한 인간 마음 활동인, 문학을 인지과학에서 연결하여 탐구하여야 하는 것이 요청될 것이다. 인지과학을 위하여서, 그리고 문학을 위해서라도 문학과 인지과학이 연결되어야 한다, 수렴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인문학]과 [인간학-인지과학] 연결되어야 한다. 인지과학과 문학을 연결하는 연결점에서 [인문학]과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수렴-융합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마크 터너의 말; “We may be seeing a coming together of the humanities and the science of human nature.”).

이러한 연결은: 인지과학과 문학, 예술의 능동적이거 적극적인 수렴, 융합, 통합적 연결에 의해 가능하여진다. 인문학과 인지과학의 연결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하여 인문학자와 인지과학자들에게 인간 마음 또는 심적활동과의 이해와, 문학/예술(이해)의 상호 괴리 현상이 지속될 수 없음의 인식이, 그러한 인식의 변환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학문적 분위기의 떠오름이 진행되어야 한다.

예술과 인지과학을 연결함에 있어서, “… 예술은 인간 마음의 작동을 이해하는 데에서 주변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are not marginal for understanding the human mind.)”라는 자각, 인식이 인지과학자들에게 필요하다. 또한 문학/예술가/인문학자들은 인지과학의 중요한 발견, 중요한 지적 발전을 무시하거나 모르고 있어서는 안 되며, 인지과학자들은 문학과 예술을 다루지 않거나 무시하여서는 인간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 영역들은 어떤 근거에서 학문간 수렴, 융합적 생각의 틀, 그리고 수렴적 융합적 테크놀로지의 창출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이론적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내러티브, 문학, 예슬 등이 인간에게 가능하게 하는 공통적, 공유적 개념적 바탕의 창출과 개념적 융합, 혼성의 현상에서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연관에서 내러티브적 인지과학 접근의 추구나, 수렴-융합적(당연히 창의적인) 사고의 육성 및 창출에 인지과학적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이론틀로써 인지언어학을 중심으로 제기된 ‘개념적 혼성(융합); Conceptual Blending'의 틀이 제공하는 이론적, 응용적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2.5.3. 개념적 혼성(Conceptual blending): 인지과학과 문학 연결의 한 이론적 틀

초기의 고전적 인지과학은, 주로 기억, 학습, 기호적 사고, 언어습득 등과 같은 심적 과정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 컴퓨터와 가장 닮은 심적 과정임을 전제한 고전적 인지주의의 틀의 영향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지과학은 더욱 점진적으로 보다 정서적(감정적) 요인이 개입되고 비교적 더 창조적인 마음의 측면에도 초점을 맞추어 가고 있다. 과거에는 문학이 인지과학을 멀리하고 인지과학과 문학이 서로 연결이 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 두 영역이 수렴, 융합되고 있다. 그러한 수렴을 가능하게 하여주며 인간의 마음의 내러티브적 작용의 역동을 이해하는 개념적, 이론적 바탕 틀로 등장한 것이 ‘개념적 융합: (conceptual blending)의 이론 틀’이리고 할 수 있다. 개념적 융합/혼성(blending)의 원리 이론은 주로 다음 책에서 제시되어졌다.

- 원저명: “The way we think: Conceptual blending and the Mind’s hidden complexities.” 저자: Gilles Fauconnier, & Mark Turner; 출판사“ Basic Books; 2002,

-국내 번역판; 책 제목: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질 포코니에, 마크 터너 (지음); 김동환, 최영호 (옮김). 서울: 지호. 2009. 9. ISBN 978-89-5909-051-8; 624쪽.



[개념적 혼성이란 무엇인가?] (위키피디아자료; http://en.wikipedia.org/wiki/Conceptual_blending)

개념적 융합(혼성)이란 인지의 일반이론으로서, 의식수준에서라기 보다는 하의식 수준에서 작동하는 인지적 현상이다. 의식적이건, 하의식적이건 현재의 문제와 관련되는 2개 이상의 상황(학문 분야 간이건, 테크놀로지, 산업의 영역들/ 대상들/ 사건 들/ 일상적 생활-행위 장면 등이건)의 씨나리오적 요소들 그리고 핵심적 관계성이 혼성(blended; 결합, 융합)되는 인지적 과정을 지칭한다. 문학 작품에서 많이 사용되는 은유, 유추, 비유 등의 이해 과정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예: ‘바다와 같은 어머니의 사랑’), 이 개념적 혼성 과정들이 인간의 인지와 행동, 특히 일상적 사고와 언어의 도처에 산재하여 있다고 본다. 이러한 개념적 융합(혼성) 틀은 창의성을 비롯하여 인간의 여러 인지적 현상을 설명하여 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으며, 인문학, 예술, 인지과학을 연결하여 인간의 인지, 마음, 행동, 문화, 과학기술의 융합을 이해하는 (한국의 교육과학기술부, 대학, 기업 등이 추구하는 융합적 인재 양육의) 새 틀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할 수도 있다. 예술이 공학과 연결되어 창의적 공학적 테크놀로지의 창출의 생각의 바탕 밭으로 기열할 수 있는 근거도 바로 이 상황공간간의 개념적 혼성, 융합의 원리에 의한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의 제시한 철학자들의 입장에 대한 개괄의 요점을 결합하고, 그동안에 진행되어온 인지과학의 narrative psychology 등의 접근을 연결하여 보고, 1930년대의 영국의 심리학자 Sir F. C. Bartlett 교수의 주장을 연결하고, 최근의 Mark Turner 교수의 주장을 종합하여 본다면, 이야기란, 내러티브란 마음의 기본적, 일차적, 근원적 작동 원리이고 내러티브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지적 바탕이 개념적 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일상의 정체성이건, 우리의 미래 모습이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건, 특정 과학 주제이건, i-phone과 같은 인공물의 공학적 창안이나 그 이용이건, 광우병이건, 광화문 공간 사용 관련 논쟁이건 간에 열심히 이야기(story)를 만들어 내는 것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존재가, 서로의 존재적 관계가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각자가 아침부터 밤까지(심지어는 꿈속에서도) 열심히,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이야기’를 양산하여 내는 [마음 = 작은, 그러나 powerful한, ‘story, 즉 narrative 생산 공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그 때 그 때에 우리 자신이 짜내는 이야기 판본(drarfts)에 의하여 나 자신, 다른 사람, 세상의 여러 상황을 보고, 이해하고 생각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지각, 이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2.6. 내러티브 관련 인지과학 미래 추세 잠정적 종합

내러티브 관련하여 이러한 추세 고찰에서 드러나는 것은, 첫째로 인지과학에서 밝혀진 인간 마음 작동의 능동적 구성의 기본원리는 이야기 만들기(Narrative making)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종래의 문학(비평) 이론을 지배하던 (내러티브 틀인) 페미니즘이나 구조주의, post 구조주의적 사고가 문학/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음이 드러난다. 기존의 문학(비평) 이론은 주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측면만 강조하였지, 그러한 문학활동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인지적, 신경적 측면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가 지니는 시사점을 무시하였다. 실제의 인간은 진화역사적으로 변화/발달한 몸을 지닌 생물체 (자연 범주)인데, 과거의 문학, 적어도 문학(비평)이론은 이러한 문학적 산물을 내어놓고, 또 이해하는 인간이 자연의 존재라는 자연 범주 특성을 무시하여 왔다(신경적, 인지적 작동원리를 무시함). 과거의 문학비평 이론은 문학작품, 예술 등(TV 보기, 공감 등)과 관련된 인간 마음의 [자연과학적으로 밝혀지는] 숨겨진 복잡성 (hidden complexities)에 대하여 학문적 인식, 과학적 orientation의 수용이 없었음을(인지과학적 의미에서) 보여준다. 아니, 예술작품 실제 생성 작업 현장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나, 과거의 문학(비평)이론가들은 문학이론 구성에서 이러한 부면을 무시하여 왔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현재의 태생적 별거 상태를 벗어나서 문학과 인지과학이 연결된다면, 그리고 이에 앞서 언급한 ‘체화된 인지’의 개념적 틀이 도입되고 응용인지과학적 영역이 연결된다면 인지과학의 미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형태의 가능성들을 생각하여 볼 수 있다.



1. 인지과학이 기존의 고전적 인지주의의 ‘마음’ 개념과 [데카르트 식 존재론]을 탈피하여,

2. ‘마음’ 대신 ‘몸’을 강조하는 [스피노자 식 존재론]의 전통을 이은 ‘체화된 마음, 체화된 인지(Embodied mind/ cognition)의 틀로 전환되며, embodied mind의 전통을 살려온 철학의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현상학적 전통, 르꾀르 등의 문학이론 전통 등에 대한 인지과학의 긍정적 연결 시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통이 과거의 실증주의적 과학적 전통에 몸담아 온 사람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경험적 체계, 또는 formal approach의 연결 가능성 모색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항상 주변환경의 대상 및 상황과 괴리되지 않은 채, 그들과 하나의 총체적, 통합적 단위로서 자신의 몸의 활동을 통해, 감각운동적 상호작용(인터랙션)에 기초하여, 행위의 주체(agents)로서 삶의 의미적, 행위 내러티브를 엮어가는 그러한 상황지워진 생명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빚어내는 활동으로서의 마음(인지)으로 마음 개념화 작업이 재구성 되고,



4. 또한 ‘인간’과 ‘인공물’을 별개의 불가침의 범주로 규정하며 이분법적 내러티브를 적용하여 경계선을 그려온 과거의 이분법적 존재론의 내러티브를 벗어나서, 즉 인간과 인공물의 경계가(이것도 일조의 내러티브이다) 허물어지며 (R. Kurzweil의 ‘특이점이 온다’ 및 transhumanism 사조 참고),

5. 이러한 마음의 본질적인 기능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진화 역사상에서 인류가 발달시켜온 바, 즉 환경 속에 내재된 자신의 적응적 생존을 위하여, 자신을 포함한 ‘뇌-몸-환경’의 총체적 상황적 의미를 끊임없이 의미적으로 관계짓고 ‘예측’하는 실타래인 이야기(내러티브) 구성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것으로 개념화되어야 하며,

6. 이러한 맥락에서, 19세기에 심리학을 철학에서 독립시켜 하나의 과학으로 출발시킨 Wilhelm Wundt가 생각하였던 바인 제2의 심리학(Voelkerpsychologie)적 틀 - 주관적 의식의 내용과 문화, 역사적 영향이 심적 내용에 주는 영향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 -에 대한 긍정적 수용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히 과학적 설명과 관련된 다음의 최근 사조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미래 인지과학의 틀에 주는 시사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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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원적 설명(Explanatory Pluralism) 틀에 대한 수용적 관점의 확대

-과학철학 논의에 따르면 과학의 기본 목적은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적 설명이 무엇이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는 과학철학자들 간에 의견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심리학과 관련하여 과학적 설명에 대한 개관을 보려면, 이정모(1988)의 두 글[1. 과학적 물음의 본질: 과학철학적 관점들과 그 시사점', 한국심리학회(편), 실험심리 연구법 총론 : 가설설정, 설계, 실험 및 분석. 서울: 성원사, 37-72.http://cogpsy.skku.ac.kr/psychology_ellipsoid/과학적%20물음의%20본질%20.htm

2. 실험의 논리 : 과학적 설명과 추론', 한국심리학회(편), 실험연구법 총론: 가설설정, 설계, 실험 및 분석. 서울: 성원사, 1988, 73-116.http://cogpsy.skku.ac.kr/psychology_ellipsoid/실험의%20논리%20.htm]을 참조하기 바람)

무엇이 과학적 설명인가에 대한 통일된 과학철학적 이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서는 논리실증주의에 기반한 Hempel의 연역-법칙적 설명이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서 더 나아가서 현상에 대한 상위주준의 모든 이론적 설명을 더 환원적인 미시적 수준의 설명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생각이 대부분의 과학계에 탄탄히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관점이 강하게 나타난 영역의 하나가 마음의 작동 원리를 뇌의 신경적 활동의 수준으로 환원시켜서 하나의 이론으로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신경적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인지과학에서 뇌의 신경과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게 하는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심적 현상과 같은 복잡한 현상을 신경수준으로 모두 환원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반문이 생긴다. 이러한 반문을 가지고 환원주의(reductionism)에 대하여 대립적인 과학철학 틀로서 제시된 것이 설명적 다원주의(Explanatory Pluralism) 라고 할 수 있다.

설명적 다원주의 관점에 의하면, 현상이 충분히 복잡하면(인간의 마음과 같이 충분히 복잡한 시스템이라면) 모든 수준의 현상에 단일한 환원주의적 이론 틀을 적용하여 통섭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복잡성에 따라서 분석과 설명의 수준과 목표가 단일한 틀이 아닌 여러 수준의 틀이 적용될 수 있다. 이 입장을 인지과학, 심리학에 적용하여 다시 설명한다면, 복잡한 심적(인지)현상을 뇌기능에 대한 단일한 신경적 수준의 이론으로 환원하여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신경과학적 설명 접근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수준에서 각각 더 적절한, 의미있는 설명을 줄 수 있는 여러 설명 이론틀이 있을 수, 적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심적(인지)현상의 하위수준의 현상 일부는 신경과학적 탐구와 설명을 적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상위 수준의 고차 심적(인지) 현상의 작동 특성과 그 내용적 의미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에서는 신경적 수준의 설명이 아닌 고차수준의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설명이 필요하다는 과학철학적 관점이다.

(참고: R. Dale, E. Dietrich, & A. Chemero(2009). Explanatory Pluralism in Cognitive Science. /Cognitive Science (2009) 1-4. http://www.cognaction.org/rick/pdfs/papers/dale_dietrich_chemero_2009.pdf; )

이러한 관점이 그저 일부 인지과학 이론가들의 지엽적인 입장 전개가 아님은, 이 설명적 다원주의(EP)가 사회과학에서는 계속 논의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이 주제와 관련된 심포지엄이 개최된 것으로도 미루어 알 수 있다[참조: Introduction: A Symposium on Explanatory Pluralism. ; http://tap.sagepub.com/cgi/content/abstract/11/6/731]

물론 환원주의의 입장에 있는 과학철학자들도 환원주의의 New Wave Model 등과 같은 수정된 입장을 제기하였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Eronen, Markus (2008) Reductionism, Explanatory Pluralism and Invariance. In [2008] Reduction and the Special Sciences (Tilburg, April 10-12,]



1. 이러한 수정된 환원주의 모델도 하나의 단일 모델이 여러 층의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 오류를 지니고 있다. 수준의 복잡성에 따라서 다원적 설명이론이 필요하고, 미시적 설명틀과 거시적 설명틀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보적으로 더 좋은, 더 충분한 설명을 줄 수 있는데도 이 양립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2. 환원주의적 설명 입장은 주로 수준내(intra-level) 환원의 문제에 초점을 맞주고 있으며, 수준간(inter-level) 환원에 대하여는 논리적, 경험적 근거가 박약하다. 과학적 연구 사례들을 살펴본다면 수준간의 맥락에서 제거적 환원이 적용된다는 근거가 없다. 경험적 연구의 사례들을 살펴보아도 New Wave 환원주의의 주장인 ‘심리학이 신경과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아무런지지 증거도 찾기 힘들다(Eronen, 2008; 2쪽)

3. 과격한 환원주의 입장의 경우에 상위수준의 행동적, 인지적 현상을 신경생물 분자 수준으로 환원시켜서 설명할 수 있다는 식의 논지를 전개하는데, 왜 인지-분자 사이의 중간 수준들인 기능적 수준, 계산적 수준 등 등의 수준을 건너뛰어 설명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하다.

4. 설명적 다원주의(EP)는 극단의 환원주의나 극단의 반환원주의의 단점을 넘어서는 것이며, 수준간의 연결(즉 다원적 수준에서 접근하여 하는 여러 수준의 설명)은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5. 미시적 환원 작업이 끝나서 미시적 수준에서 설명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그리고 그러한 미시적 수준의 설명이 더 좋을 수 있더라도), 거시적 수준에서의 개념주도적, 하향적(top-down) 설명 작업은 전자의 작업을 더 정교화하는 또는 보완적 작업일 수 있으며, 과학발전에 필수적인 작업이다.

6.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여, 미시적 수준의 환원주의적 설명 작업이 거시적 수준에서의 상위 설명적 작업을 반드시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1940년대의 초기 인지과학자 Kenneth Craik이 이미 거론하였듯이 현상의 수준에 따라 다른 설명을 시도하는 것이 현상에 대한 보다 더 좋은 설명을 낳을 수 있다. 그것이 현재 과학철학, 이론심리학, 인지과학의 기초 영역에서 연구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거시적 수준에서의 설명은 미시적 환원주의적 설명을 넘어서 보다 좋은 설명을 제시하며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값있는 휴리스틱스 역할(McCauley & Bechtel, 2001)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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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종합과 정리

- 이상에서 2010년의 초입에서 2010년대와 그를 넘어서 2020년대로 번져 갈 만한 인지과학의 패러다임적 변화 추세에 대한 저자 개인적 편견과 바램이 섞인 전망을 엮어 보았다.

1. 인지신경과학적 연구 결과의 발전과 확산.

2. 체화된 인지 접근의 확산

3. 동역학체계 접근의 부각

4. 내러티브적 인지 접근의 떠오름

5. 인지과학의 응용 영역과 이론의 정교화의 확산

6. 다원적 설명 틀에 대한 수용적 관점의 확대



라는 주제를 차례대로 설명하였다.

미래의 인지과학의 전개에서는 과거의 데카르트 식의 존재론을 벗어나고, 몸의 감각운동적 역할이 강조되며, 뇌와 몸과 환경의 3자가 괴리되지 않은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총체로서 작용하며, 이러한 상황에서의 행위의 이어짐의 역동적 체계가 분석의 초점이 되어야 하고, 그저 뇌의 신경적 부위와 과정을 탐책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인간의 마음이 환경과 함께 지어 내는 각종 내러티브적 역동의 의미 중심으로 마음을 접근, 이해하며, 체화된 인지와 내러티브적 인지의 틀 연결이 제공하는 소프트, 하드 테크놀로지적 가능성의 확산이 더욱 탐구되며 인지과학기술의 응용적 지평을 넓혀가야 하리라 본다. 이러한 전개는 과학철학적으로는 자연히 마음의 복잡성 수준에 따라 여러 다른 설명적 접근을 허용하는 설명적 다원주의의 입장을 취해야 하리라 본다. 이러한 연관에서 인지과학은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렴적, 융합적 학문으로 추구될 수밖에 없으며, 인문학, 사회과학, 공학, 자연과학(물리학, 수학, 신경과학 등)의 수렴적, 웅합적 연결 마당으로서의 징검다리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인지과학은 미래 과학과 기술과 문화일반에서 계속 핵심 학문의 위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글을 쓰는 이정모가 바라는 미래 인지과학의 모습은 위의 목차에서 2, 4, 5, 6의 내용이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인지과학의 패러다임이 설명하지 않거나 못하는 인지(심리)현상들이 대폭 줄어든 미래의 인지과학이다. 또한 국내에서는 한국의 국민들이(대학행정가를 포함한 과학-교육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포함한 일반인들이) 한 세대 지난 20세기의 과학기술관인 물질중심의 과학기술관에서 이제는 벗어나서 인지과학을 자연과학으로 인정하는 관점의 변화 추세가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것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국내의 학문간, 기술간 수렴-융합에 있어서의 미래 인지과학의 구체적 기여도가 더 높아져야 하리라 본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는 인지과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학생, 연구자, 교수 등)의 계속적 자각과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지난 40 여년간의 대학 교수 생활을 하며 30 여년을 인지과학을 널리 전하는데 역점을 두어 온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무엇이 옳고, 당연하다’고 하여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많은 일반사람들의 그에 대한 생각이 바꾸어지고 또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인지과학 관련 사실들을 알리고 체제적 변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온힘을 다한 노력없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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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을 전공하려는 또는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주는 짧은 도움 말].



-위에 펼쳐놓은 인지과학의 미래 전망은 이정모 개인의 편견과 바램이 혼합된 내용입니다. 인지과학을 전공하려는 또 전공하고 있는 학생의 경우에는 다음의 몇 가지 생각을 지녀야 하리라 봅니다.



1. 인지과학은 아무나 쉽게 하는 학문 분야가 아니라, 여러 영역의 주제적 연결에 대하여 계속 그치지 않는 지적 호기심을 유지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높은 수능점수나 IQ가 아니라, 강한 지적 호기심과 물음을 던져 탐색하여 들어가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이) 즐겨 추구하기에 좋은 학문이라고 봅니다.



2. 위에서 여러 내용을 전개하였지만, 당분간의(그것이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는 잘 모르지만) 국내외의 인지과학 연구 추세는 뇌에 대한 인지신경과학 중심으로 전개되리라 봅니다. 여러분이 아직 젊은 나이에는 인지신경과학이라는 탄탄한 경험과학적 접근 위에서 인지과학 공부를 하는 것이 경력 형성상, 그리고 후에 더 너른 이론의 발전을 위하여서라도 좋은 안전한 전략이라고 여겨집니다. 인지신경과학적 방법론에 익숙하여지고, 거기에 또 다른 분야의 방법론(인지심리학적 실험법이나 인공지능의 시뮬레이션 방법이나, 언어학의 형식적 분석 및 경험적 연구 방법론 등)에서 상당 수준까지 이르러 연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이 글에서 제시하는 거시적, 다소 인문학적 경향의 접근은 여러분이 어느 정도 직장이 안정되고 자리가 잡힌 후에 추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훗날 다루게 될, 그저 지적 관심만 가는 영역 정도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경력상 다소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되더라도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따라서, 신경과학적 접근이 아닌, 이 글에서 제시한 바의 체화된 인지 접근과 같은 다른 접근이 꼭 하고 싶다는 분은 예외입니다.)



3. 인지과학을 계속 추구하시겠다는 분은 심리철학, 과학철학에 대한 상당한 깊이의 관심과 지식을 계속 유지하여야 하리라 봅니다. 철학은 인지과학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연결된] 복잡계로서의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탐구하는 학문에서는 계속 자신의 지적 발전을 위해 필요한 학문 분야입니다. 또한 물리학 등 주변 연관학문에 대한 관심의 유지를 게을리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4.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처럼 인지과학은 기초이론적 분야와 응용적 분야를 이분법적으로 가르기 쉽지 않은 학문 영역입니다. 따라서 어떤 주제이건 항상 인지과학의 개념과 이론의 응용적 가능성을 생각하며 인지과학 기초이론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역으로 일상의 생활 장면에서 처하게 되는 각종 인지적 상황, 인공물과의 상호작용 장면에서 그 장면에서의 자신의 인지적 행위나 인공물의 특성에 어떠한 인지적 요인이 괸여되는가, 어떻게 하면 그 인공물을 인지적으로 더 효율적이게 할 수 있고, 자신의 인지적 처리나 행동이 더 편하고, 효율적일 수 있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5. 끝으로 인지과학은 가장 융합적(수렴적) 학문이요, 국제적 연결이 쉬운 분야라고 봅니다. 인지과학을 전공하고 꼭 국내에서 있는다는 생각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국제적 학술/연구/응용 기관에서 여러 학문 분야, 여러 전공의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겠다는 바램과 꿈을 지니고(더 깊은 수준의 학문을 하게 되기도 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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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고가 너무 길어지기에 이 글에서 생략한 것이 있습니다. 인지과학이 인문학, 사회과학, 공학, 신경과학, 문화 일반에 주는 영향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에 대하여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아래의 두 자료 사이트중의 어느 하나에서

(http://blog.naver.com/metapsy/40047881318; 또는 http://korcogsci.blogspot.com/2008/06/cogno.html)

미래 사회에서의 인지과학의 전개 양상에 대한 파악을 하기 바랍니다. 또는 이정모(2009). ‘인지과학: 학문간 융합의 원리와 응용’ 책 중에서 [14장. 인지과학의 응용, 15장. 인지과학의 조망] 내용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현재의 파일에서처럼 ‘체화된 인지’와 ‘다원적 설명 틀’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전개하지는 않았음을 기억하고 참고하기 바랍니다. 아니면 저의 홈페이지와 (httP://cogpsy.skku.ac.kr/) 블로그 (http://blog.naver.com/metapsy/ ; http://korcogsci.blogspot.com/) 등에 올려진 관련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찾게 된 웹자료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1999년 자료라서 조금은 낡었지만 그래도 인지과학의 미래의 주제와 관련하여 (특히 7절과 8절 내용) 참고하기에는 좋은 자료 같습니다.

http://etjanst.hb.se/bhs/ith//2-99/pg.htm

Cognitive science: from computers to anthills as models of human thought

by Peter Gärdenfors

[Contents]

1. Before cognitive science

2. The dawn of computers

3. 1956: cognitive science is born

4. The rise and fall of artificial intelligence

5. Mind: the gap

6. First heresy against high-church computationalism: thinking is not only by symbols

7. Second heresy: cognition is not only in the brain

8. The future of cognitive science

About the author



*3. 이외에 다음 자료를 참고하셔도. Cognitive Science meets Computing Science:The Future of Cognitive Systems and Cognitive Engineering. Ray Adams. http://iti.srce.hr/fileadmin/ITI/cms/2009dokumenti/Adams.pdf



*4. 또한 Paul Thagard의 2005년 책, “Mind, ; Introduction to Cognitive Science (2nd Edition)”의 14장

[The Future of Cognitive Science] 도 참고할 만한 것 같습니다.



*5. ‘인지과학의 미래’ 관련 2008년 학술대회에서 무슨 주제가 논의되었는지 살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요.

http://www.lsa.umich.edu/umich/v/index.jsp?vgnextoid=3e47f77fca75a110VgnVCM1000005001010aRCRD&vgnextchannel=1240ea0d58189110VgnVCM10000096b1d38dRCRD



John R. Anderson, Carnegie Mellon University;     "The Image of Complexity"Alison Gopnik,, UC Berkeley;     "Rational Constructivism: How the meeting of philosophy of science, machine learning and cognitive development will transform cognitive science"

Marc Hauser, Harvard University: "The Generative Brain and the Superficiality of Cultural Variation"Zenon Pylyshyn, Rutgers University; "Object Tracking and the Mind-World Link"

Cristoph Koch, CIT;     "The Neurobiology of Consciousness"Ned Block, New York University;     "Consciousness and the Extended Mind"

*6.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97년에 책으로 출간된, Johnson & Erneling의 ‘인지혁명의 미래’ 책 내용을 보셔도 좋고요http://books.google.com/books?id=-SShkdUzJFoC&dq="The+future+of+cognitive+science"&printsec=frontcover&source=in&hl=en&ei=hNY_S-ScEozCsgOQ8ZDWAw&sa=X&oi=book_result&ct=result&resnum=12&ved=0CEQQ6AEwCw#v=onepage&q=%22The%20future%20of%20cognitive%20science%22&f=false

*7. 그 이외로는 본 파일의 6절(12쪽)에서 제시된 ‘다원적 설명과 인지과학’에 대한 Dale, Dietrich & Chemero의 2009년 자료 파일을 보셔도 좋습니다.

http://www.cognaction.org/rick/pdfs/papers/dale_dietrich_chemero_200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