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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ly 28, 2009

서울대 철학과 김영정 교수님의 갑작스런 별세에 애도를 표합니다

서울대철학과 김영정 교수님의 갑작스런 별세에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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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에서 기사 제목들을 살펴보던 저에게는
친근한 얼굴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이 부고란에 있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그 친숙한 사진 옆에는 ‘서울대 김영정 교수 별세’의 부고 기사와
향년 54세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313/3704313.html?ctg=12

http://news.mk.co.kr/newsRead.php?sc=50400008&cm=인물·인터뷰&year=2009&no=406873&selFlag=&relatedcode=&wonNo=&sID=504

그동안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의 직책을 맡아서 일을 하느라
그 좋아하시는 철학 공부도 못하시고
행정적 일의 부담에 쫓겨 사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좋은 학자가
모교를 위한 행정 일에 매여서 학문적 탐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보면서
그를 위하여, 그리고 한국의 인지과학계를 위하여
안타까워하였었는데...

이리 빠르게 우리를 떠나시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그러한 안타까운 감정이 떠올리는 사이로
김영정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된 20여년전의 일과
그 이후의 일들이 하나 둘 떠올려졌습니다.

23년전인 1986년에 국내 첫 학제적 연구모임인
대우재단 인지과학 공동연구 모임을 기획, 추진하면서
함께 연구할 연구자들을 찾는 단계에서
이대 철학과 정대현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서
그 당시의 해외의 심리철학의 흐름과 내용을 잘 아시는 젊은 분으로써 모셨던
김영정 교수님이십니다.
그 당시 전화를 받으시던 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떠오르는 듯 합니다.

해외 유학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 되시고
아직은 외국어대학교 철학과에 계시던
30대 초반의 김영정 교수님을 인지과학 공동연구팀에 모시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는지

그리고
낭랑한 목소리와 명쾌한 분석적 사고력과 해박한 최신의 심리철학 지식을 보이시던
또 그분의 명석한 분석적 mind,
그러면서도 다른 이의 주장, 생각에 귀 기울이시는 젊은 그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러워하였는지....

격주로 주말 저녁시간에 모이어 밤이 늦도록
인지과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같은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해온 차이를 줄여가며
공통의 학문적 연결점과 관심을 확인하였던
1년간의 대우재단 인지과학 공동연구 모임에서
김영정 교수님은 당시 최신의 심리철학 지식, 명석한 분석력, 그리고 젊음으로
나이든 선배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었습니다.

이 모임을 바탕으로 하여 1987년에 한국인지과학회가 결성된 후
개최되는 인지과학 월례회에서, 인지과학회 학술 모임들에서,
그 사이에 이미 서울대 철학과로 옮겨가신 김영정 교수님은
국내 인지과학회의 출발과 발전에 항상 열정을 지니고 참여하시는
든든한 젊은 학자의 본이 되셨습니다.

1987년 Neil A. Stillings 등의 ‘인지과학 입문’ 책이 MIT Pres에서 출간되자,
그 책의 철학 장의 내용을 자세하게 정리하여
학생들과 철학전공자가 아닌 인지과학자들에게 도움을 주셨던 일을 잘 기억합니다.

저는 그 정리된 장 내용 파일을 계속 강의와 논문저술에 참고하였고
그 파일과, 그 후에 번역하신 철학의 대가 Putnam의 책 ‘표상과 실재’
그리고 저술하신 ‘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언어, 논리, 존재’ 등의 책은
저에게는 아직도 철학과 인지과학을 연결하는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에 김선생님은
한국 사람들, 특히 학생들의 분석적 논리적 사고력을 육성하기 위하여
철학-논리학-인공지능을 연결한 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시어서
학교 밖에서 이를 연구하는 기관을 만들어
논리적 사고 육성 연구를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영정 선생님의 그러한 연결 시도는
당시의 인지과학 하는 분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연구팀의 연구 결과로 만들어진
‘논리교실: 필로지아 (Logic Class Philosia) CD는 아직도
제가 잘 보관하고 있는 소장 CD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2002년에 선생님이 한국인지과학회의 회장이 되시어서
인지과학회의 학술대회를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서
부산에서 개최하였던 당시의 일들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와 김영정 선생님과의 마지막 연락은
메일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데카르트의 2원론을 넘어서 뇌와 몸과 환경의 통합적 연결적 활동으로서의
'extended mind' 개념에 경도되어 있던 저는 2006년 12월에
한국심리학회 창립 60주년 기념심포지움 기조강연 논문으로
“마음 개념의 재구성과 심리학 외연의 확장: 인지과학적 접근을 중심으로”
라는 글을 제출하였고
(저의 건강상 이유로 다른 분이 대독하였습니다).

80년대의 대우인지과학 공동연구 모임 이래로
철학과 인지과학 관련 물음이 생기면 늘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여
자문을 구하던 김영정 선생님께
2007년 5월에 위의 모임에서 발표한 글의 수정본을 보내드리고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지
그리고 관심이 있을 다른 국내 철학자들이 누구인가를 문의하였었습니다.

그랬더니 김영정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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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8일 월요일, 오전 10시 25분 51초 +0900
보낸이 "Young-Jung Kim"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글 재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
Clark와 Chalmers의 extended mind는 저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시간이 없어 세세한 논변을 따라가며 연구를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2년전에 바레라 톰슨 로쉬의 embodied mind에 관해 서울대에서 세미나를 한 학기 개설한 적은 있었지만 extended mind는 주제적으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현재 서울대 인지과학 협동과정에 이와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박... 학생이 있습니다.
박군에 따르면 서울대에서 심리학과 강사를 하고 있는 박,,, 박사가 깁슨을 연구하여 이쪽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군요.

철학쪽은 저도 요즘은 학회를 거의 나가지 못해
extended mind를 심도있게 연구한 학자가 누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보직을 맡고 있지 않으면 저도 관심이 있는 주제이고 하니
선생님과 함께 한 학기 정도 대학원 세미나 같은 것을 개최하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조금 정신을 차리면 한번 방법을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요.
뭔가 정보가 생기면 곧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김영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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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메일이 김영정 교수님과 주고받은 마지막 긴 이메일이었습니다‘
그 후에 extended mind에 관심이 있는 분으로 어떤 교수님을 추천하신
아주 짧은 이메일을 받은 것이 김영정 선생님과의 마지막 교신이었습니다.

이후 서울대에서 개최된 미래학문미래대학 콜로퀴엄 모임에 참석하였다가
김영정 교수님을 뵌 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제가 금년에 쓴 ‘인지과학’ 책을 우편으로 김영정선생님에게 보낸 후에
보통 때의 김영정 교수님 같으면 책을 잘 받았다는 회신이
바로 올 터인데도
연락이 없으시기에,
입학관리처의 일로 상당히 바쁘신 모양이다 라고만 생각하였지
건강이 나쁘실 수 있음을 염려하거나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못하였습니다.

단지, 제가 금년 2009년 8월에 정년은퇴하게 되고
내년 2010년 즈음의 언젠가에
김영정 선생님이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 직을 면하신다면

지난 번 이메일에서 거론하신
extended mind의 주제를 가지고
서울대 철학과 및 인지과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김영정 선생님이 하시는 세미나에 함께 참여하여
‘제3의 인지과학 패러다임’ 움직임이라고도 하는
extended mind, extended cognition, embodied cognition의
학문적 논의 추세에 대하여 배우고 싶다는
기대와 소망을 지녀왔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건강 조심하라는 부탁을 하시던 김교수님이

이렇게 갑자기 먼저 떠나가시다니...
당황한 마음 가누기 힘듭니다.

인지과학계는 좋은, 가능성이 많은 학자 한 분을 잃었습니다.
정말로 애석한 일입니다

국내 대학의 학생선발 구도를 설계하는 일이
과연 김영정 교수님의 학자적, 학문적 발전에 우선하는 일이었는지
의문이 계속 심하게 듭니다.

허지만
이미 먼저 떠나가신 분...

그 분을 갑자기 떠나보내신 가족들에게
무어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자신의 건강 상황도 무릅쓰고
다른 이들을 위하여 온몸으로 노력하신
김영정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안녕히 가시기를...
- 2009년 7월 29일 오전
이정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