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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 2011


인지과학이 과학철학, 사회과학 재구성에 주는 시사


어제 (2011. 10.01) 하루 종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과학철학회, 한국과학기술학회의 연합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세 회의장으로 나누어 진행된 학술발표 중 모두를 듣지 못하고 오전에는 과학철학 회의장, 오후에는 과학사 회의장에 있었다.

오전의 과학철학 방에서 여영서 교수님과 이상욱교수님의 발표에서 난생 처음으로 ‘Ballungen’이라는 용어를 들었다. 유명한 사회과학철학자 Otto Neurath 가 데카르트 틀을 넘어선 용어로 자주 쓰던 용어임을 배웠다.
( [Encyclopedia and Utopia: Otto Neurath의 삶] 중에서 이 용어가 언급된 부분 페이지=>;

이 용어와 그것을 중심으로 한 두 교수님의 전통적 ‘과학철학 틀’의 재구성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표 내용은 나로 하여금 옛날과 최근의 나의 짧은 생각들을 불러 일으켰다.

30여년전 80년대 초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실험심리학’을 가르치기 위해 강의준비하며 매료되었던 것의 하나가, ‘과학이란 체계는 고정되어 있는 틀이 아니라, 바다에 항해하면서 계속하여 그 배의 갑판을 뜯어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가는 그러한 것과 같다는’ Otto Neurath의 비유 언명이었다.
인지주의 패러다임이 1950년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학계에 등장하여 돌풍을 일으키게 된 배경을 ‘인지심리학’ 강의 시간에 강의하여야 하였던 나에게는 이 비유는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나는 듯한 감을 주었으며 이에 빠져들게 하였다. (나는 이 비유를 2001년에 출간된 [인지심리학: 형성사, 개념적 기초, 전망] (대우학술총서 511, 아카넷)의 제 13, ‘인지심리학과 과학이론, 인식론’의 611쪽에서도 인용하였다.) 이 비유는 80년대초 이후의 나의 과학관을 많이 지배하였다.)

다른 한 생각은 최근에 [확장된 인지/마음](Extended mind; Embodied & Embedded Cognition)에 대하여 읽은 글과 그에 따른 생각의 전개로 최근에 나의 생각 표면으로 떠오른 생각들이다. 그것은 여러 생각들이 연결되어 소용돌이치는 그러한 생각이었다.

이하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지만, 나의 생각에는, 오랜 진화 역사를 거쳐서 인간이 동물과는 다른 능력으로 지니게 된 [마음]의 본질, 핵심은 환경과 경험의 여러 내용을 관련지워 연결하며 의미 짓는 능력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이야기 짓기’, ‘내러티브적 마음’, ‘내러티브적 인지’라는 인간 특유의 능력이고, 이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필수적으로 발달된 것이 언어, 언어적 의미 만들기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인류진화사의 아주 뒤늦게서야 이러한 언어, 의미 만들기, 이야기 짓기를 기초로 하여 그 바탕에서 비로소 규칙을 지닌 ‘논리’라는 사고 형태가 인류에게 발달되게 되었다고 본다.

이는,
[1] 노벨상 수상 심리학자 카네만 교수의 인간 판단과 결정의 상황의존적 특성 및 오류가능성(fallibility) 연구나,
[2] 그와는 다른 맥락에서 인간 사고의 기본이 휴리스틱스(heuristics)적인 것이라는 이론을 전개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심리학자 기거렌저(Gigerenzer) 등의 입장,
[3] 그리고 인간의 사고체계는 두 시스템의 체계로, 하나는 빠르고,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진행되며, 의식되지 않고, 융통적이지 않고(사람이 의도적으로 통제할 수있지 않고), 상황맥락에 크게 의존하며, 작업기억 용량에 거의 부담을 안주는 System1 (implicit cognition이 중심인) 사고 체계이며, 다른 하나는 느리고, 노력을 들여야 하고, 의식적이며, 통제가능하여 변화가능하고, 탈맥락적이며, 작업기억 처리부담이 많은 System2(explicit cognition 중심) 사고 체계라는 영국심리학자 Jonatha Evans의 이중과정이론(dual- process theory)과 통한다.
이들 입장이 시사하는 바에 의하면 확인(확증)편향으로 가득 찬 heuristic적 사고, System1적 사고가 인간 마음의, 인지의 기본이다. 논리적 사고는 지금까지의 인류 진화 단계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자리잡은 이루어진 부수적인 2차적인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대부분의 상황맥락에서 1차적 인지, 즉 휴리스틱스적 인지, 암묵적(implicit) 인지를 가동하여 대상과 상황을 주의, 패턴재인, 지각, 기억, System1적 사고하게 되고, 필요에 의해서만 의식이 개입되고(explicit), 논리적, System2적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두 시스템의 경계라는 것이 확연하지 않아서 논리적 사고이지만 의식이 개입되지 않는 경우나, 그 반대로 맥락의존적 처리이지만 논리가 개입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인간의 인지에서 작동되는 범주화(Categorization), A or not A의 확연한 이분법적 경계선을 지닌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정상분포 곡선이 각각 서로 다른 중심이 있고(Schema나 비트겐쉬타인 류의 가족유사성에 근사한 구조), 서로의 끝 부분(시스템1의 윗부분과 시스템2의 아랫부분)이 겹칠 수도 있는 그러한 방사선(raial) 형태의 구조를 지닌 것으로 본다면 이러한 생각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화는 Neuratrh Ballungen의 개념과 통하리라 본다] (– 이상의 세 이론적 입장에 대한 비판들도 여럿 있다. )

어제 학회에서 거론된 주제인 과학적 방법이나, 논리와 관련하여 생각하자면, ‘의미’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 방법이란 일정한 무엇이라는 확고한 것이 있는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의미 있는 과학적 산물을 생산해내는 방법이라고 한 세대의 과학자공동체가 공동으로 인정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나의 생각이다.

논리란 연역적이건, 귀납적이건, 귀추적이건 간에 의미의 문제, ‘인지의 문제와 연결된다. 명제1과 명제2, 명제3에서 각각의 명제가 의미있고 논리적으로 올바르다고 추론하는 데에는 일부 논리학자나 과학철학자들이 간과하여서 그렇지 그렇게 ‘의미있는 것으로 인지’하는 인간이 있다.

여기에서 나는 계간지 [시와 반시] 2011년 가을호에 게재한 나의 글의 ‘문학과 인지과학’ 관련 한 구절을 인용한다.

[과거의 문학(비평)이론들로서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구성주의, 페미니즘 등의 입장들이 있었다. 이 틀이 20세기 말에 무너지고, 이제는 문학의 내용 전개나 예술을 자연주의에, 진화이론에 바탕을 두고 이해하거나 인지이론에 의거하여 이해 및 분석하고, 비평하고, 기술하려는 입장이 점차 세를 얻고 있다.
기존의 문학(비평) 이론은 주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측면만 강조하였지, 그러한 문학활동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인지적 측면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가 지니는 시사점을 무시하였다. 실제의 인간은 진화역사적으로 변화/발달한 몸을 지닌 생물체인데, 과거의 문학은(적어도 문학비평이론) 이러한 문학적 산물을 내어놓고 또 이해하는 인간이 자연의 존재라는 ‘자연 범주’ 특성을 무시하여 왔다. 과거의 문학비평 이론은 문학작품, 예술 등과 관련된 인간 마음의 ‘자연과학적으로 밝혀지는’ 「숨겨진 복잡성」에 대하여 학문적 인식, 과학적 지향함의 수용이 없었다(인지과학적 의미에서). 아니, 실제의 예술작품 생성 작업 현장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나, 문학(비평)이론가들은 문학이론 구성에서 이러한 부면을 무시하여 왔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밑줄 그은 부분은 어디 다른 곳에서 따온 것인지 나 자신의 생각인지 확실치 않다.)

이제 나는 그 밑줄 그은 부분의 내용의 화살을 ‘과학철학’, ‘논리학’에 돌리고 싶다. (그 분야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입장인지는 몰라도.) ‘문학’ 대신에 ‘과학’, 그리고 ‘문학비평’ 대신에 ‘과학철학’, 또는 ‘논리학’을 대입하여 주장을 전개하고 싶은 것이 나의 현재의 입장이다. 독자가 각자 대입하여 윗 글을 다시 읽어 보기 바란다.

나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과거의 과학철학, 논리학은 과거의 문학비평이론과 같은 오류를 범하여 왔다. 과학적 사고, 논증을 의미있게 하는(과학적 방법과 논리에서, 명제 각각의 의미와 명제간의 의미적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인지의 본질적 과정이 어떠한가,/ 인간이 개념을 어떻게 범주화하는가,/ 인간이 대상에 대하여 어떻게 주의하고 pattern(법주) recognition하여 지각하며, 기억하며, 언어화하는가,/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앨고리즘적이 아니라 휴리스틱스 적인 인지가 소위 논리적 사고에 주는 영향은 얼마나 광범위한가,/ 인간 인지란 철학자 Dennet이 일찌기 논한바와 같이 수많은 내러티브의 거미줄을 엮어나가는 것인데 인간 인지 일반에, 그리고 언어를 사용한 논리적 사고 전개에서 인간 마음(인지)의 이러한 (행동주의 심리학에 반기를 들어 인지주의를 형성하게 한 초기인지과학자의 한 사람이고 하바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J. Bruner가 주장하듯이) 내러티브적 메커니즘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기초적인 과정으로 작용하여 영향주는가 ..... / 등등에 대한 분석이나 고려없이, 진행되어 온 것 같다.

즉 과학철학(논리학)은 과학철학(논리학)을 한다면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대상(범주)인 인간의 마음(인지)의 본질 및 작용 과정들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과학적) 고려 없이 각자의 틀을 전개해오고 있는 것이다.

‘과학철학에 의한 과학적 연구의 무시’ (나의 주관적 과격한 표현) 라는 이러한 상태는 이제 그만 멈춰지고,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지과학]의 떠오름은 인류에게 [new humanism]을 가져왔고, (좌뇌-우뇌 기능 차이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신경심리학자 로져 스페리 교수의 말대로)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영문학자였던 Mark Turner 교수의 이야기대로, 인지과학의 등장과 발전은 [사회과학]을 전면 재구성하게 하고 있다.
( Mathew D. McCubbins & Mark Turner (2010). Going Cognitive: Tools for Rebuilding the Social Sciences. : http://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1728262; December 18, 2010, SSRN; 이 논문의 초록은 위 사이트에서, 논문 원문은 회원이거나 각 대학 도서관을 통해서 접근 가능)

과학철학이, 논리학이, 대상에 대한 지각과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 인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와 그 의의에 대하여 기존의 접근과 초점을 달리하여 눈을 돌린다면, 기존의 틀을 수정하여 재구성하게 될 것 같다, 아니 그것이 인지과학도인 나의 작은 바램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사적 연구도 오래된 과거 물화생 분야의 과학 역사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이러한 변혁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인지과학의 형성 역사와 역동적 미래 가능성과 시사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인문학에서 문학이 어떻게 변하여야 하는가는 이미 계간지 [시와 반시] (2011. 가을호) 글에서 전개한바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히, 인간의 진화. 마음, 인지, 언어, 의미의 원천, 사고, 그리고 그에 영향주는 자연적 및 인공적 환경인 문화 (그것의 하나인 과학체계), 그에 몸을 지닌 생명체로 살고 있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 (Embodied & Embedded Mind/ Cognition) 들의 본질, 그 특성에 대하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새 조망은, 이론은 기존의 어느 한 학문에서 주어질 수 없다. 학문간 수렴과 융합을 (한국적 현재 통용 용어로 통섭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융합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인지과학]이 서 있다. New Humanism 시대의 중심 학문은 여러 학문을 연결하여 포괄적인 물음을 계속 던지는 [인지과학]일 수밖에 없다.

끝으로 노벨상 수상자 신경심리학자 Roger Sperry 교수의 글과, 인지과학 책에 쓴 나의 옛 글을 인용하며 맺는다.

1.
“인지주의 과학혁명의 영향 결과로 일어난 기본적 변화란 수준 간 인과적 결정론에 대한 상이한 패러다임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전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결정된다는 전통적 (물리학의) 가정 대신에, 우리는 역방향적 하향적 결정론을 전제하는 것이다. 전통적 상향적 입장과 인지주의의 하향적 입장이 조합된 ‘이중 방향’, ‘이중 결정’ 모형은 중 방향’, ‘이중 결정’ 모형은 과학으로 하여금 인간 자신과 자연의 질서 전체를 지각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양식을 - 진정한 Kuhn적 세계관 패러다임의 전이로서의 - 부여하였다. ... ...그 결과로, ... 과학이 상징하던 바, 과학이 지지해오던 바, 과학의 신조와 세계관들이 급진적으로 수정되는 것이다. (Sperry, R. W. (1995). The future of psychology. American Psychologist, 50, 505-506.)

2.
“인지과학의 미래는 타학문과의 연계성의 증대와, 그 발전 속도의 빠름으로 인하여 정확히 예측하기가 힘들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재의 진행되고 있는 인지과학 연구의 전반적 흐름을 근거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의 하나는, 이러한 새로운 접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인지과학, 인공지능학, 신경과학, 물리학, 철학, 언어학, 수학, 인공생명학, 로보틱스, 진화생물학, 인류학, 동물행동학, [과학철학 ; 오늘 추가함] 등의 연구들이 서로 간의 경계가 없이 ‘자연적 마음’, ‘인공적 마음’의 과학적 이해와 실제적 구성을 위해 하나로 수렴되어 가며 인지과학이 21세기 과학의 한 핵심 학문이 되는 모습이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인지과학의 미래의 모습이다.
이러한 인지과학의 역동적인 모양을 볼 때에, 학제적이지 않고는, 즉 다른 학문 분야와의 수렴적 연결이 없이는 (한국적 용어로는 ‘융합과학기술적 접근’ 없이는) 어느 한 학문만으로는 인지과학을 한다는 것이 이제는 터무니없는 시도라는 생각이, 인지의 본질을 안다는 것이 초기의 계산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한 이론체계를 적용하여 이룰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리고 인지과학이란 끊임없이 변화, 진화하는 포괄적 역동적 학문이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앞으로의 갈 길이 멀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 ....
인지과학은 지금도 수많은 학문들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종합되어 끓는 소용돌이의 용광로와 같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용광로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어 나오는 산물들은 인간의 생각과, 현실적 응용기술 문명과, 과학의 형태를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바꾸어 놓으리라고 예측된다.(이정모(2009). [인지과학: 학문 간 융합의 원리와 응용].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마지막(714) 페이지 글에서)

- 이정모 - 2011.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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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대한 이의, 비판을 자유롭게 올려도 좋습니다.

Saturday, March 20, 2010

법 영역의 인지과학적 재조명; 파일 2개 사이트 링크

지난 2010년 03월 19일
한국개발연구원 소회의실에서 있었던
KDI-제도학회 공동 월례세미나 에서 발표한

'법의 영역에 대한 인지과학적 관점에서의 재조명'

파일 2개 (hwp-pdf; ppt-pdf)를 보완, 확장, 수정하여 다음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이 자료 제목 링크사이트 또는 아래 사이트에서 첨부파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링크:

http://blog.naver.com/metapsy/40103229102     또는
http://cogpsy.skku.ac.kr/cwb-bin/CrazyWWWBoard.exe?mode=read&num=3278&db=newarticle&backdepth=1

위의 사이트에서는 파일을 일단 다운 받은 후에야 그 내용을  볼 수 있는데
다운 받지 않고 파일들을 바로 보려면  다음 주소로 가시기 바랍니다.

http://cogpsy.skku.ac.kr/cwb-bin/CrazyWWWBoard.exe?mode=read&num=3278&db=newarticle&backdepth=1


하바드대 경제학 전공 학생들의 '이런 경제학은 제발 우리에게 가르치지 말아달라'는 호소를 인용하며, 전통적 경제학이  새로운 경제학으로 대체되어야 함을,
행동경제학 책이 국내에 소개되기 훨씬 이전에 인지과학과 경제학의 연결 당위성,
경제학은 인지과학과 연결되어 변해야 함을
경제학의 재 탄생의 필요성을 저의 홈페이지 등에서 제기한 바 있는데

이제는
법학이 인지과학과 연결하여서 전통적 법학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여년 내에 국내 법학계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힘들다고 처음에 생각하였지만
저의 생각이 틀린 것을 지금 깨닫고 있습니다.

전통 경제학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어 하는 국내 경제학계의 다소 보수적인 자세와는 달리,
국내 법 영역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열린 마음을 지닌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국내 법 영역의 밝은 미래에 많은 기대를 걸게 됩니다.

Sunday, March 29, 2009

[책소개]: 김광웅 (엮음).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2009 
http://www.itreebook.com/book_view.htm?board_seq=10518&mode=2_2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창조사회의 학문과 대학

분 류 : 인문
지은이 : 김광웅
출간일 : 2009-3-4   총페이지 : 436쪽
ISBN : 978-89-8498-933-7
가 격 : 2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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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서울대에서 개최되었던 범대학 '미래대학, 미래 학문 콜로퀴엄'의 첫 결과물 책입니다.

<차례>

머리말
미래의 융합학문과 대학 이야기를 시작하며

1부:  창조사회의 학문

21세기의 학문체계―미래의 지적 산책을 어디서 어떻게 할까 : 김광웅
창조사회의 지식융합―지식의 융합, 과거로부터 배운다 : 홍성욱
창조사회의 논리―통합적 학문은 어떻게 가능한가 : 장회익

2부:  창조사회로 가는 길―융합의 실재를 본다

인지로 모인다―인지과학의 전개와 미래 융합학문 : 이정모
바이오로 모인다―모든 학문의 길은 생물학으로 통한다 : 최재천
나노로 모인다―나노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 : 문대원
인미로 모인다―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행위가 미래를 연다 : 김춘미
문예와 기술이 만난다―문화기술, 그 새로운 미래 : 이규연

3부:  창조사회의 대학

미래 융합대학의 모습 : 오세정
미래 대학의 교수방법―Teaching 2.0 시대, ‘가르침’의 본질에 대한 성찰 : 유영만
미래 대학 캠퍼스―미래의 앎과 삶을 창조하는 대학 : 이순종

4부: 창조사회의 리더십

창조사회의 리더십―창조사회를 이끄는 리더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 김광웅․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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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1부에서는 : 창조사회의 학문 라는 주제로

인류의 학문체계가 어떻게 융합학문으로 진화했으며 학문 간의 만남이 가능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

김광웅 교수는 오늘 우리가 전일주의시대, 복잡계 과학시대, 융합학문시대, 제2의 계몽시대, 디지그노 시대, 인지문명시대로 들어섰음을 설명하고, 미래의 학문체계가 분과학문체계와 종합학문체계로 양대 산맥을 이룬 가운데 ‘관계과학’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21세기 지식의 지도를 통해 각 학문의 흐름이 결국 융합과 통섭과학으로 모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홍성욱 교수는 창조성의 근원이 융합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19세기 독일 과학의 부상과 빌헬름 분트, 미국의 연구소 래드랩, 특수상대성이론과 베른의 시계의 관계, 동양을 앞지른 서양의 지적 혁명 등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며, 지식 융합의 조건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장회익 교수는 조각난 오늘의 학문 현실 속에서 융합학문이 가능한 논리를 대생(對生)지식, 대인(對人)지식, 대물(對物)지식 등 인식의 기본 구도를 통해 설명하고, 통합지식의 방편을 모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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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창조사회로 가는 길 - 융합의 실제를 본다.
에서는 
인지, 바이오, 나노, 디지그노, 문화기술 등 오늘의 융합학문과 기술 어디까지 왔나?
실제로 오늘날 대학과 연구소, 산업현장, 예술 분야에서 인지과학과 바이오과학, 나노과학, 인미(디지그노), 문화기술 등 융합학문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우선 이정모 교수는 인지과학의 등장과 함께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인지과학으로 인해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구체적으로는 시고전경제학이 행동경제학과 인지경제학의 등의 등장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으며, 인지법학, 인지문학, 인지미학, 인지종교학, 인지신학, 신경신학, 그리고 인지;바이오;정보;사회기술의 융합을 소개한다. 

최재천 교수는 환원주의에 섰던 20세기 생물학이 통합주의에 설 수밖에 없는 21세기 진화생물학으로 변화된 과정을 설명하며, 나아가 생물학과 공학의 만남으로 탄생한 의생학과 에코과학을 소개한다. 

문대원 교수는 나노과학이 학문과 사회의 지형을 바꾼다고 주장하며, 나노과학을 통한 바이오의료 분야의 변화와 환경 에너지 문제, 정보통신기술의 문제를 다룬다. 

김춘미 교수는 만물의 근원인 수를 소리로 설계해 아름다움으로 묶어야 불확실성에 좀 더 다가가 진정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음을 역설하면서, 수와 음체계를 하나로 연결할 피타고라스의 예를 통해 디지그노의 개념을 설명하며, 디지그노가 예술 분야에 적용된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이규연 기자는 문예와 기술이 만나 창조성과 상상력을 발휘한 현장을 돌아보며 융합의 실재와 조건을 확인한다. 구체적으로 미국 엔터테인먼트기술센터, MIT 미디어랩, 일본 야마구치 시 예술미디어센터, 일본 인터커뮤니케이션센터를 소개한다.

..................................

3부: 창조사회의 대학
에서는
융합학문의 본격적인 등장과 함께 대학의 변화, 즉 학제와 교수방법과 캠퍼스 등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의 현실을 비판하며 그 대안을 모색한다.

우선 오세정 교수는 현 대학의 학제가 미래에도 남아 잇을 것인가라는 중대한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한다. 그는 대학에서 얻는 지식보다 만난 사람과의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물리적 공간으로서는 엘리트 대학만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유영만 교수는 전공간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과 저공의 벽을 도전하는 창조적 사고를 강조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10가지 교수법 원리를 소개한다. 나아가 융합대학의 교수법은 참여와 대화를 지향하는 Teaching 2.0이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순종 교수는 창조적 교육을 위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래 대학교육을 위한 공간을 재구성해본다. 즉 주거와 산업, 연구, 공공기관, 예술 및 디자인 타운을 아우르는 새로운 캠퍼스를 제시한다.

............................

4부: 창조사회의 리더쉽
에서는
융합학문이 활발히 전개되는 창조사회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의 변화된 의미와 방법을 설명한다. 

김광웅 교수와 김형준 교수는 21세기 후반을 창조사회라 규정하며 미래를 위해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 할 리더십을 설명한다. 여기서 ‘창조사회’란 ‘Foresight 2100’이 1900년에서 2100년까지를 생산사회(1900~40), 소비사회(1940~80), 쇼비즈니스 사회(1980~2020), 교육사회(2020~60), 창조사회(2060~2100)로 구분했던 데서 차용하였으며, 이 창조사회는 1980년대 일본 노무라연구소가 구분한 지본사회-자본사회-뇌본사회에서 흐름상 뇌본사회와 일치한다. en 필자는 창조사회에 걸맞는 리더가 되려면 우선 미래를 바꾸는 과학기술을 알아야 하고 동시에 아름답게 꾸밀 줄 알아야 한다며 그 방법을 제시한다. 특히 투트번스타인의 ‘생각도구’와 다빈치의 ‘7가지 창조의 힘’, 그리고 줄리아 카메론을 언급하면서 창조사회의 리더십의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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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덧 말:

책을 구입하지 않으시더라도 서점, 도서관 등에서
김광웅 교수님이 쓰신 첫 장의 내용, 즉

'21세기의 학문체계―미래의 지적 산책을 어디서 어떻게 할까' (15-35쪽)

의 내용은 미래를 살아가실 분은 한번 읽어 보실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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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4, 2008

인지과학과 법학의 연결: (수정 원고)

인지과학과 법학의 연결: 수정 원고 부분

지난 2008년 6월 12일(목)에 서울대에서 김광웅 교수님의 기획으로 열렸던 [미래대학과 융합학문 심포지움]의 발표 내용과 발표 안된 추가 원고내용이 다음과 같은 도서로 금년 내 출간됩니다.

도서명: 미래에 우리는 어디서 어떤 공부를 할까: -21세기 창조사회의 대학과 학문-

그 책에 들어갈 저의 원고의 법학 관련 부분 수정 내용을 올립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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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전제하였기는 법학도 마찬가지이다. 인지과학적 틀에서 본다면 법이란 인간이 오랜 진화 역사를 통하여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인지적 능력을 통하여 만든 문화적 소프트 인공물 중의 하나이다. 법이 없던 시기의 법의 역할을 하던 사회적 관습에서 부터, 언어화된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법을 언어적 형태로 만들기, 법을 수정보완하기, 법을 지키거나 어기기, 법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다양한 언어적-판단추리적-행동적-사회인지적-인지정서적 상황들, 그리고 잘 암기한 법 지식과 현재 주어진 상황간의 관련성을 파악하여 법률가들이 법을 적용하여 판단결정하기, 변호하기, 법정 증인의 기억 및 판단의 타당성 및 왜곡의 인지적 특성, 법 적용의 적절성, 타당성에 대하여 배심원과 일반인들이 공감하기 등의 대부분의 법적 상황과 과정들이 인간의 인지적 과정과 지식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법 자체, 그리고 법 집행에서 인간의 인지 과정을 무시하고 진행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과거의 법학과 법적용의 실제를 돌아보면 이러한 측면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법이 제정되고, 가르쳐지고, 또 집행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인지와는 괴리된 채, 법학이 연구되어 왔고, 법이 적용되어 왔다. 그동안의 법/법학과 인간 인지 사이의 괴리 상황은 마치 경제학에서 인간의 실제 인지적 측면을 무시한 채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경제주체로서의 인간을 전제하고 경제학 이론을 전개한 신고전경제학 전통과 유사한 면들이 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인지과학과 연결되어 행동경제학, 인지경제학 등의 분야가 일어서게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법학이나 법의 적용 실제와 관련하여 인간의 인지의 중요성, 인지과학과 법학의 연결이 이제는 중요한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져야 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가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법학이 행동경제학을 수입하여 인지과학과 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추세가 일어나고 있다. ‘법의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of law)’, 즉 법인지과학 분야가 열렸다. 행동법학(behavioral law) 및 행동경제학이라는 책이 출간되고 행동법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왜 필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행동의 정확한 이해를 통하여 법을 탐구하려는 새로운 영역의 탄생의 효시이다. 이 책은 인지심리학의 새로운 발견들을 보고한다. 즉 인간이 흔히 이타적이며 과다하게 낙관적이라는 것, 인간은 의지력과 자제력의 한계가 있으며, 인간이 '제한적 합리성'을 지닌 존재 - 즉 인간이 정보처리능력의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흔히 (필자 주: 일반 삶의 여러 상황에 있어서 그리고 법과 관련된 행위에 있어서) '심리적 지름길(short-cuts)'과 주먹구구식 편법(필자주: heuristics)에 의존하는 존재 - 라는 연구사실들을 보고한다. 인간행동의 이러한 측면을 이해한다는 것은, 법의 분석에, 특히 환경보호, 조세, 헌법, 선거, 시민권 침해에 대한 처벌, 노동중재, 기업재무 등의 영역과 관련된 법의 분석에 심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인간행동에 대한 보다 올바른 이해를 통하여, 법의 실제 효과(actual effects of law)를 예측할 수 있고, 법이 그 사회의 목표를 어떻게 도모하는지를 알 수 있고, 또한 법이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재평가를 할 수 있다." [각주1]

또한 해외 일부 대학에서는 행동법학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으며 [각주2] 관련 논문들이 발표되기도 하고있다. [각주3]

또한 법의 언어적 측면에 대한 인지과학적 분석이 필요한데. 법과 가장 관련이 깊으면서도 최근에야 뒤늦게 법-인지과학의 관심의 영역이 된 부분의 하나는 인지언어학적 틀에서의 법 및 법 관련 행동의 이해의 시작이다. 법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의 사고를 언어의 틀에 맞추어 넣은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언어적 개념의 의미에 법의 존립의 기초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인지언어학자들에 의하면 법의 용어, 구절이란 객관적 의미가 있을 수 없고, 메타포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언어학자 G. Lakoff의 입장과, 경제학자 von Hayek 등의 입장).

법의 본질, 법과 관련된 인간의 인지적(개념적, 언어적) 이해 및 사고와 행위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고려하여 보다 현실적인 올바른 법을 만들고, 또 적용하는 데에는 법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법관, 일반인 등) 인지과정의 이해가, 특히 언어적 이해와 사고가 기본이 된다는 생각이, 그리고 인간의 정서, 동기, 사회적 인지와 행동에 관한 인지과학의 이론적 틀과 경험적 증거의 적용이, 그리고 이러한 법학 영역의 교육이 앞으로 국외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점차 더 확장되고 또 인정되리라고 본다. 따라서 미래의 법학은, 해외에서 지금 막 ‘행동경제학’을 중개로 출발되고 있는 분야인 ‘행동법학’ 분야의 발전을 거쳐서 종국에는 인지과학과 직접 연결된 ‘인지법학’ 분야가 전개될 것이라고 본다.[각주4] 행동법학, 인지법학의 분야가 제대로 연구되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실제 법정장면에서 적용된다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보다 개선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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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Cass R. Sunstein (Ed.) (2000). Behavioral Law and 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의 책 소개 글에서.
2. 행동법학 강좌 예: 미국 예일대 법대: Seminar: Topics in Behavioral Law and Economics (2006년);
http://www.law.yale.edu/documents/pdf/Final_Syllabus_Topics_in_Behavioral_Law_and_Economics_Fall_2006.pdf
미국 조지타운 법대: Behavioral Law and Economics Seminar;
http://www9.georgetown.edu/faculty/kmz3/BLEsyllabus.doc
3. 논문 예: 예일대 법대 교수 Christine Jolls의 논문(2006). Behavioral Law and Economics.
http://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959177
4. 행동법학, 법인지과학 : 국내 법학도 크게 변화되어야 한다. 인지과학 마당 블로그 글:
http://korcogsci.blogspot.com/2007/09/blog-post_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