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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 2011


인지과학이 과학철학, 사회과학 재구성에 주는 시사


어제 (2011. 10.01) 하루 종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과학철학회, 한국과학기술학회의 연합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세 회의장으로 나누어 진행된 학술발표 중 모두를 듣지 못하고 오전에는 과학철학 회의장, 오후에는 과학사 회의장에 있었다.

오전의 과학철학 방에서 여영서 교수님과 이상욱교수님의 발표에서 난생 처음으로 ‘Ballungen’이라는 용어를 들었다. 유명한 사회과학철학자 Otto Neurath 가 데카르트 틀을 넘어선 용어로 자주 쓰던 용어임을 배웠다.
( [Encyclopedia and Utopia: Otto Neurath의 삶] 중에서 이 용어가 언급된 부분 페이지=>;

이 용어와 그것을 중심으로 한 두 교수님의 전통적 ‘과학철학 틀’의 재구성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표 내용은 나로 하여금 옛날과 최근의 나의 짧은 생각들을 불러 일으켰다.

30여년전 80년대 초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실험심리학’을 가르치기 위해 강의준비하며 매료되었던 것의 하나가, ‘과학이란 체계는 고정되어 있는 틀이 아니라, 바다에 항해하면서 계속하여 그 배의 갑판을 뜯어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가는 그러한 것과 같다는’ Otto Neurath의 비유 언명이었다.
인지주의 패러다임이 1950년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학계에 등장하여 돌풍을 일으키게 된 배경을 ‘인지심리학’ 강의 시간에 강의하여야 하였던 나에게는 이 비유는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나는 듯한 감을 주었으며 이에 빠져들게 하였다. (나는 이 비유를 2001년에 출간된 [인지심리학: 형성사, 개념적 기초, 전망] (대우학술총서 511, 아카넷)의 제 13, ‘인지심리학과 과학이론, 인식론’의 611쪽에서도 인용하였다.) 이 비유는 80년대초 이후의 나의 과학관을 많이 지배하였다.)

다른 한 생각은 최근에 [확장된 인지/마음](Extended mind; Embodied & Embedded Cognition)에 대하여 읽은 글과 그에 따른 생각의 전개로 최근에 나의 생각 표면으로 떠오른 생각들이다. 그것은 여러 생각들이 연결되어 소용돌이치는 그러한 생각이었다.

이하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지만, 나의 생각에는, 오랜 진화 역사를 거쳐서 인간이 동물과는 다른 능력으로 지니게 된 [마음]의 본질, 핵심은 환경과 경험의 여러 내용을 관련지워 연결하며 의미 짓는 능력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이야기 짓기’, ‘내러티브적 마음’, ‘내러티브적 인지’라는 인간 특유의 능력이고, 이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필수적으로 발달된 것이 언어, 언어적 의미 만들기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인류진화사의 아주 뒤늦게서야 이러한 언어, 의미 만들기, 이야기 짓기를 기초로 하여 그 바탕에서 비로소 규칙을 지닌 ‘논리’라는 사고 형태가 인류에게 발달되게 되었다고 본다.

이는,
[1] 노벨상 수상 심리학자 카네만 교수의 인간 판단과 결정의 상황의존적 특성 및 오류가능성(fallibility) 연구나,
[2] 그와는 다른 맥락에서 인간 사고의 기본이 휴리스틱스(heuristics)적인 것이라는 이론을 전개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심리학자 기거렌저(Gigerenzer) 등의 입장,
[3] 그리고 인간의 사고체계는 두 시스템의 체계로, 하나는 빠르고,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진행되며, 의식되지 않고, 융통적이지 않고(사람이 의도적으로 통제할 수있지 않고), 상황맥락에 크게 의존하며, 작업기억 용량에 거의 부담을 안주는 System1 (implicit cognition이 중심인) 사고 체계이며, 다른 하나는 느리고, 노력을 들여야 하고, 의식적이며, 통제가능하여 변화가능하고, 탈맥락적이며, 작업기억 처리부담이 많은 System2(explicit cognition 중심) 사고 체계라는 영국심리학자 Jonatha Evans의 이중과정이론(dual- process theory)과 통한다.
이들 입장이 시사하는 바에 의하면 확인(확증)편향으로 가득 찬 heuristic적 사고, System1적 사고가 인간 마음의, 인지의 기본이다. 논리적 사고는 지금까지의 인류 진화 단계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자리잡은 이루어진 부수적인 2차적인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대부분의 상황맥락에서 1차적 인지, 즉 휴리스틱스적 인지, 암묵적(implicit) 인지를 가동하여 대상과 상황을 주의, 패턴재인, 지각, 기억, System1적 사고하게 되고, 필요에 의해서만 의식이 개입되고(explicit), 논리적, System2적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두 시스템의 경계라는 것이 확연하지 않아서 논리적 사고이지만 의식이 개입되지 않는 경우나, 그 반대로 맥락의존적 처리이지만 논리가 개입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인간의 인지에서 작동되는 범주화(Categorization), A or not A의 확연한 이분법적 경계선을 지닌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정상분포 곡선이 각각 서로 다른 중심이 있고(Schema나 비트겐쉬타인 류의 가족유사성에 근사한 구조), 서로의 끝 부분(시스템1의 윗부분과 시스템2의 아랫부분)이 겹칠 수도 있는 그러한 방사선(raial) 형태의 구조를 지닌 것으로 본다면 이러한 생각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화는 Neuratrh Ballungen의 개념과 통하리라 본다] (– 이상의 세 이론적 입장에 대한 비판들도 여럿 있다. )

어제 학회에서 거론된 주제인 과학적 방법이나, 논리와 관련하여 생각하자면, ‘의미’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 방법이란 일정한 무엇이라는 확고한 것이 있는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의미 있는 과학적 산물을 생산해내는 방법이라고 한 세대의 과학자공동체가 공동으로 인정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나의 생각이다.

논리란 연역적이건, 귀납적이건, 귀추적이건 간에 의미의 문제, ‘인지의 문제와 연결된다. 명제1과 명제2, 명제3에서 각각의 명제가 의미있고 논리적으로 올바르다고 추론하는 데에는 일부 논리학자나 과학철학자들이 간과하여서 그렇지 그렇게 ‘의미있는 것으로 인지’하는 인간이 있다.

여기에서 나는 계간지 [시와 반시] 2011년 가을호에 게재한 나의 글의 ‘문학과 인지과학’ 관련 한 구절을 인용한다.

[과거의 문학(비평)이론들로서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구성주의, 페미니즘 등의 입장들이 있었다. 이 틀이 20세기 말에 무너지고, 이제는 문학의 내용 전개나 예술을 자연주의에, 진화이론에 바탕을 두고 이해하거나 인지이론에 의거하여 이해 및 분석하고, 비평하고, 기술하려는 입장이 점차 세를 얻고 있다.
기존의 문학(비평) 이론은 주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측면만 강조하였지, 그러한 문학활동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인지적 측면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가 지니는 시사점을 무시하였다. 실제의 인간은 진화역사적으로 변화/발달한 몸을 지닌 생물체인데, 과거의 문학은(적어도 문학비평이론) 이러한 문학적 산물을 내어놓고 또 이해하는 인간이 자연의 존재라는 ‘자연 범주’ 특성을 무시하여 왔다. 과거의 문학비평 이론은 문학작품, 예술 등과 관련된 인간 마음의 ‘자연과학적으로 밝혀지는’ 「숨겨진 복잡성」에 대하여 학문적 인식, 과학적 지향함의 수용이 없었다(인지과학적 의미에서). 아니, 실제의 예술작품 생성 작업 현장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나, 문학(비평)이론가들은 문학이론 구성에서 이러한 부면을 무시하여 왔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밑줄 그은 부분은 어디 다른 곳에서 따온 것인지 나 자신의 생각인지 확실치 않다.)

이제 나는 그 밑줄 그은 부분의 내용의 화살을 ‘과학철학’, ‘논리학’에 돌리고 싶다. (그 분야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입장인지는 몰라도.) ‘문학’ 대신에 ‘과학’, 그리고 ‘문학비평’ 대신에 ‘과학철학’, 또는 ‘논리학’을 대입하여 주장을 전개하고 싶은 것이 나의 현재의 입장이다. 독자가 각자 대입하여 윗 글을 다시 읽어 보기 바란다.

나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과거의 과학철학, 논리학은 과거의 문학비평이론과 같은 오류를 범하여 왔다. 과학적 사고, 논증을 의미있게 하는(과학적 방법과 논리에서, 명제 각각의 의미와 명제간의 의미적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인지의 본질적 과정이 어떠한가,/ 인간이 개념을 어떻게 범주화하는가,/ 인간이 대상에 대하여 어떻게 주의하고 pattern(법주) recognition하여 지각하며, 기억하며, 언어화하는가,/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앨고리즘적이 아니라 휴리스틱스 적인 인지가 소위 논리적 사고에 주는 영향은 얼마나 광범위한가,/ 인간 인지란 철학자 Dennet이 일찌기 논한바와 같이 수많은 내러티브의 거미줄을 엮어나가는 것인데 인간 인지 일반에, 그리고 언어를 사용한 논리적 사고 전개에서 인간 마음(인지)의 이러한 (행동주의 심리학에 반기를 들어 인지주의를 형성하게 한 초기인지과학자의 한 사람이고 하바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J. Bruner가 주장하듯이) 내러티브적 메커니즘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기초적인 과정으로 작용하여 영향주는가 ..... / 등등에 대한 분석이나 고려없이, 진행되어 온 것 같다.

즉 과학철학(논리학)은 과학철학(논리학)을 한다면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대상(범주)인 인간의 마음(인지)의 본질 및 작용 과정들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과학적) 고려 없이 각자의 틀을 전개해오고 있는 것이다.

‘과학철학에 의한 과학적 연구의 무시’ (나의 주관적 과격한 표현) 라는 이러한 상태는 이제 그만 멈춰지고,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지과학]의 떠오름은 인류에게 [new humanism]을 가져왔고, (좌뇌-우뇌 기능 차이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신경심리학자 로져 스페리 교수의 말대로)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영문학자였던 Mark Turner 교수의 이야기대로, 인지과학의 등장과 발전은 [사회과학]을 전면 재구성하게 하고 있다.
( Mathew D. McCubbins & Mark Turner (2010). Going Cognitive: Tools for Rebuilding the Social Sciences. : http://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1728262; December 18, 2010, SSRN; 이 논문의 초록은 위 사이트에서, 논문 원문은 회원이거나 각 대학 도서관을 통해서 접근 가능)

과학철학이, 논리학이, 대상에 대한 지각과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 인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와 그 의의에 대하여 기존의 접근과 초점을 달리하여 눈을 돌린다면, 기존의 틀을 수정하여 재구성하게 될 것 같다, 아니 그것이 인지과학도인 나의 작은 바램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사적 연구도 오래된 과거 물화생 분야의 과학 역사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이러한 변혁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인지과학의 형성 역사와 역동적 미래 가능성과 시사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인문학에서 문학이 어떻게 변하여야 하는가는 이미 계간지 [시와 반시] (2011. 가을호) 글에서 전개한바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히, 인간의 진화. 마음, 인지, 언어, 의미의 원천, 사고, 그리고 그에 영향주는 자연적 및 인공적 환경인 문화 (그것의 하나인 과학체계), 그에 몸을 지닌 생명체로 살고 있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 (Embodied & Embedded Mind/ Cognition) 들의 본질, 그 특성에 대하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새 조망은, 이론은 기존의 어느 한 학문에서 주어질 수 없다. 학문간 수렴과 융합을 (한국적 현재 통용 용어로 통섭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융합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인지과학]이 서 있다. New Humanism 시대의 중심 학문은 여러 학문을 연결하여 포괄적인 물음을 계속 던지는 [인지과학]일 수밖에 없다.

끝으로 노벨상 수상자 신경심리학자 Roger Sperry 교수의 글과, 인지과학 책에 쓴 나의 옛 글을 인용하며 맺는다.

1.
“인지주의 과학혁명의 영향 결과로 일어난 기본적 변화란 수준 간 인과적 결정론에 대한 상이한 패러다임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전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결정된다는 전통적 (물리학의) 가정 대신에, 우리는 역방향적 하향적 결정론을 전제하는 것이다. 전통적 상향적 입장과 인지주의의 하향적 입장이 조합된 ‘이중 방향’, ‘이중 결정’ 모형은 중 방향’, ‘이중 결정’ 모형은 과학으로 하여금 인간 자신과 자연의 질서 전체를 지각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양식을 - 진정한 Kuhn적 세계관 패러다임의 전이로서의 - 부여하였다. ... ...그 결과로, ... 과학이 상징하던 바, 과학이 지지해오던 바, 과학의 신조와 세계관들이 급진적으로 수정되는 것이다. (Sperry, R. W. (1995). The future of psychology. American Psychologist, 50, 505-506.)

2.
“인지과학의 미래는 타학문과의 연계성의 증대와, 그 발전 속도의 빠름으로 인하여 정확히 예측하기가 힘들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재의 진행되고 있는 인지과학 연구의 전반적 흐름을 근거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의 하나는, 이러한 새로운 접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인지과학, 인공지능학, 신경과학, 물리학, 철학, 언어학, 수학, 인공생명학, 로보틱스, 진화생물학, 인류학, 동물행동학, [과학철학 ; 오늘 추가함] 등의 연구들이 서로 간의 경계가 없이 ‘자연적 마음’, ‘인공적 마음’의 과학적 이해와 실제적 구성을 위해 하나로 수렴되어 가며 인지과학이 21세기 과학의 한 핵심 학문이 되는 모습이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인지과학의 미래의 모습이다.
이러한 인지과학의 역동적인 모양을 볼 때에, 학제적이지 않고는, 즉 다른 학문 분야와의 수렴적 연결이 없이는 (한국적 용어로는 ‘융합과학기술적 접근’ 없이는) 어느 한 학문만으로는 인지과학을 한다는 것이 이제는 터무니없는 시도라는 생각이, 인지의 본질을 안다는 것이 초기의 계산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한 이론체계를 적용하여 이룰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리고 인지과학이란 끊임없이 변화, 진화하는 포괄적 역동적 학문이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앞으로의 갈 길이 멀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 ....
인지과학은 지금도 수많은 학문들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종합되어 끓는 소용돌이의 용광로와 같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용광로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어 나오는 산물들은 인간의 생각과, 현실적 응용기술 문명과, 과학의 형태를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바꾸어 놓으리라고 예측된다.(이정모(2009). [인지과학: 학문 간 융합의 원리와 응용].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마지막(714) 페이지 글에서)

- 이정모 - 2011.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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