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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29, 2007

테레사 수녀의 회의에 찬 고뇌의 날들이 주는 감동

테레사 수녀의 회의에 찬 고뇌의 날들이 주는 감동

어제 배달된 타임즈지의 표지 기사가
'마더 테레사의 비밀스런 삶' 이었다.
2007년 9월 3일자 Times 지의 26쪽에서 33쪽까지 무려 8쪽에 달하는 기사였다

궁금하여 다른 기사를 읽기 전에 이 기사를 먼저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오갔고 감동으로 줄을 치며 끝까지 읽어 나갔다.

예전에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회의를 던지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아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갖음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이따금 나의 얄팍한 생각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의 믿음에 회의의 씨앗을 뿌리는,
도움이 안 되는 그런 행동을 이따금 해왔다.

어느 땐가부터,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이름난 독실한 기독교인이나
자신의 손주들과 자녀들을 위하여 마을 입구 성황당 나무에 진심으로 기도하는
(기독교를 모르는) 어느 할머니의 믿음이거나
그 나름대로 존중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종류의, 형식의 믿음이건
그 믿음은 그 개인의 삶 전체를 반영하는 무엇이고
그런 체험, 삶을 살지 못한 제3자가
개념적으로, 이론적으로 무어라고 이야기 하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다른 것을 믿는다고 하여
자신과 다른 신 개념을 갖고 있다고 하여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믿는다고 하여
자신과 다른 깊이의 열성과 믿음으로 믿는다고 하여서

나의 관점이 맞으니 내 식으로 생각하거나 믿어야 한다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나 강요하는 것의 어리석음이 느껴지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믿음이 흔들리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정도 있었지만, 한동안 침묵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안에서 일어나는 이 갈등,

내적으로는 회의적인 생각, 나름대로의 신관, 종교관을 계속 지니고 생각하면서도
외적으로는 그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의 양식을 존중하여 주고
함께 있을 때에는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이 두 흐름을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나를 계속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그러한 무게가 나를 한동안 멈추게 하여 왔던 것 같다.

그런데 !!!

이번 타임즈 기사를 읽으면서 이러한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감동을 받았다.

흔들리지 않는 기독교적 신앙으로
수많은 버려진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성인으로서 추대되었던
마더 테레사 수녀가

일상적으로, 외적으로는 그러한 신앙의, 헌신의, 사랑의 삶을 살았지만
내적으로는 몇 십년간 깊은 회의의(회의라고 표현하기 곤란하지만), 고뇌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이러한 깊은 내면적, 신앙적 갈등과 고뇌를
일반인들에게는 말을 안 하고,
매일의 헌신적, 신앙에 바탕한 행동적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면서도
아주 가까운 몇 몇의 고회성사 신부들에게 편지로, 말로 진솔한 속내 마음을 고백하여 왔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편지들을
작고하기 전에 테레사 수녀는 모두 파기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카톨릭 교단은 이 편지들을 파기 안하고 모아서 책으로 출판하기로 한 것 같다

이 책은 다음 달이면 "Mother Theresa: Come be my light" 라는 제목으로 해외에서 출간된다.
카톨릭 교단은 이 책의 내용이 낮은 수준의 무신론자들이나 회의론자들에게는 무신론적인, 비기독교적인 증거로 인용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오히려 더 깊은 수준에서 참 신앙의 삶, 본질에 대한 깊은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타임즈 지의 기사 제목은 "그녀의 고뇌 (Her Agony)" 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오갔다.

테레사 수녀는
생각하는 믿음, 정직한 믿음, 생명의 기본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믿음
그러나
국내 기독교의 상당히 많은 목사들이 지니고 있는 사춘기적 확신범적 신앙이 아닌
성숙된 믿음의 본을 보여준 것 같았다.

매일, 매시간 벌어지는
신의 피조물들의 생명의 사라짐, 들고 남, 그 신체적 고통의 상황을
직접 함께 아파하며 살아온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렬한 깊은, 본질적 회의를 테레사 수녀는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외적으로는, 일상에서는 기독교적 신앙과 헌신의 본보기로 살아 온 것이다.

일상으로 마주치는 처절한 삶, 고통, 죽음의 현장들을 함께 느끼면서
정직한, 생각하는 신앙인이라면
그녀와 같은 깊은 회의적 고뇌를 지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의 보도된 테레사 수녀의 사진들에서 느끼던 그 그늘이
비참한 생명 상황들에 대한 슬픔에서 비롯된 그늘이었다고 생각하였었는데
이제 보면 그러한 그늘에
그가 믿던 신의 부재에 대한 회의적 고뇌의 끊이지 않음에서 오는
그늘이 합하여져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그 진한 고뇌가 전하여져 오는 것 같다.

테레사 수녀가 계속 느꼈을
계속된 신의 부재, 그의 무반응, 그의 사랑이 들어나지 않음
그러한 커다란 텅빔, 공허, 암흑, 차가움...
그러한 것을 느낌에서 오는 칼날같이 도려오는 진한 신앙적 고통, 고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비밀스레 감추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계속 보여야하는 주어진 현실의 삶.

"I keep smiling at Him(신) in spite of everything."

그런 암흑, 텅비임, 냉냉함 들을 매일 매일 느끼며
그런 아픈 깊고도 진한 고뇌와 회의를 가지고도
그럼에도 살아있는 그 누구보다도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봉헌한
그..

"I just have the joy of having nothing - not even the reality of the Presence of God."
".. it is even more astounding to realize that she achieved them (봉사와 사랑의 실천) when he (신, 그리스도) was not available to her."

확신범 같은 신앙을 지닌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회의하면서도 참 사랑의 본을 보여준 그가
'성인'의 반열에 추대된 것이 참 옳은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테레사 수녀가 일반인 일반신도들과 다른 점은 다음에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신의 부재, 텅빔, 깊은 암흑감...
그러한 것이 바로 신의, Christ의 본질적 속성임으로 깨달아
그러한 부재, 암흑, 텅비임에 대한 절절한 느낌에서
오히려 신과 깊이 연결되고 그와 하나의 삶임을 체득한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느낌도 테레사 수녀는 그 이후에도 계속 반문과 회의를 하였지만)

카톨릭 교단은 테레사 수녀의 편지들이 책으로 공개됨을 통하여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목회(ministry)와 전혀 다른 ministry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신학과 목회학을 잘 모른 채, 멋대로 이야기하여 미안합니다.)

전통적 신앙관, 목회관은 아마도
기독교적 믿음에 대하여 처음부터 (아니면 최소한 점진적으로)
확신을 지니고 기독교인으로 성장하는 방향으로 하는 목회인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틀의 ministry는
테레사 수녀의 진솔한 끊임없는 회의와 고뇌에 찬 믿음의 길,
그러면서도 기독교적 신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깊은 진솔한 회의를 통하여 신의 참 모습에게로 더 가까이 닥아 갈 수 있는 그러한
길을 제시, 추천하는 것 같다 (저의 오해인지 모르지만요)

신의 부재, 무반응, 그로 인한 텅비임과 암흑을
매일 매일, 매순간 절실히 느끼면서도
그 대답없는 신에게의 연결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흔들리는, 회의와 고뇌에찬 신앙의 깊이와 질을 더 상승시켜나가는
그러한 신앙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종류의 신앙의 길이다
신과 나와 삶과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체험적 인식의 길인 것 같다

도킨스의 God Delusion 등의 무신론적 입장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고,
종교라는 것은 인간이 진화 역사적으로 인간의 지적, 정서적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 낸 인지적 결과물인 것이라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하지만

신(기독교적 신이 아니라)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는 개개인이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신을 믿는다는 존재론적, 도덕적, 인식론적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면

신(좁은 의미의 기독교적 신이 아니다)을 믿는 다는 것은,

많은 종교적 틀 중에서
실존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종교적 틀을 확신적으로 믿고, 절대 회의하지 않는 그러한 길을 가는 방식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런 분들이 더 축복받은 분들일 수 있다)

마더 테레사 수녀처럼
대답이 없는 신에 대하여 끊임없이 회의하며 고뇌하지만
그 부재, 텅비임, 냉냉함, 어두움 속에서
오히려 나 자신과 신의 연결됨을 긴장 속에서 깨달으며
마더 테레사 수녀의 간 길을 따라.

.................
(조금은 위의 내용에서 벗어난 개인적인 생각을 사족으로 단다고 하면,)

일상적으로는,
나에게 던져진 현실적 종교적 신앙의 틀에서 살면서, 그 안에서
능동적, 적극적 행동으로
나, 신, 생명, 우주가 하나임을 느낌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나눔(넓은 의미의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모든 자연의 생명과 나가 하나된 느낌
모든 인간이 나와 떨어져 있지 않고 너와 나가 구분이 있을 수 없는
흘러가는 강물의 한 흐름, 한 운명의 공동체적 물방울들이라는
'우리', '하나임' 의 절실한 느낌

자연, 신, 나,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절실한 느낌에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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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지 기사는 아래 사이트에 있습니다.
Mother Teresa's Crisis of Faith
By David Van Biema/ Thursday, Aug. 23, 2007
http://www.time.com/time/printout/0,8816,1655415,00.html
책의 소개는 다음에 있고요
Mother Teresa: Come Be My Light (Hardcover)
by Mother Teresa (Author), Brian Kolodiejchuk (Author)
http://www.amazon.com/Mother-Teresa-Come-Be-Light/dp/0385520379
인터넷에서
Mother Teressa + Come be my light
로 검색하시면 상당히 많은 최근의 기사, 자료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 comments:

  1. 전 종교인은 아니지만, 수녀님의 고뇌와 정진이, 그것 자체가 그녀의 신앙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것을 책으론 낸 카톨릭 제단의 결정이 더욱 존경스러운 듯 합니다. 이제는 구교가 신교에 비해 더욱 개혁을 앞장서는 건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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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nonymous3:5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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