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에서의 (서구적) ‘마음’ 개념의 재구성
이정모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인지과학협동과정)
서양에서의 마음에 대한 탐구는 고대 희랍부터 있었지만, 이러한 탐구가 하나의 체계화된 경험적 학문으로 체계화된 것은 철학으로부터 심리학이 19세기에 독립함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심리학의 발전에 따라 마음 개념에 대한 여러 다른 개념화가 진행되었고, 20세기의 중반에 형성된 인지과학의 마음에 대한 관점은 수학과 논리학 전통의 정형주의에 기초하고 컴퓨터 은유에 터를 두고 있는 계산주의-표상주의의 정보처리적 패러다임의 개념이었다. 20세기를 넘어서 21세기에 들어선 현 시점에서 인지과학에서의 마음의 개념은 철학의 영향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및 공학 등의 경험과학의 영향을 받아 다시 재구성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재구성의 흐름을 개관하고 그 의의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기로 한다.
1. 고전적 마음 개념: 20세기 중반까지의 심리학과 인지과학
호머의 일리어드 오딧세이에서와 같이 ‘숨’의 개념으로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서구의 ‘마음’ 개념은 희랍의 여러 학자들과 중세의 기독교 및 그 이후의 철학자들, 그리고 이슬람의 이브센나(Ibn Sina (또는 Avicenna)) 등의 자연과학자들의 체계적 생각에 의하여 가다듬어져 왔다 (Leahey, 2000). 이런 가다듬음의 역사는 영혼과 마음과 몸의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와, 마음의 기능적 구조를 분할하는 문제에 초점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하여는 희랍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나 Alcmaeon 등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마음을 몸과 독립적인 실체로 개념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Augustine, Aquinas 등의 기독교 전통을 통해서 17세기까지 이어졌고, 근대 이성의 획을 그은 데카르트에게도 살아 있다.
이러한 선대의 사조의 영향을 받은 데카르트는 인간의 신체를 동물과 연속선상에 있는 하나의 자동기계로 개념화하며, 마음과 몸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심리학적 체계를 제시하였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몸은 동물적 기계로 보고, 마음, 영혼은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마음은 사고하는 실체(res cogitans)이나 외연을 지니지 않는 반면, 몸은 공간에서 기하학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외연(extension)을 지닌 실체(res extensa)이다. 또한 몸은 무한히 쪼갤 수 있으나, 마음은 그 다양한 능력, 기능과 심적 작용에도 불구하고 분할 불가한 단일의 통일적 실체이었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입장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수정론적인 입장이 이후에 있었으나, 서구의 문화사에서는 이원론적 입장이 지배적인 입장으로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 이후 17세기와 18세기의 학자들은 철학 내에서 인간의 영혼과 마음의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심적 현상의 이해와 설명에 경험적이고 기계론적인 체계화를 시도하였다. 심리현상의 연구에 기계적, 요소주의적, 연합적, 유물론적, 생리적 입장이 강조된 경험주의적 접근 방법을 가져왔다. 그리고 물리현상에는 수학을 적용할 수 있지만, 심리현상에는 수학을 적용할 수 없기에 심리학이 과학이 될 수 없다는 E. Kant의 관점을 논박하고 심리현상에 미적분의 수학적 등식을 적용하여 의식 내의 관념들 간의 역동을 수리적으로 이미 1810년대에 제시하였던 J. Herbart의 시도와, 심리 세계와 물질세계를 연결시키려 하였던 B. Spinoza의 관점을 종합하여, 마음(psyche)과 물질(physio)의 관계를 수리적이고 경험과학적인 틀로 구성하려 한 것이 19세기의 G. Fechner의 시도이었고 심리(정신)물리학(psychophysics)의 출발이었다. 이러한 심리(정신)물리학의 기본 개념화 과정을 바탕으로 하여 19세기 후반에 심리학을 실험과학으로 독립시켜 출발시킨 W. Wundt는 마음의 개념을 전개함에 있어서 감각과 의식에 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그 후 20세기 초반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논리실증주의의 입장에서 접근하여, 마음이란 관찰할 수도,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보고 마음 개념을 심리학에서 축출하고 오로지 관찰 가능한 행동에만 초점을 두었다. 방법론적 엄밀성을 추구한 나머지 주제를 버린 형국이었다. 이러한 행동주의 심리학에 반발하며 1950년대 후반에 대두한 인지주의는 인지과학을 출발시켰으며 인간의 마음을 심리학의 주제로 복원하였다 (인지과학 개관은 이정모(2006) 참조).
<인지주의의 마음 관>. 인지주의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정보처리 체계로 개념화하였으며 마음은 곧 정보처리 구조와 과정들의 집합으로서 이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 말까지 내려온 이러한 고전적, 전통적 인지주의의 기본 틀은 심신관계에 대하여 일원론적 틀을 지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에 기초한 이원론적 마음관의 전제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입장에서는 마음과 외적 환경의 대상이 주체와 객체로 이분화되고, 마음이 외적 자연 대상에 대하여 있는 대로 반영하는 충실한 거울이며, 마음의 내용과 작용이 환경과는 비교적 독립적으로 인간의 머릿속이라는 하나의 무대(theater)에서 이루어지는 것(“Mind as a theatre in the head”; Cartesian theater)이라고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인지주의에 의하면, 이러한 마음은 그 내용이 상징(기호) 표상들로 이루어져 있고, 마음의 작용은 정보처리 과정으로 이루어진 정보처리 체계라는 입장이었다. 이 입장은 계산주의, 표상주의라고 불렸다. 이 입장을 조금 단순화하여 표현하자면, 마음과 몸이, 그리고 이성과 정서가 분리되어 있고 마음과 행위가 이원화되며,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부각되지 않고, 인간 내적 작동으로 충족한 그러한 심적 체계의 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연관에서 마음의 생물적 기반인 뇌의 작용과 마음이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실시간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측면들이 소홀히 된 그러한 입장이었다. 1980년대까지의 이러한 고전적 인지주의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의 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격하시켜 뇌의 탐구를 소홀히 하였다.
한편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연결주의나, 그 이후에 등장하여 현대 인지과학의 성과를 이끌어가고 있는 인지신경과학은 물질로의 환원주의적, 일원론적인 입장에서 뇌를 강조하기는 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상을 경험하는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들은 심신동일론적 일원론 관점을 주장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상을 경험하는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음과 몸의 연결을 단순히 뇌의 신경적 상태로 환원하는 단순적 시도 이외에는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 측면에 대한 어떤 시사를 주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러 심적 기능에 관한 인지심리학적, 신경과학적 연구들은 환경과 독립된 별개의 실체로서 작용하는 뇌와, 뇌의 신경적 상태로서의 마음의 개념 틀의 타당성에 대하여 그 개념적 기초를 엄밀히 체계적 분석을 하지 않은 채 진행되어 온 것이다.
2. 마음 개념의 재구성 시도: 1980년대 이후의 인지과학적 움직임
전통적 인지주의가 1980년대 이후에 마음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거쳐 온 중요한 개념적 틀의 변화를 단순화하여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흐름은 기능주의의 다중적 구현(multiple realizability) 틀에서 뇌를 경시하고 추구되었던 인지과학으로부터 마음의 물리적 구현 기관인 신체, 좁게 말하여 “<뇌>의 되찾음”이라는 변화이었다. 다음으로는 그러한 마음과 뇌가 현실적으로 체화되어(embodied) 있고, 또 영향을 받는 바탕인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진화 역사적 <환경>의 되찾음이라는 변화이다. 전자는 연결주의, 인지신경심리학, 인지신경과학의 떠오름과 함께 이루어졌고, 후자는 진화론, 동역학적 접근, 현상학 등 다양한 영향의 유입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Bechtel, Abrahamson, & Graham(1998)은 이 둘을 인지주의가 뇌 기반으로의 <아래로의 끌음(downwards pull)>적 변화와, 문화적, 사회적, 진화 역사적 환경에 심어져서 환경과 함께 작동하는 실체로서의 마음으로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밖으로의 끌음(outwards-pull)>적 변화를 겪은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두 변화 흐름은 단순히 뇌 대 환경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존재론적 문제가 걸린 차이를 지니고 있다. 전자는 데카르트의 존재론 내에서의 전개이고 후자는 데카르트의 존재론 틀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틀을 고려하며, 인지주의가 출발한 이래 50 여 년이 경과한 지금까지의 인지주의의 변화 단계를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은 4단계를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이정모, 2001).
제 1단계는 심리학에서 마음을 제거하였던 행동주의의 반(反)심성주의로부터 탈피하여, 디지털 컴퓨터 유추에 바탕한 물리적기호(상징)체계(physical symbol system) 중심의 정보처리 접근의 인지주의를 형성한 것이었다. 제 2단계는 <컴퓨터 은유> 중심의 이러한 고전적 정보처리 접근에 바탕한 인지과학의 이론적 개념화의 한계를, <뇌 은유>의 신경망 연결주의 접근에 의하여 상징이하(subsymbolic) 체계의 계산주의를 통해 극복하려 한 것이었다. 제 3단계는 연결주의 움직임의 영향과 인지신경과학의 연구기법의 급격한 발전에 의해 이루어진 뇌의 재발견을 통해, 마음에 대한 접근을 신경과학의 기초 위에 놓으려는 움직임이었다. 제 4의 단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그 영향이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문화적 접근에 의한 변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입장은 인간의 마음이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는 순간 순간적 상호작용 행위 활동상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즉 문화, 역사, 사회의 맥락에 의해 구성되고 결정되는 그러한 마음이며, 인지임을 강조하는 접근이다.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 ‘뇌의 되찾음’으로 명명할 수 있는 ‘아래로의 끌음’에의 변화는 이 네 단계 중 2 및 3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1980년대 전반의 신경망 모델을 강조하는 연결주의의 떠오름과, 뇌영상기법의 발전을 기반으로 하여 1990년대 초에 이루어진 인지신경과학의 형성에서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인지신경과학적 접근의 대두는 전통적 인지주의가 신체를 무시한 채, 뇌의 중요성을 경시한 채, 추상적인 표상체계로 마음을 개념화하였던 데카르트적 관점에, 몸의 부분인 뇌라는 물리적 구체성을 되찾아 준 것이다. 이전의 전통적 인지심리학에서는 인지과정이나 표상체계에 대한 개념, 이론, 가설적 예언 등은 인지실험실 내에서의 인지과정 실험에 의해 그 타당성을 검증 받고 세련화되었었다. 그러나 인지신경심리학적 접근이 도입되고 확산되면서 하위 인지구조와 단계적 과정을 제시한 인지심리이론들 특히, 언어, 기억, 주의 등에 관한 인지이론들, 개념들은 그 이론적 구성개념의 타당성과 예언의 타당성이 신경생리학적, 신경생물학적 기반(neural correlates)에 의해 검증되고, 재구성되고 있다. 마음의 과정과 구조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제는 최종 확인과 검증을 인지신경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절차가 추가되거나 그것으로 대치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대한 개념화와 설명이 신경적 바탕에 터를 잡게 된 것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다른 한 변화는 인간의 마음, 인지의 본질에 대한 사회-문화적, 진화생물학 이론적 재구성의 <밖으로의 끌음> 변화이다. 1980년대 후반 이래로 생물학, 특히 진화생물학, 사회생물학의 이론적 틀이 심리학에 도입되고, 서유럽의 사회과학적, 인문학적 사조의 유입으로, 인지심리학에서도 마음과 인지의 진화역사적 결정인의 측면, 사회문화적 결정 영향의 측면, 활동과 행위로서의 마음,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구조로서의 마음의 개념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어, 마음의 개념적 기초를 변화시키고 있다. 일찍이 유럽 대륙의 철학이나 사회과학 이론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사회심리학, 발달심리학은 마음이 사회적 산물이며,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됨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이 인지과학에 삼투되고, 이에 마음의 활동성 이론, 진화심리학이론 등의 영향이 가하여지면서, ‘뇌라는 그릇’ 속에 환경과는 독립된 표상적 정보처리체계로서 개념화했던 종래의 마음에 대한 이론적 틀을 수정하여, 문화적, 사회적, 진화역사적 환경에 체화되어서 환경과 함께 작동하는 실체로서의 마음으로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접근이 떠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새 움직임들은 하나로 결집되지 못한 산만한 움직임들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지과학에서는 시초부터 철학자 J. Searle(1992)의 인지과학 비판을 비롯하여, 언어학자 Lakoff(1987)의 은유와 스키마 개념, Varela, Thompson 와 Rosch(1991)의 ‘인지생물학’ 및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 개념, R. Harré와 Gillet(1994) 등의 ‘담화적 접근(discursive approach)', Clancy(1993) 등의 '상황인지(sitated cognition) 접근', Vygotsky의 이론틀에 기초하는 '매개된 행위(mediated cognition) 접근' 및 Wertsch(1998)의 행위적 접근 등의 사회인지적 입장에 기초하여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표현하자면 그 동안의 인지과학을 지배해온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틀을 벗어나려는 그러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의 인지과학(the third kind of cognitive science)’, ‘체화된-몸에 바탕한 인지과학 (embodied-embedded cognitive science)’이라고도 불리는 이 움직임의 요점은 마음이 뇌의 신경적 상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신경적 상태, 비신경적 신체, 환경 등의 전체 상에서 이루어지는 실시간적 활동으로 개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과 뇌를 별개의 실체로 개념화한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이나, 생물적 뇌가 부가하는 제약적 속성을 무시한 채 인간의 마음을 정보처리체계로 개념화한 고전적 인지주의나, 그리고 생물적 뇌의 속성이 인지와 심적 경험의 속성을 특징지으며 모든 심적현상은 생물적, 신경적 상태와 과정으로서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유물론에 반발하는 그러한 움직임을 전개하는 것이다. 뇌의 생물적 특성을 무시한 정보처리적 표상주의이건, ‘뇌 = 마음’의 심신동일론이건, 마음의 본질과 특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뇌 내부의 신경적 상태만으로 환원하는 것은 실제의 역동적인 마음과는 다른, 거리가 있는 부족한 개념화이며, 뇌, 신체, 그리고 환경 세상이 연결된 집합체 상의 현상으로 개념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리학의 마음 개념과 이론을 이와 같이 밖으로 이끌어 낸 몇 개의 주요 흐름이 있었다. 그 흐름들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생태학적 접근: 1970년대 및 1980년대에서 기성 인지주의 심리학의 관점에 대한 강력한 대안적 관점을 제기하였던 생태지각심리학자 J. J. Gibson(1979)에 의하면, 유기체와 환경을 이원론적으로 구분 지을 수 없다. 따라서 심리학은 인간 마음 내의 표상, 계산 등의 연구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살아 움직이고 또 상호 작용하는 환경, 즉 자극세계의 생태적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심리학이 해야 할 일이란 자극들의 변화 속에 내재하는 특성(invariant properties)을 탐지하는 것이다. 자극은 유기체에게 외부에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의 행위에 의해 비로소 산출되고 획득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란 수동적으로 외부자극을 수용하고 낱개 정보를 표상으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환경으로 무언가 활동을 하여, 그 결과에 따라 심적 경험 내용이 획득되는 것이다. 외부 자극에서 의미를 추출하는 것은 환경에의 유기체의 행위이다.
동역학 체계적 접근: Kelso(1995) 등은 기존의 인지주의 전통이 심적 상태를 어느 시점에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쪼개어 나누어 이론을 세워 온 것에 반(反)하여, 심적 상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인지과학과 심리학 이론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동역학적 체계(dynamic system)의 활동으로서의 심적 활동을 강조하는 이 입장에서는 마음의 내용인 내적 표상의 전제(고전적 인지주의의 대전제)를 불필요한 것으로 본다. 심적 활동이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밖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이 환경에 체화된(embodied) 마음이 환경과의 상호작용 실(實)시점에서 비로소, 그리고 상황 특수적으로, 환경에서 주어진 단서 구조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비표상적 역동체계적 활동이라고 본다.
발견법-편향 연구: 데카르트의 인식론에 바탕하여 마음을 논리적 규칙이 지배하는 합리적 정보처리체로 간주했던 전통적 인지주의의 관점을 수정하게 한 다른 한 인지심리학적 연구 흐름이 있다. 인간의 각종 판단과 추리의 오류가 고전적 논리적 합리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며 실용적(정보처리의 효율성 위주의) 합리성에 기초한 발견법 중심이라는 입장이다(Simon, 1957; Kahneman, Slovic & Tversky, 1982; 이정모, 2001, 12장). 이 입장에 의하면 인간이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합리적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적 특성의 본질 그 자체가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Simon, 1957)이며, 논리적 합리성 원칙의 체계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완벽한 계산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그러한 체계가 아니라 생태적 합리성 원리에 의하여 환경에 적합한 단순하고, 빠르고, 검약한 휴리스틱스를 생성하는 체계라는 것이다(Gigerenzer, 2000). 이 흐름은 기존의 사회과학 및 일반인들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생각, 즉 인간은 (합리적) 이성적 동물이라는 통념을 실험적 증거를 통하여 밑바탕부터 무너뜨리는 것이며, 인간 이성의 비합리성을 주창하여온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서구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관점을 경험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판단과 결정, 그리고 추리 과정의 논리적 합리성에 대한 본질적 회의를 제기하여 마음 개념의 다른 측면의 재구성을 촉진시켰으며, 최근에 진화심리학적 연구와 연계를 지니면서 그 논지에 무게가 더 실려지고 있다.
진화심리학적 접근: Cosmides & Tooby(1992) 등이 중심이 되어 제기된 진화심리학적 접근은 심리학 전반과 인지과학을 재구성하는 또 하나의 대안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진화의 자연선택 과정들의 설명을 통해 마음의 진화적 특성을 밝히고, 그것이 주는 의의를 찾는다. 마음은 다른 신체적 체계와 마찬가지로 진화 단계에서(특히 수렵채집 시대에) 인류의 선조들이 그 당시에 당면하였던 환경에서의 중요한 정보처리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어떤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자연선택에 의해서 조성된 것이다. 그러한 단계에서 습득된 심적 특성이 오늘날의 인간에게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최근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전적 인지주의 틀의 마음 개념은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상황적 접근; 행위로서의 마음: 이 접근은 환경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행위로서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고자 하며, 환경이 인간의 심적 특성, 한계를 규정, 제약하고 인간의 심적 구조가 환경을 규정하고 변화시키는 그러한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서의 마음을 연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외부 환경과 고립된 개인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적 과정과 그에 의해 의미를 지니는 표상을 마음의 본질로 보는 데카르트적 인지주의 관점과는 다른 입장을 제시한다. 즉, 세상 속에서 적응하며 활동하는 존재이며 세상의 일부로서의 한 개인이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그리고 물리적 환경의 자연물과 인공물과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지는 담화에 의해 구성되고 의미를 지니는, 그리고 구체적인 신체에 구현된 실체로서의 인간 마음, 그리고 환경 내의 다른 인간의 마음이나 각종 인공물에 분산표상된 마음,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상황 지워진 마음, 행위로서의 마음(mind as activities)으로서, 그 본질로 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하나로 볼수도 있는 인지생물학입장 (Maturana, & Varela, 1980, 1988; Varela, Thompson, & Rosch, 1991)에서는 인지의 마음의 뿌리가 인간존재의 생물학적 바탕에 뻗어있다고 본다. 따라서 생물적 삶과 심적 행위, 심적 내용이 하나로 얽혀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한 접근인 담화적 접근 (Harré & Gillet, 1994)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능동적이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와 에피소드를 구성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사회적 세계는 담화적 (discursive) 구성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사회 문화적 집단에 의해 형성되고 구성되는 담화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세상을 한 개인에게 의미 있게끔 하는 기술과 기법의 영역이 마음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식의 마음의 개념은 버려야 한다. 마음이란 개인을 넘어서는 여러 외적 영향들이 마주치는 점이다.
한편, 상황인지(situated cognition)접근은 이러한 여러 가지 관점들이 종합되어 인간의 마음을 <상황 지워진(situated)> 관점에서 재구성하려 한다(Clancy, 1993). 마음은 뇌 속에 캡슐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물리적, 사회적)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구현된다. 고로 환경으로부터 독립된 마음이란 불가능하다. 인공물, 외적표상이 일상의 문제해결에서 흔히 사용되기에 마음과 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인간의 지식은 경험되는 상황 또는 일련의 범위의 상황들과 완전히 괴리되거나 탈맥락화 될 수는 없다. 마음속의 표상에는 항상 어떤 문화적 맥락이 있다. 또한 사고란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의 신체적 기술인 것이며, 사고 속에 지각의 기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매개된 행위(mediated cognition) 접근. Vygotsky의 이론틀(Vygotsky, 1978)에 기초하는 이 접근에서는 문화사회적 상황맥락에서 인간 개인과, 매개 수단으로서의 문화적 도구가 하나의 단위를 이루어 상호 작용함에 초점을 둔다. 인간의 마음이 인류 역사적, 문화적, 제도적 맥락에 의하여 형성되었기에, 인간의 마음은 이러한 환경 맥락에서의 발달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문화적 도구(언어를 포함)와 개인을 별개의 독립적 단위로 떼어놓아서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이상에서 언급한 <밖으로 끌어냄> 또는 <사회문화적, 상황적 재구성>을 지향하는 이러한 접근들의 개념과 이론, 그리고 실제 연구 수행의 관행들은 인지주의의 패러다임적 특성을, 그리고 개념적 기초적 생각들과 방법론들을 점차 변화시키고 있다.
3. 계속되는 탈 데카르트적 추세: 21세기의 철학과 인지과학의 움직임들
3.1. 인지과학 일반에서의 '마음 = 뇌' 동일시 관점의 비판
앞서 언급하였듯이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 뇌의 중요성을 되살려 놓은 <아래로의 끌음>의 움직임은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기존의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전개되고 있는 틀이다. 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마음은 다름 아닌 뇌의 신경적 상태일 뿐이라고 하는 입장의 저변에는 마음에 작용하는 외적 환경 요인의 계속된 역동적 영향이, 그리고 개별 상태의 집합이 아닌 연속적 역동으로서의 마음의 개념이 배제되어 있다. 또한 마음이 뇌의 신경적 상태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입장을 전개하였지만, 뇌가 아닌 나머지 몸의 역할에 대하여는 주의를 주지 않았다.
뇌와 마음을 동일시한다던지, 뇌는 중요하다고 인정하지만, 몸의 기타부분이나 환경요인을 경시하는 이러한 기존의 인지과학적, 신경과학적 관점들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철학에서는 옛부터 있어왔으나, 주로 현상학적 입장의 학자들 중심으로 전개되었기에, 실험적 경험자료를 중시하는 일반 심리학이나 인지과학계나 신경과학계에서 큰 영향을 주거나 주류를 이루지는 못하였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초 이 시점에서 비판적 관점의 목소리가 철학에서, 그리고 인접학문에서 다시 점차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인지 과학적 논의들은 전통적 관점인 환원주의적 심신동일론뿐만 아니라 주체-개체 이분법의 데카르트적 존재론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Clark, 1997, 2001; Clark & Chalmers, 1998). 뇌 내에서 일어나는 과정으로서의 심적 경험이라는 ‘뇌 = 마음’ 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Uttal, 2001), 인간의 마음이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확장되어 있으며('Mental phenomena emerge not merely from brain activity, but from an interacting nexus of brain, body, and world.(Rockwell, 2005)'), 환경에 신체로 체화된(embodied) 개체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action 상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거론하고 있다 (Rockwell, 2005; Wheeler, 2005).
이러한 새 입장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J. Dewey, R. Rorty 등의 실용주의 철학자들과 M. Heidegger, M. Merleau-Ponty 등의 대륙의 현상학적 철학자들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표상주의와 계산주의를 추종하여온 인지과학에 반대하여 이러한 대안적 관점의 타당성을 80년대와 90년대초에 강하게 부르짖은 것은 H. Dreyfus나(1991) J. Searle(1992), Clark(1997) 같은 일부 인지과학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일반 경험주의 과학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수용되거나 새로운 주류 틀로 발전되지 못하였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체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철학 이외에 아닌 경험과학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부터이다.
20세기 중반의 인지주의 형성 이전에, 마음과 뇌의 신경적 상태를 동일시하고 환경적 요인을 경시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제기를 경험과학인 심리학에서 찾자면 W. James, K. Lewin, 그리고 J. J. Gibson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이미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지각심리학자 J. J. Gibson(1979)은 유기체와 환경을 이원론적으로 구분 지을 수 없으며, 심리학은 인간 마음 내의 표상, 계산 등의 연구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살아 움직이고 또 상호 작용하는 환경, 즉 자극세계의 생태적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마음은 자극들의 변화 속에 내재하는 특성을 탐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극은 유기체에게 외부에서 마음으로 또는 뇌로 일방적으로 부과되고 표상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의 행위에 의해 비로소 산출되고 획득되는 것이다. 마음이란 수동적으로 외부자극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환경으로 무언가 활동을 하여, 그 결과에 따라 심적 경험 내용이 획득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Thelen과 Smith(1993) 등의 발달심리학 연구자들은 어린아이가 걷기를 학습하는 행동 등을 뇌 내의 내적 표상 개념이 없이 동역학체계적(dynamic system) 틀을 적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함을 보였다.
철학 밖에서 전통적인 관점을 비판한 주장이 제기된 것은 심리학 외에도 인류학, 인공지능, 로보틱스, 신경과학 연구의 일부를 생각할 수 있다. 인지인류학자인 E. Hutchins(1995)는 몇 사람이 함께 협동하여 움직여 나가는 요트 항해와 같은 실제 예에서, 모든 정보가 개인의 뇌내에 표상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환경에 분산저장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공지능학자 R. Brooks(1991)는 그 당시 인지과학 전반을 풍미하던 접근인 내적 표상 조작 중심의 인공지능시스템 관점이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바퀴벌레와 같이 뇌내의 정보 표상이 없는(nonrepresentation) 지능시스템이 앞으로의 로보틱스 연구가 지향하여야 할 방향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Gibson, Thelen, Hutchins, Brooks 등 학자들의 공통점은 마음이란, 특정 지식이 정형적 표상으로 뇌에 미리 내장됨 없이,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개체가 환경에 주어진 단서구조들과의 상호작용하는 실시점의 행위에서 일어나는 비표상적 역동적 활동이라고 본 것이다.
한편 신경과학에서 R. Melzack(1993) 등은 뇌와의 연결이 단절된 척추체계가 통증 감각과 학습에서 일종의 인지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과, 신경계가 아닌, 전신에 퍼져있는, 홀몬 관련 세포 수용기들이 정서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정서적, 의식적 사건이 뇌만의 사건이 아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음 = 두뇌’ 식의 단순화된 생각의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또한 유명한 신경심리학자인 M. Farah(1994), Crusio(1997), 신경지각심리학자 Uttal(2001, 2005) 등도 마음과 뇌를 동일시하여 뇌의 심적 기능의 국재화(localzation)가 곧 마음의 속성을 밝혀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단순한 관점의 위험을 제기하였다. 마음과 뇌를 동일시하는 것은 범주 오류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지과학 내의 경험과학에서의 이러한 새 관점의 논의는 인지과학적 철학이 연계되어 묶이어 지기 이전에는, 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데카르트적 틀에 대한 비조직적 산발적 압력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인지과학, 신경과학, 심리학의 기반에 놓여 있는 데카르트적 존재론을 무너뜨리지 못하였다.
3.2. 철학에서의 마음 개념 재구성의 시도
그런데 이제 21세기 초, 현재의 시점에서 인지과학적 철학이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다시 가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인지과학의 경험과학적 연구의 새 변화들이 어떤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묶이어 질 수 있는가 하는 철학적 개념적 기초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과 뇌가 동일한 것이 아닐 수 있으며, 마음은 뇌를 넘어서, 비신경적 신체, 그리고 환경, 이 셋을 포함한 총체적인 집합체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으로 개념화하여 인지과학의 기초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부활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전에 현상학 철학자들에 의해 논의된 입장이 1980년대에 인지과학 철학자들에 의해 인지과학에서 논의되었고, 이것이 21세기에 다시 힘을 얻는 이러한 작업의 최근 시도는 논저들에서, 그리고 학술모임 등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의 관련 저서로서는 신경과학자와 철학자가 공동작업하여, 신경과학의 철학적 개념적 기초가 박약함을 주장한 책인 Bennet & Hacker(2003)의 저서, 지각도 사고도 감각-운동적 신체적 행위에 바탕하고 있다는 철학자 Noe(2004a)의 저서, 마음은 뇌 자체도, 기계속의 도깨비도 아니다 라는 주제로 강하게 ‘마음 = 뇌’ 관점을 비판한 철학자 T. Rockwell(2005)의 저서, 뇌 속의 마음이 아니라 몸과 괴리되지 않으며 세상과 괴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인지로 재개념화하여야 한다는 철학자 Wheeler(2005)의 저서, 몸 이미지가 아닌 몸 스키마의 개념을 사용하여 ‘몸이 마음을 어떻게 조형하는가’ 하는 주제를 다룬 철학자 Gallergher(2005)의 저서, 철학 밖에서, 몸을 배제한 체화되지 않은 상호작용의 개념으로는 인간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할 수 없다는 컴퓨터과학자 Dourish(2004)의 저서, 마음은 뇌 안에 있거나 개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를 넘어서, 개인을 넘어서 있다는 Wilson(2004)의 저서, Menary가 편집하는 '연장된 마음에 관한 논문들'이라는 저서(in press) 등이 있다. 이외에 관련 논문으로는 Clark과 Chalmers(1998), Clark(2001, in press), Noe(2004b), Dreyfus(2006) 등의 여러 논문이 있으며, 최근에 개최된 학술모임으로는 '확장(외연)된 마음', '확장된 인지', '상황적 인지', '체화된 인지' 등의 이름으로 2006년에 유럽에서 개최된 학술모임들이 있다.
이러한 논저나 학술모임에서 학자들은 전통적인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의 주장을 넘어서서 몸과,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행위로서의 마음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뇌나 몸과는 괴리된 계산적 마음을 논한 ‘고전적 인지심리학의 마음 개념을 인지신경과학이 뇌 속으로 넣어주었다면, 이제는 그 뇌를 몸으로, 그리고 다시 그 몸을 환경으로 통합시키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신경적 상태나 과정이라고 하기보다는 신경적 기능구조인 뇌, 뇌 이외의 몸, 그리고 환경의 3자가 괴리되지 않은 총합체(nexus) 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중심으로 재개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3. 21세기 초 현재 인지과학의 마음 개념 재구성의 시사
자연과학적 인지과학과 인문학의 철학을 연결하여 새로운 틀을 이루어 내려는 이러한 작업은, 이미 언급한 바처럼 지난 20세기 초에, 마음의 문제를 협소한 주관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개념화한 고전적 실용주의철학자 들의 계승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주체와 객체가 괴리되지 않은 세상속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일상적 인지를 강조한 현상학적 재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데카르트적 틀의 관에 하이데거적 못을 박는 작업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Wheeler, 2005)’. 이러한 관점의 논의는 국외에서나 국내에서나 현상학 철학자들에 의하여 많이 논의되어 왔던 것인데, 이제 경험과학인 인지과학에서 그 논의를 진지하게 다시 고려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래된 전통적 서구 사상의 이원론적 생각을 넘어서서, 본질적인 물음, “내 몸은 나에게 과연 무엇인가? 몸은 내 마음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하여 심신이원론과 환원주의적 일원론을 넘어서서 인지과학의 ‘제3의 흐름(the Third Movement),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논의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새 흐름은 마치 인지과학에서의 70년대의 '표상(representation)'에 대한 활발한 논의나, 80년대 초의 '단원성(modularity)' 논의, 80년대 후반의 '연결주의(connectionism)' 논의처럼, 현재 철학에서, 그리고 그와 연결된 인지과학의 다른 학문들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입장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상당히 있으며(예: Adams & Aizawa, in press) 인간의 마음이 뇌를 넘어서서 밖에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 가까운 시일 내에 논쟁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 듯 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러한 마음 개념 재구성의 새 흐름은 성공하건 아니건 간에 21세기 초의 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 그리고 주변 인문학 및 사회과학과의 연결에 어떠한 형태로던 (기초이론적으로, 그리고 구체적 응용연구와 적용의 형태에) 영향을 주리라고 본다.
재구성된 마음 개념의 입장에 의하면, 인간의 고차적인 마음, 심리과정, 인지과정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그에 바탕하여서 가능하여지는 것이고, 그러한 환경과의 상호작용능력은 몸과 마음이 하나인 '체화(육화)된 마음'이 환경과 (감각운동적으로) 엮어져 들어감으로써(engagement)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몸을 떠난, 몸과 괴리된, 몸에 바탕하지 않은 마음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몸과 괴리된 마음의 내용이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또한 환경과는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마음이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머리, 두뇌 속에 미리 따로, 개별적(discrete neural states) 심적 자료(data)로, 개별적 심적 과정으로서 들어있고 그냥 나오기만 하면 되는 그러한 마음이 아니라. 과거에 몸과 마음이 하나로 작동하는 체화된 마음이라는 단일체로서 환경자극과 엮어져 들어간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현 시점에서 다시 환경자극과 몸이 역동적으로 다시 엮어져 들어갈 때에 그 때에 비로소 내 마음, 내 마음의 내용이 활동으로서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 몸 따로, 내 마음 따로, 내 환경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철학자들의 추상적, 개념적 주장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연구를 하는 심리학자들의 실험 연구와 이론적 모델 전개에서도 그런 관점을 반영한 경향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발달심리학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동역학체계적 접근은 (Kelso, 1995; Port & van Gelder, 1995; Thelen &Smith, 1994) 감각운동에 바탕한 심적 행위의 비선형 변화 모형을 중심으로 하여 기존의 인지과학적, 신경과학적 접근의 대안을 제시하여 왔다.
이러한 심리학적 연구와 철학의 확장(연장)된-체화된 마음 개념이 연결되는 최근의 심리학적 연구의 예를 들자면, Spivey(2006)의 시각 및 언어에 대한 연구나 Zwaan 등의 언어 연구 (Zwaan & Madden, 2005;, Zwaan & Taylor, 2006)의 연구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주제는 마음이란 뇌가 환경 자극을 개별적(discrete) 상징(기호)로서, 비연속적 신경상태로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환경의 자극과, 지각, 운동, 인지, 행위가 하나의 통합적 바탕에서 엮어져 전개되는 연속적 역동적 활동으로서 개념화되는 것이다. 공간적 연장을 지닌 마음, 확장된 마음, 체화된 마음의 핵심 개념을 1970년대에 경험과학에서 전개한 사람이 다름 아닌 유명한 생태(지각)심리학자 James J. Gibson 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심리학자들의 연구 접근의 변화는 당연한 귀추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3.4. 마음 개념 재구성과 환경자극의 역할
마음 개념의 재구성에 대한 이상의 논의는 전통적 입장과는 다른 관점에서 마음의 개념을 재구성하여야 할 필요성들을 제시하고 있다. 환경과 독립된 채, 뇌 속에 자리잡은 추상적 표상체계로서의, 상징표상의 조작 정보처리로써 만의 마음이라는 데카르트 전통의 고전적 인지주의가 마음에 대한 충분한, 적절한 설명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드러났고, 뇌 속에 존재하는 괴리된 실체로서의 마음을 벗어나서 밖으로의 재 개념화가 이루어져야 함이, 그리고 환경자극의 연속적이고 역동적인 역할에 눈을 돌려야 함이 분명해진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음 개념의 재구성 작업에 의하면, 마음은 뇌 속에 캡슐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물리적 혹은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 작용의 역동선 상에서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인공물 환경에 확장, 분산되어진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에서는 많은 내용을 기억 속에 명시적으로 표상하지 않으며, 암묵적 상태로 환경에 내재화하게 내버려둔다. 분산된 표상, 확장된 인지의 특성이 강한 것이다. 따라서 환경자극의 주 역할은 표상의 지표적 표상(indexical representation) 저장 및 재구성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주어지면 이러한 환경자극 맥락 단서에 근거하여 최대한으로 즉석에서 변통하여 내는(ad lib) 전략을 활용하는 체계인 것이다.
세상을 지나치게 정적 구조로 표상화하고 모형화하여 저장하는 것을 피하고, 실시간의 감각운동-행동-산출 체계의 요구에 맞도록 세상에 대한 모형화를 시도하며, 어떤 특정한 체계(동물이건, 사람이건, 로봇이건)의 요구나 생활양식과 그 체계들이 반응해야 하는 정보를 포함한(information bearing) 환경 구조의 적합한 짝을 찾아내는 것에 초점이 주어진 체계이다. 심적 계산 과정이 외적으로 시공간에 확산/확장되어 있고, 사고가 환경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행동, 활동과 괴리된 내적 표상이 아니라, 무슨 활동을 내어놓아야 할지를 가리키는 지표로서의 단서적 표상이 외적 환경에 심어져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활동과 환경적 단서가 밀접히 연결되는 것이다. 인공물과 같은 매개적 도구와 이와 상호작용하는 매개적 행위는 사회문화적으로 상황지워진 것이며, 매개적 수단(도구)은 그 나름대로 ‘사용가능성의 제공(affordance)’과 제약(constraints)을 지니고 있다. Vygotsky 등의 입장을 따르자면, 상황적 행위자와 매개적 도구와의 관계는 행위자가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알게 되는 '행위로서 습득하는(knowing how)‘ 과정과, 그와 더불어 도구 사용의 사회적 속성을 '제 것으로 삼기(appropriation)'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환경자극과 마음이 별개인 것이 아닌 것이다.
3.5. 마음 개념 재구성과 인공물
마음의 개념을 몸을 넘어서 환경으로 확장하고 또한 환경자극의 역할 개념을 위와 같이 재개념화한다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둘러싸고 항상 영향을 주고 있는 환경자극의 대부분인 온갖 인공물(컴퓨터, 핸드폰, 로봇, 자동차, 건물, 각종 도구와 같은 하드 인공물과, 언어, 경제, 법, 교육체제와 같은 소프트 인공물 포함)과 마음의 관계를 재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는 순수한 신체적 진화, 마음의 진화의 역사라고 하기 보다는 인간의 마음과 몸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과 공진화해 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이정모, 이건효, 이재호, 2004). 단순히 인간이 인공물을 만들고 활용한다는 일방향적인 활동에 의하여 인간의 진화가 이루어졌기보다는, 인공물이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활동을 확장시키고 또 제약하기도 하는 쌍방향적 상호작용 과정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공물과 인간 마음이 오랜 세월에 걸쳐 공진화하였다면, 그 과정에서 인간의 마음속의 어떤 내적 표상 구조, 특히 외부 세계와 자신의 문제 상황간의 관계에 대한 가설적 구성개념들이 외현화되고 물리적 환경에 구현되어 인공물이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외현화 및 구현 과정 속에서 인간의 뇌와 마음, 특히 인지는 끊임없이 외부 세계의 역동적 변화와 상호작용하며 외부세계와 인간의 마음, 그리고 그것을 연결해주는 표상체계를 재구성 내지 창안해가며 변화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마음의 진화란, 인간 마음속의 생각을 외현화하여 인공물에 구현하고, 인공물을 활용하는 활동을 통하여 다시 그 도구의 어떤 특성이 마음속으로 내재화되고, 그 결과로 그 인공물에 대한 개념이 변화하고, 이것이 다시 외현화되어 인공물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다시 마음으로 되먹임(피드백)되고 하는 마음과 인공물을 오가는 끊임없는 <되돌이 고리>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되돌이 고리는 21세기인 지금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그치지 않고 되풀이 될 것이며 그를 통하여 우리의 심적 능력과 특성의 변화, 삶의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을 인공물과의 상호작용을 빼놓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의 작용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인공물과 인간, 특히 인간의 마음과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재개념화가 필요하다. 더구나 과거의 테크놀로지의 가속적 발달 단계를 분석하여 볼 때에, 인공물의 정수인 컴퓨터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고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애매하여지는 특이점이 2030년대 내지 2050년 이내에 도래할 수 있다는 Kurzweil (2005) 등의 논의를 고려한다면 인간의 마음, 지적 능력에 대한 개념화에서 세상(환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공물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 1990년대 전반까지의 기존의 인간-인공물 상호작용의 연구는 (Human-Computer-Interaction (HCI) 등의 인지공학적, 각종 디자인 등의 연구 및 로봇 연구) 전통적인 데카르트적 인식론에 기초한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인간의 마음은 환경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독자적인 표상을 지닌다는 것이 데카르트적 인식론의, 그리고 전통적인 심리학의, 인지심리학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에 바탕하여, 표상화된 개별(discrete) 지식의 전달과 이를 표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인지적 활동과 인간-인공물 상호작용을 개념화했던 전통적 심리학, 인지과학의 관점은 ‘인공물에 의하여 매개된 인간-인간 상호작용’의 일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나, 역동적인 인간-인공물 상호작용,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의 역동적인 심리적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전통적인 마음 관점은 환경과 마음의 상호작용의 본질에 대한 부족한 내지는 잘못된 개념화를 제시함으로써 인간 심적 특성에 부합되지 않은 인공물 환경을 생산하고 활용하게 하였으며, 그러한 인공물의 사용성(usability)의 빈약으로 인해 인공물 사용자에게 불편을 초래하였고, 인공물의 제작 목적이 왜곡되거나 극히 일부분만 활용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인간의 마음과 인공물의 상호작용은 부조화를 일으키고, 어떤 면에서는 진화의 방향과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심적 적응이 전개되게끔 하였다. 인간의 마음이 뇌 속에 갇힌 인지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활동 과정상에서, 역동적 시간 궤적 상에서 나타나는 것인데(예, 동역학심리학의 입장), 이러한 상호작용적 활동성을 무시하고 정적인 상징표상의 저장으로서의 마음으로 개념화함으로써, 인지활동의 상황의존성, 맥락의존성, 사회문화요인에 의한 결정성 등이 무시되었고, 실제 장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하는 인공물을 디자인하게 하였다. 즉 인간과 환경 인공물간의 변증법적 통일성(dialectic unity in activity) 측면을 파악하지도, 살리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앞 절에서 제시된 마음의 새로운 개념, 즉 뇌와 몸과 환경이 하나로 엮어진 통합체에서의 능동적 활동으로 재구성된 마음 개념 틀을 도입한다면, 인공물이, 그리고 이들이 구성하는 현실공간이나 사이버공간이 '확장된 마음', '확장된 인지'로서, 그리고 마음의 특성을 형성, 조성하는 기능 단위 또는 공간, 대상 및 사건으로서 작용하며, 마음과 인공물이 하나의 통합적 단위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마음과 인공물의 관계를 재구성한다면, 인간의 마음의 작동 특성 본질의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탐구는 물론, 인간의 각종의 적응, 부적응의 이해와 이의 변화의 각종 응용심리학적 적용실제(practice), 그리고 각종 인공물(하드웨어적 및 각종 문화제도 등을 포함한 소프트웨어적 인공물)의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및 활용에 대한 새로운 좋은 틀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기존의 각종 도구는 인간의 삶을 보조하고 인간 능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개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특성에 부합되지 못한 형태로 만들어져서 그 본래의 목적인 인간 신체와 인지적 능력의 자연적 연장 도구의 기능을 하기는커녕 인터페이스하기 힘들고 다루기 힘들고, 오히려 인간능력을 제약하는 등의 부담을 낳는 인공물로 자리잡는 경우도 흔하였다. 심리학, 인지과학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새로 재구성되는 마음 개념을 융합과학기술과 연계하여 인간과 자연과 인공물과 그 상호작용에 대한 개념화와 이해의 수준을 개선하고, 인간 감각능력, 신체능력, 기타 인지능력의 향상 및 확장을 도출하고, 마음과 각종 기계와 도구의 상호작용의 편리성과 효율성과 생산성을 개선하며, 개인과 팀의 상호작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4. 종합 논의
인지과학에서의 전통적 마음 개념의 재구성의 움직임과, 이러한 움직임이 인지과학의 외연의 확장에 시사하는 바를 열거하였다. 이러한 마음 개념 재구성의 논리가 인지과학 전반과 주변학문에 기초 개념적 이론틀의 재구성은 물론 상당한 응용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마음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개념적 재구성이 타당하다면, 자연히 뒤따라 거론되는 것이 마음 연구의 분석 단위의 문제이다. 마음이 단순히 뇌 내의 과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와 환경에 확장, 분산된 과정이라면, 마음 연구의 기본 분석단위는 <뇌-몸-환경 상호작용>이 되어야 한다. 이는 과거에는 뇌를 무시하고 <인지적 마음>만을 탐구하던 전통적 인지심리학, 인지과학이 신경과학에 의해 뇌라는 물질적 구조 기반 중심의 분석-설명적 접근으로 변화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뇌를 넘어서 비신경적 몸과 또한 그 몸이 체화되어있는 환경을 뇌의 작동 과정의 분석과 함께 분석단위로 삼아야 마음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지과학에서의 분석단위의 이러한 재구성은 자연히 존재론적 재구성을 의미한다. 과거의 전통적 심리학과 인지과학이 기반하여 온 데카르트적 존재론을 벗어나서, 주체와 객체, 마음과 몸과 환경이 임의적 경계선으로 구획되어지지 않는 통합체로 보는 새로운 존재론 위에 심리학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탈 데카르트적 패러다임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전통적 인지주의 접근의 설명적, 이론적, 경험적, 연구의 학문적, 응용구현적 위치와 역할은 건재하다. 마음 개념 재구성의 새 틀에 대하여 아직도 기존입장의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며, 새로운 재구성된 마음개념의 입장은 아직도 인지과학에서 소수의 급진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전통적 입장이 급격히 완전히 제거되거나 대치되어야 할 것은 아님이 사회문화적-상황적 접근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심리 현상이란 것 자체가 다원적 차원의 현상들로 구성된 복합적인 실체라면, 우리는 일찌기 Kenneth Craik(1943)이 언급한 바와 같이 다원적 설명접근의 필요성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탈데카르트적 존재론 접근이 심리 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 접근이 되지 못한다고 하여 배제되어 왔다. 최근의 마음 개념 재구성의 움직임은 이와는 반대로 전통적인 데카르트적 전통이 '충분한' 설명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주로 비판되어 오고 있다고 하겠다. 적절성과 충분성의 어느 한 준거에 의하여 인지과학 연구와 응용을 추구하기에는 심리 현상은 너무나 역동적이며 복잡하며 다원적이고, 인지과학의 이론적 세련화 수준은 아직도 어리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재고하여 본다면, 아직은 전통적 접근과 탈 데카르트적 접근을 병행하여 시도하는 것이 심리현상, 인지현상의 설명에서의 좋은 연구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상위 인지과정인 고차적 사고과정의 이해와 설명에서는 새로운 재개념화된 마음 개념 틀이 효율적 접근이 아닐 수 있다. 반면, 대상 지각이나 감각과 운동을 통합하는 등의 상위 지각 과정이나 언어 활용 과정에 대한 설명에는 뇌-몸-환경의 통합체적 접근이 보다 효율적 접근일 수 있다. 또한, 인간이 로봇이나 다른 사람과 역동적으로 긴 시간계열 상에서 상호작용하는 과정의 이해와 설명에는 전통적인 데카르트 식의 접근이 비효율적이고 부적절하고 새로운 마음 개념의 접근이 더 적절하거나 효율적일 수 있다. 인지현상의 추상성, 복잡성 수준에 따라서, 그리고 몸의 감각운동적 활동이 환경자극과 얼마나 밀접히 엮어져 들어가는가 하는 수준에 따라서, 다원적 접근의 틀을 유지하는 것도 좋은 학문적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접근의 타당성 또는 적절성에 대하여 개방적인 마음을 유지하며, 자신의 접근 틀에 다른 접근틀의 접목 가능성에 대하여 마음을 열어놓고 학문적 탐구와 응용의 실제를 추구하여 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에 신경과학, 인지과학, 사회과학이 연결된 ‘사회신경과학’이 각광받는 새로운 학제적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Cacioppo & Berntson, 2004). 마음의 문제는 문화-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주관적 체험과 의미의 문제를 그 중심에 지니고 있으며, 이는 신경과학적 설명과는 다른 수준의 추가적 설명을 요하는 것이겠지만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설명수준이 수렴되어 보다 충분한 설명을 함께 모색하는 틀은 앞으로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Descartes는 몸과 마음에 대하여, 전자는 공간적 외연(확장)을 지니는 실체로(res extensa), 후자는 외연이 없는 생각하는 실체로(res cogitans) 개념화하였다. 공간적 외연(확장)이 없다는 것이 그의 전통의 마음 개념의 요체였다. 그런데 이 글에서 제기한 마음개념 재구성의 움직임은 철학의 현상학 전통을 따라서 마음을 공간적 외연(확장)이 있는 마음, "The Extended Mind"로 개념화하고 있다. 마음이 몸의 속성인 외연(확장)성(extendedness)을 내포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마음이라는 개념이 외연성을 지니게 된다면, 그동안의 심리학, 인지과학, 나아가서는 로보틱스가 지녀온 상당한 많은 개념들이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라 뇌 속의 비연속적 신경상태로 개념화된 마음개념에 의해 규정되고 전개되었던 심리학, 인지과학의 학문적 외연도 상당히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로보틱스 연구 분야가 심리학의 외연의 영역으로 성큼 닥아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이러한 재개념화가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에 따라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외연이 어떻게 다양하게 재구성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렇기는 하지만 마음의 본질에 대한 개념을 이와 같이 재개념화한다면, 심리학, 인지과학에서 전통적으로 지녀온 특정 연구주제들의 강조와, 순수심리학과 응용심리학의 이분법적 경계의 강조 (이론적으로는 구분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차별화하는) 전통이 재구성되게 된다. 이러한 재개념화된 마음의 작동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순수이론적 탐구와, 어떻게 하면 그러한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가 하는 응용적 탐구는 별개의 영역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 순수이론적 연구와 응용적 연구가 통합된 새로운 유형의 연구 패러다임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관에서, 과거부터 서구의 마음 개념보다 포괄적인 마음 개념을 제시하여 온 동양적 마음 개념과의 연결이 21세기의 인지과학의 전개에서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도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테크놀로지 사이의 연결고리는 물론, 서양의 생각과 동양의 생각의 연결고리가 인지과학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작은 바램을 갖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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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February 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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