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Saturday, February 21, 2009

조금 안다고 나대는 것의 초라함: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이 주는 생각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에 관한 글들을 읽다가
갑자기 강하게 떠오른, 아니 닥아 온 어귀가 있다.

“조금 안다고 나댐의 초라함” 이라는 생각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삶의 끝까지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시며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자면

그동안 ‘조금 안다고 나대어 온’ 나의 삶이 마냥 초라하게 여겨진다.

더구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엘리 위젤에 의하면
그 ‘조금 안다는 것’ 조차 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조금 안다는 것’ 조차 따지고 본다면
다른 이들 보다 극히 미미한 시간차를 두고
-(특히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거의 같은 시간에) -
‘그저 어쩌다가 아주아주 조금 미리’ 알았을 뿐인 것이다

지능이 낮은 나의 미망으로 인하여
내가 조금 더 알고 있다고 계속 생각하는, 이 착각,
그 앎이란, 실상은

엘리 위젤(뷔젤)에 의하면

“삶은 내가 태어나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나 이전에 많은 세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내가 읽은 책은 수 세대의 아버지와 아들과 어머니와 딸들과 스승과 제자들에 의하여 작성되었다. ...
나는 그들의 경험의, 그리고 그들의 탐구의 총합일 뿐이다. 그리고 당신도.
‘I am the sum total of their experiences, their quests. And so are you.’....

수 세대에 걸친 창조나 철학적 생각들 모두가 우리 인간의 집합적 유산이며 기억이다.
우리는 같은 마스터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나 자신의 앎이, 지식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뇌와 생각과 앎의, 삶의 집합 덩이 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나의 앎인 것처럼 나대었다니 ...“

그저 창피할 따름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떠나심에

다시 한번
‘조금 안다고 나대어 온’ 나의 삶에 대하여,
나의 착각적 미망에 대하여
한숨과 함께 진한 연민을 갖게 된다.
...

그 연민으로 다음과 같이
자신을 변명하며 생각한다.

그래도
지난 몇 십 년의 나의 삶이
지식을 찾고 그것을 전달하는 중심의 직종에서 삶을 살아 왔기에

그러한 삶이 나의 살아 있음의 존재를 규정하는 한 방식이 되었고
이 방식을 벗어나서는 나의 살아 있음의 의미를 이야기하기가 정말 힘들어서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조금은 알고 있다’고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힘들것 같다고.


그러고 다음과 같은 생각이 이어진다.

그러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엘리 위젤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다.

“내가 얻은 지식은 내 뇌 속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지식을 많은 사람들에게서 빚지고 있는 것이며
나는 그 지식을 가지고 무엇인가 하여야 한다.
그들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지식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다른 이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함으로써)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사의 마음으로 ...”

그동안 ‘조금 미리 안다고 나대었음’ 에 대한
그리고 그런 자각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이 앞으로 크게 변화되지도 않을 것임의 예감에 대한
나 자신의 합리화일까 .... ?

김수환 추기경님은
표표히 떠나셨지만
많은 것을 되생각하게 하여 주신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