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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ugust 2, 2012

The concept of COGNITION; A thought by a first generation Cognitive scientist / (text in Korean)






[인지(cognition)’ 개념의 재조명: 한 1세대 인지과학도의 생각]

인지과학회 춘계 학술대회 전후 몇 주일동안 저에게서 일어난 일을 열거하고 ‘인지’ 개념의 재조명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2012년 4월 30일에 ‘심리학사’ 강의 파일 2장. 르네상스에서 17세기 전까지를 웹에 올린 후에 17-18세기의 심리학의 역사 글을 1주내로 만들려고 하였지만 건강이 뒷받침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는 Descartes의 책들, 데카르트에 관한 책들, 문헌들을 읽느라 두 주 가량이 더 흘렀고,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과 몸 기계론을 훑다가, 20세기의 그의 후예들, 20세기 전반의 마음-기계 연결 이론에 다시 생각이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저의 2001년의 책, [인지심리학: 형성사, 개념적 기초, 조망]의 4장 ‘마음과 기계의 연결: 튜링 기계 이론의 형성 배경’과, 2009년의 책, [인지과학: 학문간 융합의 원리와 응용]의 3장, ‘ 마음과 기계 개념의 이론적 연결 역사’의 두 내용을 합하고 이에 인터넷 링크 자료 등 추가 내용을 보완하여 새 파일(작은 책에 가까운 monograph)을 만들어서 웹에 올려 나누어 보아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한국인지과학회 춘계학술대회 전에 웹에 올려 공개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읽어내야 할 문헌들이 계속 생기고,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계획한 대로 못 하고 학회에 참석하였었습니다. 학회가 끝난 지 며칠째 되는 오늘도, 새로운 문헌자료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 상태 때문에 ‘마음-기계 연결 역사’ 파일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존경하는 영국의 저명한 인지과학자의 한 사람인 Margaret A. Boden (http://en.wikipedia.org/wiki/Margaret_Boden) 교수의 2006년 책, [Mind as Machine: A History of Cognitive Science] - 총 1,631 쪽의 두 권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책이며, 인지과학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한 번은 읽어내야 하는 책입니다. 아직 저도 완독하지 못했지만 -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인지과학, 인지심리학의 ‘인지’가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가, 이 분야를 열었다고 볼 수 있는 U. Neisser교수의 1967년 책, [Cognitive Psychology]에서 Neisser 교수가 ‘인지(cognition)’의 정의를 당시(즉, 45 년 전)에 이미

인지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관련되어 있다. 모든 심리현상은 인지현상이다(... cognition is involved in everything a human being might possibly do; that every psychological phenomenon is a cognitive phenomenon)”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인지’의 개념을 인식이나 사고 중심으로 좁게 생각하는 학생들과 인지과학 및 타 분야 전공 선생님들에 대하여, 이정모가 생각하는 ‘인지’의 개념을 “그런 좁은 개념이 아니라, 인간 마음과 행동이 짓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라고 강변하며 어려운 논쟁을 계속하여 온 저에게 놀라운 지원군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책에 그런 정의가 있다는 것을 어째서 망각하고 있었지?’ 하고 생각하며 부랴 부랴 그 책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1970년대 초에는 이 책은 대학원생들의 must-read 책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오래된 1967년 책의 4쪽에 정말 그런 문장이 살아 있었습니다. !!! ...! (물론 이 책 내에는 통상적인 지적 과정 중심 의미의 좁은 의미의 정의도 다른 쪽에 있었습니다.)

또 인지과학 전문 학술지의 하나인 ‘Cognition’ 지에서는 논문모집을 하며 ‘인지’의 개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Cognition is an international journal that publishes theoretical and experimental papers on the study of the mind. It covers a wide variety of subjects concerning all the different aspects of cognition, ranging from biological and experimental studies to formal analysis. Contributions from the fields of psychology, neuroscience, linguistics, computer science, mathematics, ethology and philosophy are welcome in this journal provided that they have some bearing on the functioning of the mind. (http://www.journals.elsevier.com/cognition/#description)

이러한 검색을 한 후에 제가 다음에 무었을 했는가 하면, 제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였던 ‘인지’의 정의를 인터넷에서 다시 검색하여 보았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인터넷 자료(백과서전 등)은 Neisser 교수가 표현한

“The term "cognition" refers to all processes by which the sensory input is transformed, reduced, elaborated, stored, recovered, and used.”에서
‘used’의 깊은 의미에 주의를 주지 않은 채, 주의, 감각, 지각, 기억, 언어, 사고 등의 지적인 과정을 중심으로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위키피디어의 정의가 다른 곳의 정의와 다른 점은 - 그것이 눈에 뜨였는데 - ‘인지’가 사람의 심적 과정과 상태뿐만 아니라, 집단, 조직, 자율적 기계, 인공지능 등의 지적 실체의 심적(mental) 과정과 상태까지 포함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과연 ‘mental’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것인가가 반문됩니다.

-- ‘mental’을 ‘심리적’이나 ‘마음의’가 아니라 ‘정신의, 정신적’ 이라고 번역하는 국내 타 학문 전공자와 번역가들의 글을 볼 때 마다 부정적 느낌이 생기지만. 아직도 국내 병원이나 의학계통, 일반인, 매스컴에서는 ‘정신’이라는 이 용어를 계속사용하고 있지만, 과학적 심리학에서는 ‘정신’이라는 용어는, ‘영혼’이라는 용어처럼 비과학적인 구시대의 개념이라서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경험과학적 심리학 책이나 논문에서는 ‘정신’이라는 용어 사용이 금기시 되고 있습니다.) 그 객관적 지칭 대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칭 대상을 객관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개념으로 사람들 사이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마치 아는 듯이 통용되는 개념들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에는 많습니다. 서구 과학에서도 그런 개념들을 과학에서 몰아내려는 작업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

하여간, 다시금 ‘mental’의 어원인 ‘mind’, ‘마음’이 무엇인가, ‘인지’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새로운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고 있는 체화된 마음(또는 체화된 인지; Embodied Mind; Embodied Cognition)의 패러다임이나 동역학체계(dynamic systems) 패러다임을 연결하여 생각하자면 - 특히 요즈음의 인간 마음의 작용과 인공물의 지능(마음)의 작용이 (심리철학적 이유로, 둘이 같아질 수는 없겠지만) 아주 근접하는 추세를 본다면 - 마음이 무엇인가 다시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마음’ 개념에 이미 ‘몸’ 개념이 전제(포함)되어 있는 개념으로 사용하여 왔다고 하는데 (관련 서적: [마음 어떻게 움직이는가](http://blog.daum.net/fushanai/4754960), [몸, 마음공부의 기반인가 장애인가](http://www.yes24.com/24/goods/3639457?scode=032&OzSrank=4)), 마음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지, ‘인지’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지 ‘번뇌’하게 됩니다 (‘번뇌’라는 용어도 상당히 유물론적 마음 관점의 용어이군요!).

‘마음’ 개념을 규정하기에는 위의 책들이 논의한 것을 보자면, 그리고 저의 지식이 일천함을 고려한다면 아주 어려운 과제이고요, 오늘은 잠정적으로, 오늘의 시점에서의 ‘인지’에 대한 저의 개인적 생각을 엮어 보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첫째로, 저는 ‘인지’를 사고 등의 지적인 과정으로 보는 좁은 의미의 ‘인지’ 개념 사용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인지심리학의 영역을 규정하여 열고 최근에 작고한 Neisser 교수의 ‘인지’ 개념이 이미 그러한 좁은 의미를 넘어서서 있습니다(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cognition is involved in everything a human being might possibly do; that every psychological phenomenon is a cognitive phenomenon’라고 말했습니다.).

둘째로, (1) 몸, 환경과 하나 되어 통일된 한 단위를 이루어 작동하는 ‘마음’ 관점인 ‘체화된 인지’ 관점과, (2) 또 미래 새로운 개념으로 재구성된 휴머니티(humanity)의 사회에서는 미래 인공물(artifacts - 현재의 각종 디지털 기기와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현실세계 + 가상세계들의 발전된 미래 상태 포함)의 지능과 경험이 인간 마음이 만들어내는 세상에 근접하여 가고 있음을 주장하여 온 제가, 생각하는 ‘인지’란 단순히 인간적 사고 등의 지적 과정을 뜻하는 좁은 의미의 ‘인지’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정서적(affective), 신체적 과정들의 작용을 촉발하고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개념화 되어야 마땅하지요. 인간의 집단적 조직이나 기관들, 그리고 인공물들에서 가능하여지는 삶의, 경험의 과정과 상태들도(현재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상상 불가능한 미래 가능 상태들도) 포함되어야 하고요.

셋째로, 제가 1930년대에서 50년대 60년대까지의 마음-기계 연결 역사를 추적하여 보니까, 그 당시에 기존 과학 전통의 ‘에너지’ 개념 중심의 과학으로부터 이를 대체하여 ‘정보’ 개념 중심의 과학기술 시대를 (당연히 오늘날과 미래의 인류 디지털 문화의 개념적 기초를 그 당시에) 이끌어 낸 ‘지적 흥분의(intellectual excitement)’, 과학 패러다임 변혁의 시대를 주도하며 그 한 가운데에서 살다 간 학자들 -
이 분들이 저는 제일 부럽습니다. 한 삶에서 그런 새 지적 패러다임 생성의 지적 흥분의 소용돌이(사와, 思渦) 분위기의 한 가운데에서 그 일원으로 사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 - 의 이론, 개념, 상호작용들을 추적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제시한 개념들이 오늘날 우리가 쉽게 생각하듯이 단순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제시한 개념 중의 하나인 ‘정보, information’ 개념에는 단순 데이타의 개념을 넘어서, 지식, 시스템, 신호, 의미, 생명, 목표, 목적, 마음, 기계, 뇌, 언어, 계산, 커뮤니케이션, 사회, 삶의 역동 등의 여러 개념들이 모두 연결되어서 생각되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많은 학자들이 자기 전공분야의 학자이면서 동시에 그 나름대로의 이론을 지닌 철학자이었기도 하였으며, 50-80여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한국 과학기술 및 기업계에서 첨단 화두로 되고 있는 학문간(인문-사회-자연-과학-예술 + 기업) 융합에의 추구를 이미 그 당시에 적극적으로 (국가나 기업의 정책에 떠 밀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지적 추구의 자연적 과정으로써) 이루어 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이버네틱스, 인지과학, 인공지능 등의 영역을 열은 20세기 초, 중엽의 학자들의 개념이나 이론들을 보면, 그들이 ‘정보’ 개념을 이야기 하면서 bit 수를 사용한 좁은 의미가 아니라 인간-동물-기계 시스템들, 그들의 삶(생명, 활동)의 목표, 목적, 의미 등을 연결하여 큰 틀에서 생각하여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 문화를 뒤바꾼 기초개념인 튜링기계 이론이나 이들이 생각한 바를 추적하여 가다보면, 자신의 지적 왜소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더 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가를 깨달음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되새겨 봅니다.

그래서, ‘인지’에 대한 결론은?

저는 ‘인지’를 ‘환경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넓은 의미의) 마음과 (그의 표현인) 행동이 짓는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 ‘마음’ 개념에는 기계나 다른(사회 조직, SNS는 물론 기타 사회문화적 소프트 시스템 등 포함) 인공물의, ‘의미가 담긴’ 활동들도 포함됩니다.

그렇게 정의한다면 자연스레 반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인지”가 인간 및 인공물의 활동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인지과학과 심리학의 관계는?’, ‘인지과학과 사회과학의 관계는?’ 하는 반문이요.

이에 대하여 저는 다음과 같이 - 편향되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 말하고 싶습니다.
“반세기를 거치며 사이버네틱스가 해체되며 그 많은 영역을 인지과학에 내주었듯이, 미래의 학문(과학) 체계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르게 재편되리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중세 이후의 제반 학문(과 과학)의 생성과 분화, 변천 역사를 생각하여 보면 더욱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에서는 시와 문학은 마음의 내러티브적 특성상 인지문학으로 인지과학과 연결되었고, / 고대로부터 인류 생각을 지배하였던 신학은 인지신학과 신경신학으로 인지과학과 연결되었고, / 언어 관련 학문들은 인지언어(언어인지)학을 매개로 인지과학과 연결되었고, / 사회과학의 꽃이라던 경제학은 행동경제학, 인지경제학, 신경경제학으로,/ 법학은 법인지과학으로,/ 정치학은 인지정치학으로,/ 커뮤니케이션학은 인지커뮤니케이션으로,/ 교육학은 인지-학습과학을 통하여,/ 경영학은 인지경영학 및 신경경영학으로 인지과학과 연결되었고,/ 자연과학의 생물학은 진화심리학과 인지생물학, 인지신경과학으로 인지과학과 연결되었고,/ 물리학은 인간의 의식현상과 사회현상을 복잡계 현상으로 개념화하며 동역학체계를 매개로 인지과학과 연결되었으며,/ 공학의 인공지능은 그 영역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등장한 인공인지시스템 영역을 통하여,/ 로보틱스는 인지로보틱스 등의 영역을 통하여,/ 디자인관련 공학과 기타 공학 등은 인간공학, HCI를 거쳐서 HCI, UX, BCI, 인지디자인, 인지인포마틱스(cognitive informatics) 등의 영역을 통하여 인지과학과 연결되었고,/ 의학은 인지의학, 인지신경과학 등을 통하여 인지과학과 연결되었고,/ 음악 미술 등은 인지음악학, 시각인지과학, 인지디자인, 신미디어 이론, 인지 퍼포만스 이론 등을 통하여 인지과학과 연결되어 있으며,/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여러 학문들과 그들의 응용적 적용의 현장 모습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빚는 현상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그 현상의 탐구를 심리학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는 어떤 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과 그것이 빚는 각종 현상은 여러 관련 학문(과학)들이 연결, 접근되어 그 다양한 측면들이 규명되어야 하고 또 이들을 잇는 융합적 지적 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래 어떤 시점에서 (21세기 후반이 될지, 22세기가 될지 모르지만) 현존 학문 체제의 (특히 인문, 사회, 자연과학, 공학, 예술 등의 한국 과학기술계가 그리 신성시하여온 체제의) 전면적 재편성, 재구성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한 지적 흥분의 시기에 현장에 있지 못하고 미리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쉽고 그 때의 소용돌이에 현장에 있을 지적 후대들이 마냥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사이버네틱스처럼 슬며시 심리학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해체되며 그 주제들이 인지과학으로 포함될지, 아니면 그 반대의 역 현상이 일어날지, 인지과학(아니면 심리학 또는 인간학?)이 인간, 사회와 문화, 뇌, 기계를 포함한 각종 인공물의 여러 현상을 포괄하는 종합적 학문으로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를 흡수할지 아니면 그 반대현상으로 인지과학이 해체될지. 미래 22세기 초엽의 인지과학, 어떤 모습, 어떤 위치일까?
자못 궁금하여 집니다.

이미 제1의 르네상스는 14세기 말부터 이태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제1의 계몽(개화)시대는 17세기에 서구에서 이루어졌다. 20세기 중반에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가능하여 진 디지털 문화 변혁은 제2의 르네상스 또는 제2의 계몽(개화)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21세기 중반이 될지 22세기가 될지는 모르지만, 제3의 르네상스 또는 제3의 계몽시대(개화시대)가 우리 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바는, 그 시점을 위하여 한국 과학기술계가 장기적 미래 안목을 도출하여 미리 준비하였으면 합니다.

이미 60 여 년 전에 20세기, 21세기의 인류 디지털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이론과 개념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학자들의 왕성한 상호작용의 소용돌이에 의하여 도출되고 교환되며 널리 퍼져 인류문화가 완전히 뒤바꾸게 된 변혁의, 저 먼 뒤안길에 서서, 일제가 전하여 준 습관적 전통 과학개념에 젖어서, 반세기가 지나도록 과연 20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무엇이 일어났었고 그것이 인류 및 한국의 미래 사회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했던 한국 사회의 잘못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새 휴머니티 개념과 넓은 ‘인지’ 개념에 바탕을 두는 그 제3의 르네상스, 제3의 계몽시대(개화시대)의 지적 흥분 분위기에 한 가운데에 있을 여러 분을 부러워하며 응원합니다.

2012년 6월 6일 아침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 심리학, 인지과학; https://www.facebook.com/metap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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